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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개혁주의와 율법주의

개혁주의와 율법주의

개혁주의는 항상 율법주의라는 부작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강조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대속 교리도 형벌적 대속 교리를 취하고 있을 정도로 율법 이해와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개혁파 교리의 근간입니다.
누구도 빗겨가기 힘든 이 부작용은 언제 생길까요? 율법에 순종하길 멈추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자라기 시작합니다. 율법의 기능이자 용도인 죄를 깨닫게 하는 이 용도는 중생 이전에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중생 이후에도 작동합니다.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2용도 역시 이전과 이후에 모두 작동합니다.
율법에 순종하길 멈출 때, 우리는 스스로 순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순종할 때만 우리가 스스로 순종할 수 없는 무능력과 전적 부패를 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멈추면 외식이 시작되고 외식은 자기를 성찰케 하는 성령의 조명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 결과 외식할 뿐 아니라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유대인의 환경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로마서는 그런 점에서 새관점으로 읽힐 수 없습니다. 제가 볼 때 새 관점은 곰을 피하려다 사자를 만나는 격입니다. 그것은 성도의 영혼을 약탈하고 피폐하게 할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김성수 목사의 신학도 다 이런 부류 입니다.
참된 신앙으로 돌아가는 길은 율법이 인도하는 곳에 있는 복음을 만나는 것입니다.


2014.04.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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