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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사회학자료

흑사병에 대한 유럽의 반응.

흑사병에 대한 유럽의 반응.
#특히종교적대응과관련해서

흑사병은 1347년 말 이탈리아의 네 항구도시 레조 디 칼라브리아(Reggio di Calabria), 제노바, 피사, 베네치아에서 시작하여 본토로 확산되었다. 이탈리아 반도에 전염병이 상륙하여 중북부의 도시들에 전파되기까지는 몇 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 동안 적절한 대응체제를 갖추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대인들은 흑사병이 하느님의 분노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반응은 당연히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 그들은 기도와 행렬을 비롯하여 여러 종교적 노력들을 다하였으며, 피렌체 시의 경우 전염병이 극성을 부리던 1383년과 1457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대규모 종교행렬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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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C. Trexler, Public Life in Renaissance Florence(Ithaca and London, 1991), 362,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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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메시나에서 성모상과 성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건은 당대인의 종교적 심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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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지글러, 한은경 역, 『흑사병』 (서울: 한길사, 2003), 5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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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자의 익명의 연대기작가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그 도시에서 시도되었던 조직적인 각종 종교의식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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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Bergdolt, ed., Die Pest in Italien. Fünfzig zeitgenössische Quellen (Heidelberg, 1989),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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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당국은 시민들로 하여금 종교적 경건함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노여움을 달래보려 시도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그와 같은 사례들이 빈번하였으나, 도시의 법령으로 강제하지는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이 시기에 특히 종교적 실천을 강조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 이 지역 도시들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전까지 가톨릭교회에서 빈번하던 행렬의식이나 성상에 경배를 드리는 행위들이 이 지역에서는 기도와 설교로 대체되었다. 라이덴 시는 1624년에 흑사병에 전염되었던 기간 동안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성 피터 교회와 하일랜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의무화했으며, 1636년에는 공동기도일을 지정하여 경건하게 지내며 노동은 물론 음주와 도박을 삼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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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A. van Andel, "Plague regulations in the Netherlands", Janus, 21(1916), 4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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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의 "흑사병에 대한 도시들의 대응"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