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사/현대교회사

20세기 세계복음주의 지형도_제3강

[제3강 강의개요]
20세기 세계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현대기독연구원/기독연구원 느헤미야 2014년 여름 강좌) 
강사: 이재근(PhD, Edinburgh)
제3강 (2014년 7월 1일 화요일, 19:30-21:30)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어떻게 읽었는가?
20세기 영미 복음주의의 역사적 발전
1. 미국 (신)복음주의의 시작과 기원
① 칼 헨리: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 1947), 노던침례신학교 교수, 보스턴대학(BU) 박사
② 해럴드 오켕가: 전미복음주의협회(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1943 / 근본주의 ACCC 및 에큐메니컬 FCC 대응) 창립회장, 보스턴 파크스트리트교회 담임목사, 피츠버그대 박사
③ 풀러신학교 설립(1947):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소재 복음주의학문연구소, 찰스 풀러(라디오 전도자, 창립자, 이사장), 오켕가(총장), 헨리(조직/윤리), 해럴드 린셀(교무/역사), 윌버 스미스(변증), 에버릿 해리슨(신약)
④ 빌리 그레이엄의 등장: 신복음주의의 운동의 공적 간판이자 모델, 1949년 LA집회 이후 전국구 인사, 1948년부터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BGEA) 창설, 1954년 런던집회(국제무대), 1955년 뉴욕집회(에큐메니컬 협력), 1957년 풀러신학교 이사 
⑤ 「크리스채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창간(1956): 성경주의, 현대성, 학문성, 총체성, 포괄성, 협력성
2. 영국 복음주의의 다양성: 잉글랜드 성공회, 스코틀랜드 장로회, 잉글랜드 비국교회
① 잉글랜드성공회 (저교회) 복음주의: 1950년대 이후 자유주의적 복음주의 세력 이탈 및 그레이엄 영향으로 복음주의 경계선 설정이 상대적으로 쉬워짐(이전에는 ‘보수’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적’ 복음주의 공존).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나 지적으로 훨씬 예리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복음주의 집단 이미지 구축 성공 
② 존 스토트: 1950년 6월에 올소울즈교회 교구 사제 취임, 『근본주의와 전도』(1956): 영국판 신복음주의 설계도, 교회와 사회의 중심부를 침투하는 전인적이고 균형 잡힌 정통 기독교 ③ 제임스 패커: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1958), 역사적 정통으로서의 근본주의
④ 비국교도 복음주의: 전반적으로 진보(SCM). 예외는 침례교연합(찰스 스퍼전의 유산, 온건 복음주의) 및 개별 복음주의자(eg. 마틴 로이드-존스의 1966년 2차 전국복음주의자회의에서의 복음주의자 ‘분리’와 ‘연합’ 요청), 성공회 복음주의에 비해 영향력 미비
⑤ 스코틀랜드국교회(장로교): 개혁파 중도(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카를 바르트), 1급 세속학문성과 신학/목회 훈련의 조화(Scottish Ancient Universities: 세인트앤드류스/아버딘/글라스고/에딘버러), 비국교회(주로 자유교회 및 침례교 등)는 1832년 대분열 이후 점차 세력 약화
3. 영연방(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복음주의의 지역별 발전 양상
: 미국보다는 대영제국/영연방 종주국인 영국, 특히 전 세계적인 기반을 가진 IVF(1928, 하워드 기니스의 순회), 성서유니온 등의 강한 영향
① 호주: 호주 IVF(1936), 성공회 복음주의 주도, 하워드 몰, T. C. 해먼드, 레온 모리스 등, 시드니 교구를 중심으로 개혁파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강세(백호주의와 연대)
② 뉴질랜드: 뉴질랜드 IVF(1936), 성서유니온, 성공회는 고교회적, 남섬은 장로교 유행
③ 캐나다: 캐나다 IVF(1929), 미국식 근본주의보다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식 반가톨릭주의(가톨릭 퀘벡과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온건 복음주의
복음주의 성경연구, 성경관 논쟁, 강해 설교
1. 영국
① 틴들(Tyndale) 성경연구회: IVF 성경연구위원회(1938), 연례 틴들 신구약연구강연(1942), 틴들하우스(1944), 틴들 성경연구회(1945) “잉글랜드에서 복음주의는 어떻게 반계몽, 반지성 딱지를 뗄 수 있을까?”
② 성서학(특히 신약)의 부흥: F. F. 브루스(리즈/맨체스터), W. J. 마틴(리버풀), 하워드 마셜(아버딘), N. T. 라이트(더럼/세인트앤드류스), 데이비드 브러턴 녹스(호주), 레온 모리스(호주), 그레이엄 스탠턴(뉴질랜드), 조지 래드(풀러), 브루스 메츠거(프린스턴TS)
③ 영국 종합대 출신 성서학(+신학 일반) 박사 취득자의 미국 포함 영미권 신학기관 지배: (영국) 복음주의 학자의 종합대 진출, 신학기관 및 대학기관의 일원화 vs. (미국) 분리와 고립
2. 미국
① 풀러신학교 논쟁(1960-1970년대)
i) 에드워드 카넬: 풀러신학교 2대 총장(1954), ‘신복음주의’ 대신 ‘복음주의’ 용어 확정(1958), 『정통신학론』(The Case for Orthodox Theology, 1959) 및 논문에서 근본주의(세대주의/그레셤 메이첸) 공격, 풀러의 전환기를 대표한 인물
ii) ‘성경무오’ 논쟁
(1962) 대니얼 풀러(설립자 찰스 풀러의 아들, 바르트 제자로 바젤대학 박사)의 학감 취임 
(1963) 데이비드 허바드 총장 취임 
(1964) 부총장 해럴드 린셀 사임 
(1972) 신앙선언문 개정: ‘성경은 신앙과 실천의 유일 무오한 법칙’(완전-축자영감 포기) 
(1976) 해럴드 린셀(Harold Lindsell), 『교회와 성경무오성』(The Battle for the Bible)
(1978) 시카고성경무오선언(린셀 with 패커, 프란시스 쉐퍼) 
사태의 확산: 복음주의신학회(1983), 남침례교단(1985)
3. 강해설교 부흥
① (잉글랜드) 캠벨 모건, 마틴 로이드-존스, 존 스토트 ② (스코틀랜드) 윌리엄 스틸 
③ (미국)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 제임스 보이스 ④ (호주) T. C. 해먼드, 데이비드 브러턴 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