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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목회학

한국교회 목회심방의 문제점과 개선

한국교회 목회심방의 문제점과 개선
김광집 목사(공덕 교회)
1.시작하는 말
심방은 한국교회가 가진 가장 중요한 교역의 한 방법이다. 교역자가
교우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가 친교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바로
그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일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 점에
서 교역자나 교우들 모두 심방을 중요하게 여긴다.
목회 심방을 통해서 교우들은 인간을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교역자는 인간을 찾으시는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가 그 삶을 체험
한다. 그러나 [목회심방]이 갖는 이러한 신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한
국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심방의 현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것
은 때로 교역의 역기능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한국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심방의 관습 내지는 전통들 가운데서 문제되는
부분들을 들추어 신학적으로 평가해 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봄으로써 목회 심방의 모델을 수립해 보고자 한다.
II.심방의 현실과 문제점들
1) 한국교회에 있어서 심방은 교인들의 무속적 욕구에 대한 대응체계로
대치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심방은 목회자의 목양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형
태는 다분히 무속적인 면도 있다. 과거 한국의 역사속에서 실제 종교의
사제역할을 하였던 무녀(무녀)는 그의 단골집을 매년 봄과 가을에 찾아다
녔다. 한국교회는 교인들을 무녀와의 관계에서 끊어놓은 대신 저들이
무녀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던 요구를 만족시키는 대응체계로서 춘계심
방,추계심방을 제공하였던 것이다.(주인정,현대목회심방,P.101) 그 외에
임신, 출산, 약혼, 결혼, 회갑, 생일, 병환등의 대상 가정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축하하는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한국목회자들의 심방은 교회적
선습(선습)으로 이해되어오고 있다.오늘날도 목회자가 교인들의 무속적
욕구에 대한 대응체계로서 종교적 사제의 역할을 자담하는 예들도 많이
있다.
최정성 목사의 연구에 따르면 대심방 때 축복에 관한 말씀을 전한다
는 목회자의 비율이 36%로 가장 많고 이에 대해 평신도 응답자의 60%가
도움이 많다고 대답하였다.(최정성, 효과적인 심방의 이론과 실제,월간
목회,1983.3.PP.298-299)
2)한국교회의 심방은 '대심방'이란 이름으로 1년에 봄.가을로 2번하
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이 제도로 인하여 목회자나 신도들은 비인간화를 경험한다. 최정성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 목회자들은 바쁜 목회 생활에서 1년에 두 번 대 심
방을 하는 목회자가 43%나 된다. 한국교회에 대심방이 봄 가을에 시행되
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무녀를 종교의 사제로 삼았던 시대의
습관으로 부터 연유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발제자의 생각으로는 봄 심방
은 한해의 첫 출발을 신앙으로 격려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고, 가을
심방은 기후적으로 심방하기에 좋을 뿐더러 신앙의 결실을 다짐하여 내
년도에도 헌신해 줄것을 재촉구하려는데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만일 이런 생각에 동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런 목회자의 정신적 상
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목회자들은 교인들
의 무속적 욕구에 대응하는 종교적 사제의 역할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있으며,'성숙한 세계'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양육하
지 못한데 대한 두려움 내지는 양심 가책의 몸짓으로 어쩔 수 없이 심방
을 치루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회자는 이런 정신성에서 자유해야
하겠다. 그 길은 교역의 전차원을 거시적 안목으로 보고 그 전체 차원을
균형있게 목회하는 것이다. 봄과 가을철 심방의 시간적 거리는 불과 석달
의 거리다. 여름 행사를 끝내자 마자 곧 가을 심방으로 격무에 시달려야
한다. 신도의 가족들을 만나기에는 가을보다 겨울철이 더 좋다. 목회자
가 심방으로 가을을 보내고 나면 신년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명상하고 연
구할 기회를 잃고 산다. 이 점도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3) 한국교회 심방은 전도를 목적으로 이행된 선교초기의 심방 전통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초기 한국교회의 전도는 선교사들 이전에 전도인들이 한국어로 번역
된 로스 역(Ross Version)이나 이수정 역을 들고 관헌의 눈을 피해 비
밀리에 심방을 함으로써 실효를 거두었다. H.G.Underwood가 처음 세례
를 베풀기 전에 벌써 400여명의 사람들이 전도되어 있었다는 것이 그것
을 증명한다.(김양선,Ross Version과 한국의 Protestantism ,백산학보,제
3호,1967.11)또 초기 선교사들도 전도를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
랑방으로 심방하였고 자신들의 집에 객실을 만들어 전도하였다.(이
영헌,한국기독교사,1980.P.96) 오늘날도 심방은 전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그 실효를 거두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상근,
기독공보 1982.6.12,P.3) 전도심방은 불신 가족을 전도하기 위하여 불
신자 가정을 찾아가기도 하고,이미 믿는 신자 가족중 신앙을 가지지 않
은 불신 가족을 찾아가 복음을 전함으로 신자가 되게 하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다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전도심방을 하는데 있어서 구역원
이나 전도대원을 투여함으로써 심방의 의의가 전도의 의미에 미치지
못한채,자칫 교인 확보를 위한 쟁탈전이 되기 쉬운 염려가 있다. '전도'
와 '심방'의 서로 다른 개념을 혼용하는 것도 교역의 균형을 파괴하는 일
종의 암이라고 생각한다.
4) 한국교회의 심방은 언제 방문해도 주인을 만날 수 있었던 농경시대
의 심방전통을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오늘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고수
하고 있다.
조동진 목사가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가정들이 텅텅 비고 있다
는 얘기를 하였다. "신도의 가정중 오전 10시로 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집에 있는 식구의 수는 전 식구 2,000명 중에 불과 350명이다. 그나마
그 중에서 250명은 식모다. 나머지 100명에도 하루 평균 5시간의 외출을
하는 사람의 수가 80명이며 3시간 미만 두 시간 정도의 외출을 전원이 한
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정하에서 재래의 심방은 환자나 특수 환경에 있
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조동진,교회구조와 목회형태,1969.P.37) 이 실담은 그가 24년 전
(1969년)에 한 말이다. 그 때로 부터 24년이 지났다.오늘의 도시 교회
의 가족들이 목회자의 심방을 맞기 위해 한낮에 집에 있을 것인가? 이
러한 문제는 사회학적인 문제로서 현행 목회심방제도에 대하여 전면적인
검토를 요하는 부분 이기도 하다.
여기서 고려할 몇가지 문제가 있다.
가현대의 가정은 낮동안 비어있다.(물론 노인들과 가정부와 어린이들
도 심방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빈집
들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다.
가현대의 가정방문은 여성 교우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남성교우나 가정을 갖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출석하는 교우
(주로 청년교우)들의 문제는 거의 다루지 못하고 있다.
5) 현대 도시 교인들은 심방을 기피하려고 한다.
몇가지 이유를 든다면
가 심방의 본래적 의미 결여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 가 말씀이 아닌
심방 대원들의 말잔치.
가 예절 없는 행동.
가 기대(해결)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담.
가 찾아준다는 느낌 보다는 몰려온다는 느낌.
가 래포(Rapport)형성이 안된 상담 분위기.
가 도시 생활의 압박감과 피곤증.
가 부담감 등을 꼽을 수 있다.
6) 현대 교인들 가운데는 심방을 받지 않고도 자신들의 문제를 능히
해결할 만큼 성숙한 사람들도 많다.
시내 00교회에서 교인을 대상으로"심방을 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
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조사를 하였는데 신도의 90%이상이 "심방을 받지
않고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 대답하였다. 목회자는 이
처럼 성숙한 교인들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지지해줄 필요가 있다.
7) 목회자 스스로 목회 심방을 기피하거나 아예 하지 않음으로 인해
신도들의 영적 상태가 비폐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목회자가 심방을 기피하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목회적
현실 내지는 신학적 신념으로 말미암는 경우가 많다.
가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의 경우 심방할 시간을 따로 내기가
실제로 어렵다. 또 시간을 낸다하더라도 어느 집은 가고 어느 집은 안 갈
수 없는 형편이므로 경조사외에는 일체 심방하지 않는다. 그대신 부교
역자들로 하여금 심방하게 한다.
가 교회 외부의 책임을 많이 맡은 목회자도 심방할 시간을 낼 수 없
다. 그대신 부교역자나 구역장에서 심방을 의뢰한다.
가 전자 자동장치를 활용하여 찾아가는 심방보다 더 큰 효과를 얻으
려고 하는 목회자도 있다.자동전화장치,메시지를 기억시켜 놓은 기계,팩
시밀리,컴퓨터,센서등을 사용하는 경우다.
가 신학적 신념때문에 심방을 하지 않는 목회자도 있다. 현대에 있어
서 재래적인 심방을 시행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 일뿐 목회적 실효가 없
으며, 교인의 신앙 성숙을 오히려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가지 않겠
다는 입장이다. 차라리 교회내의 프로그램을 체계 있게 운영함으로써 교
인들의 삶을 통전적으로 지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목회
자의 입장도 단순히 나무랄 것이 아니라 대화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III. 목회심방의 신학적 정립과 새 방안
이상에서 우리는 목회자들이 심방의 사역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경험
하고 느끼는 문제들, 고민하면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
들을 일고해 보았다.(한국교회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심방이 끼친 긍정
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이 대화 모임의 성격과 제한된 지면을 고려하여
다루지 않았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위에서 지적한 심방사역의 문제점들을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
제가 아니다. 한국교회에 이해된 심방의 중요성이나 그 비중을 생각할 때
극복책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결과를 빚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행 심방을 재고하고 개선할 것을 신
학적으로 위임 받고 있다.
1)목회심방의 신학적 정립의 요청
일찌기 토마스 C.오덴은 목회심방의 신학적 근거는 하나님께서 심방하
셔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는데 있다고 하였다. 오덴의 이 견해에
따르면 심방은 인간이 인간을 찾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목회자가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같이 나누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스
스로 몸을 입고 오신 것 처럼 목회자는 양무리를 친히 찾아 가도록 부
름 받았다. 오덴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찾아 오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
으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며,상처를 싸매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숙고하
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심방이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오덴,목회신
학,PP.249-252) 이러한 맥락에서 심방의 신학적 근거를 두 차원에서 조
명해 보고자 한다.
가 심방의 신학적 근거의 첫번째 차원은 하나님께서 몸소 육신을 입
고 찾아오신 Incarnation 차원이다. 세상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직무가
세상 사람들이 갖는 직무와 구별되듯이 목회자의 심방행위 역시 세상의
다른 직무와 구별된다는 차원이다. 칼케톤 공의회가 "어떤 목회자도 장
사거래를 하거나 ....또는 세상적인 일에 종사해서는 안된다"고 하
였다.(Seven Ecuemenical Council,NPNE 제 2판,제14권,제269면) 이 주장은
목회자의 자유로운 행동을 규제한 것이라기 보다는, 목회를 경제적이거
나 사회학적으로 요금을 받는 직무에서 전적으로 구분시켜 줌으로써
목회 특히 심방의 직무를 맡은 목회자의 영예를 부추겨줄 이념으로 이
해해야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세상은 허락없이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
을 금하는 엄격한 규칙에따라 진행되고 있다. 의사도 변호사도 경찰도 수
도국 직원도 이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목회는 이러한 직무들과
구별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유에(세상에) 소문을 내지 않고 오셨듯
이 목회자는 소문을 내지 않고 가난한자,병상의 환자,우울증에 빠진 사
람,알콜중독자,슬퍼하는 자,신체장애자,산업재해자 등을 찾아가 쓰라린
문제를 나누고 그들에게 소망과 안식을 불어 넣어 준다. 또 삶의 지표를
선사하므로 심방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이상의 존재가 되게 한
다. 이런 점에서 심방은 목회자의 특권이다. 목회자는 바로 이 일을 위
하여 안수를 받았고 또한 위임을 받은 것이다.
가 심방의 신학적 근거의 두번째 차원은 인간의 갈망과 호소를 돌보
아 주신 예수님의 목양에 기인하기도 한다. 신도들은 목회자에게 무언의
초청장을 보내어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그들의 영적 복지
(Spiritual Welfare)를 위하여 목회자가 방문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
떤 사람들은 목회자의 심방이 오랫동안 지연될 때 자기를 소홀히 하지
는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갖는다. 목회자가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신도들
은 목회심방을 갈망하고 있으며(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목회자가 어
떤 사회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심방 불필요론을 제기하고 있는 순간이
라 할 지라도 신도들은 "우리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손짓하는 것이
다. 이러한 신도들의 요구는 '감정의 논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리
스도의 마음(빌2:5-8)으로 해석할 차원이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3S,
즉 자기를 비우시고(Self-Emptiness),종의 자세로(Servant),인간과 유대
를 맺으신(solidarity)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저들의 요구에 응해야 할 것
이다. 위에서 심방의 신학적 근거를 언급하면서 그 첫째 차원은 하나님
의 Incarnation이고 두번째 차원은 다양한 정서를 가진 인간들의 요구
에 대한 응답이라고 하였다. 이 두 차원에 따라 심방의 신학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심방은 목회자가 하나님과 인
간 사이에 위치하면서 양쪽의 요구에 응하는 목회의 한 방법이다."
2)목회자는 심방에 대한 열심을 회복해야 한다.
앞서 심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7번 자리에서, 한국의 목회자들 가운데
심방을 기피하는 이도 있고 아예 하지 않는 이도 있다고 하였고, 또
그럴만한 이유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들이 심방에 열심을 기울여야 할 목회자의 심방직무 이유 보다는 결
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1) 구속적 인간관계 수립과 메시지 발견이 가능하다.
목회는 개인을 알고 가족을 아는 관계, 또 목회자를 알고 그의 가르침
을 아는 관계형성이다. 심방외 다른 방법으로는 이 관계를 수립할 수
없고, 교인들이 사는 세속적인 영역이나 영적인 영역, 그들이 정말 사는
세계로 들어갈 길이 없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 본문으로, 설교자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신도들에게 다가가려고 하고,또 다가 갔다 하더라도 거기
서는 전혀 구속적인 인간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다는 것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린그렌(A.Lindgren)이 말했듯이 심방을 통해서 설교의 필요와 교
인들에게 의미심장하게 의사소통이 될 어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서 세계 장로교 연맹 회장을 지낸 토란스 박사가 그의 취임연설에서 가
복음적인 입장에서 신도들의 영적 각성을 도모하라. 가 교인들에게 책임
적인 성서 연구를 지속시켜주라. 가 심방에 새로운 열심을 기우리라고
당부한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데 심방은 목회자와 신도간의
구속적인 인간관계를 가능케 하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어휘를 새롭게 발
견할 수 있다. (2) 자동 전화장치나 전자기기의 과학적 효과를 심방의
본질과 그 정신에 대체하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와 신도의 관계는 거리를 둔 메마른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동전화정치나 기계에 기억시켜 놓은 메시지 또는 친근감이 없는 기계
적인 서신으로는 목자와 양 사이에 참다운 관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목
회'라는 개념에서 보더라도 부재목자(absentee Shepherd)는 있을 수 없
다. 목회는 인간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목회 봉사를 우편으로 주문한
다거나 또는 상품화된 목회 서비스를 구입할 수는 없다. 목회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라는 선상에서 상호교류적이어야 한다. 또'목회자'라는
칭호 자체와 직업적인 주체성도 심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자 장치 사
용은 인간미를 주입하는 [감정의 논리]에서만 가능할 뿐이다.그런 것이
못될 때 교인들의 소외감은 그대로 남는다.
3) 개방적인 심방체계가 요구된다.
'심방'이라는 히브리어 어근 'Paqad'가 잘 말해 주듯이 목회심방은 a)신
도의 신앙이 보존되어 자라고 있는가의 여부를 시험하여 증명하는 것이
고 b)모든 것이 순서대로 되어있는가를 살펴보는 것 즉,지금 신앙이
발전되고 있는가를 현장에서 살펴보는 일이다.그렇다면 심방자는 신도들
의 '삶의 자리'에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시대는 목회자의 투입이
용이하지 않으며 (일이 바쁘고,교통사정이 좋지 않고, 도와야할 교인들
의 당면과제 자체가 옛날보다 몇배 어렵게 되어 새 과제를 찾아내기에는
많은 시간을 요한다.),또 교인들도 목회자를 집에서 맞이하기란 용이
하지 않은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맞는 심방형태는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 그 한 대안으로서 목회자가 교인을 "찾아가는 심방구조
(Go-Structure)"와 교인들이 문제를 가지고 목회자에게 찾아와 만남으로서
심방적 효과를 가지게 하는 "찾아오는 심방구조(Come-structure)"를 병행
하는 이른바 개방적인 심방체계에 따라 실시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
을 것이다. 이 대 안이 받아드려진다면 종래의 심방개념 곧 "찾아가 보
살피는 일"이라는 개념과 함께 "오게하여 함께 문제를 나누고 믿음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구비케 하는 일"이라는 또 하나의 개념이 추가되어
쌍방 통행적 심방 체계가 가능할 것이다.
<개방적 심방체계 모델><1>찾아가는 심방구조의 종류, 성격, 내용
일반심방 / 한 주간에 1-2일 정도 심방을 정하여 구역별 혹은 호주의 성
명을 가나다순으로 분류하여 실시
유고심방 / 1유고심방 - 요일과 관계없이 실시(환자,천재지변,실패자,
장례전후등)
2축하심방 -출산,신혼,회갑
3개업심방 - 개업
목회 행정 / 유고 유무를 관계하지 않고 교인들의 가정을 전부 돌아보는
상의 심방 / 심방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구역의 순서대로 진행 (화, 목 실
시) *대심방
새신자심방 / 전입자,초신자,신입자
서신심방 /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한 사람, 장기 결석자, 서신으로
지도해야 할 대상자
전화심방 / 육성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
직장심방 / 점심에 만날 수 있는 직장인
<2>찾아오는 심방구조의 종류,성격, 내용
초청심방 / 가상담과 대화로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자
가각기관의 임원들을 Group별로
*Rapport형성이 가능 *화요일 저녁/목회자 응접실
전화심방 / 가신상에침해받는 것을 거리는 자
가비밀유지를 원하는자의상담
가전화상담을 원하는자(금요일 :오후8- 9시까지)
서신상담 / 신앙생활의 문제,교회문제, 성격의 문제,직업에 따른 문제 인
생의 문제
상 담 / 수요일 오전 9:30 -11:30
목사 사무실
요컨데 개방적 심방은 가신도들이 비워 놓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곳을 통하여 접촉하는
것이다. 가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들을 가지고 교회로 찾아오게 하
고 그들을 목사가 개별적으로 만나서 지도하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가
목사가 목회 일정표에 '찾아갈 날'과 신도들을 '만나는 날'을 정하고 신
도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가심방기록을 근거로 심방효과를 나타내 가야
한다.
4) 심방제도에 대한 보완책이 요구된다.
가. 대심방제도에 대한 수정
1년에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하던 대심방은 2년에 한차례 함으로써 교회
의 신경이 심방으로만 편중되는 것을 막고, 심방외 다른 목회업무가 정
상적으로 진행되게 한다.'대심방'이라는 용어를 '교우가정심방'으로 바꾸
어 부르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이를 위해서 꾸준히 순회한다.(담임목사)
나. 정기심방장기환자,고령으로 출석하지 못하는 자,근친을 여읜자는 4개월에 
한차례 심방(담임목사와 부교역자)
다. 병원입원환자 심방 : 병원 입원 환자는 1차 담임목사가 하고, 그 뒤
는 부목사나 장로 또는 집사에게 맡긴다.
라. 초청심방,서신심방,전화심방을 심방계획에 넣어 실시한다.
마. 요청심방
요청할 때는 요일, 시간에 관계 없이 신속히 응한다.
바. 목회적 심방은 부교역자 팀과 구역장에게 맡겨하고, 보고를 받아 후속처리를 한다.
5) 교인의 심방기피 현상을 치유해야 한다.
앞서 지적했거니와 심방을 꺼려하고 기피하는 신도들이 있다. 그것은 심
방의 본질을 외면한채 시행된 심방과 잘못된 동기에서 치뤄진 심방의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이해해야 한다. 또 심방원들의 결례,비밀누설,어
설픈 분위기,피곤증, 부담감등의 역작용으 로 나타나는 징후다. 교인
의 심방기피증을 치유하기 위하여
가 심방자는 신도들로 하여금 목사나 자기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
실이 의사소통토록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인간 자신에 대한 관심을
전달하는데 우선 목적을 이어야 한다.
가 심방을 교회출석률 증가나 교회헌금을 증가시키기 위한 기회로 삼
지 말아야 한다.
가 심방을 받는 개인이나 가족을 친숙하게 알려고 해야 한다. 즉 피심
방자가 개인적으로,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또한 종교적으로 진정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기 위해 심방자는 그들의 가정과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적당하게 설교를 할 수 있고, 현명하게 상담할
수 있고, 위기에도 협조적으로 공헌할 수 있다. 또 그의 신앙을 성숙하게
교회생활의 경험으로 인도할 수 있다.
가 교역자는 심방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의 관심을 전달하러온 사자
라는 것이 인정 어야 한다. 교역자는 피심방자의 친구사이이건 이웃이건
간에 그 이상의 사명을 가 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가 심방원에게 상담기술,예절,봉사심, 심방수칙을 가르쳐서 피심방자
의 자존심을 긍정해 주며 지지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가 피심방자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그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것이 경
험되도록 관련을 맺는다.
가 심방자는 모든 주의를 심방받는 사람에게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말
을 많이 들으려 하고 말은 적게 하는 편이 좋다.
이상 일곱가지 항목이 심방기피증을 치유하는 완전한 약은 아니지만
지대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다.
IV. 끝내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한국의 목회자들이 심방사역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추려 그 원인을 목회학적으로 밝혀보고, 여기
나타난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여기 제시한
문제점들이나 심방대안은 "구속적인 인간관계로서의 심방"이 되어야 한다
는 책임성에서 마련된 것이다. 끝으로 심방자가 유념할 몇가지 지혜를
모아 결론에 대신하려고 한다.
1) 목회자로서 우리는 다음 두가지 가설에 연루되어 심방에 전력을 기
울이기도 하고, 아예 심방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즉, (1)목사가 교
인들의 필요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그들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매달리면, 교인들의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그들이 당면
한 특수한 문제들을 알지 못하면 교인들에게 의미있는 설교를 하는 것
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심방목회에 온 힘을 쏟게 된다. (2)이와 반
대로 사도행전 6장에서 시작된 업무 분담은 사도들이 말씀의 연구와 기
도에 전시간을 바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주장에 매달리면, 심방과 같
은 형식적인(Perfunctory)책임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하고, 주로 서재에서
연구하고 명상하는 것에 시간을 바치게 된다. 아울러 교인중 하나 하나
를 정규적으로 심방하는 일상 계획을 뒷전으로 미루고 만다.
우리는 위의 두 가설(주장)중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해서는 안될 것이
다. 목사직의 본질가운데는 '심방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깊히 박혀
있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목회에 내면화시키고 슬기롭게 행동해야 할 것이
다.
2) 목회에는 부재목사(absentee Shepherd)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
다.
목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의 관심을 가지고 개인(가족)에게 다가가도
록 부름을 받았다.'목회자'라는 칭호나 목회자의 직업적인 주체성은
목양의 비유에서 유래하며 이는 심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
고 심방에 대한 새로운 열심을 회복할 것이다.
3) 목회심방의 모델은 예수이다.
예수의 목회심방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자기백성을 돌보아 속량(눅
1:68)"하신 그런 심방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사람들의 가정과 그들의
일터를 찾아갔을 때, 단순히 축복기도나 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밑바닥까지 파고 들었고 그들의 우상숭배를 폭로 했고 하나님의 임
재를 깨닫게 했으며 그들의 영혼 깊은 곳을 통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
으며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라고 권유하였다. 예수야 말로 심방자의 모범
이다.
4) 심방과 다증의 목회와 심방기피증의 목회 패턴은 똑같이 목양을 그르
친다.
5) 현행 한국의 대심방제도를 비롯하여, 정규적인 심방제도를 개방적인
체계가 되도록 변형해가야 할 것이다.

발제-김광집.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