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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예정은 은혜다.

예정은 은혜다.

노승수 목사 

성경이 예정을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달려가야 할 구원의 길이 너무나 극난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여정에 있어서 인생을 연단하는 풀무같습니다. 그래서 불순물이 다 제거되기까지 하나님이 풀무질을 멈추지 않으시고 대장장이 하나님의 망치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물론 살다보면, 이래저래, 보너스 같은 푸른 초장을 만나기도 합니다. 엘림의 오아시스도 만나지요. 인생에서 고난은 필연이 아닐 수 있지만 구원에서 고난은 필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이란 게 본질적으로 우리 본질을 바꾸는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이고 그 일에 인생에 여러 광야만큼이나 적절한 풀무가 없기 때문이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살아 남을 신자가 거의 없습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중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전부였고, 조상과 예배와 율법과 성전이 주어졌던 이스라엘도 제하여 버림이 되었습니다. 
이런 험난한 구원의 여정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이 "예정"이며, "섭리"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 섭리 다 하시는데 기도할 필요가 어디있냐? 하나님 다 정해놨는데 구원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어디 있냐?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중 예정'과 관련해서, 그런 하나님이면 나는 안믿겠다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본적인 논리는 바로 앞서 언급한 이런 험난한 구원 여정을 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던지는 위로입니다. 얼마 전 소치 동계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1만 미터 주행을 하는 데 보니, 코치들이 몇 바퀴 남았다고 알려주더군요. 그냥도 느적느적 대도 다 들어 올텐데 왜 알려줍니까? 바로 기록 때문이죠. 그리고 그 표지판을 보고 더 분발하고 스퍼트를 냅니다. 
성경의 예정의 논리는 이런 겁니다. 마라토너가 결승점을 앞에 두고 그냥 가도 골인이니 하며 느적느적 뛰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 예정을 성경이 알려주고 섭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다하니까 난 느적느적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닥치게 되는 여러 환란들은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그 때 코치이신 하나님 몇바퀴 남았다 하며 보여주는 보드가 바로 예정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우리 경주의 장차 드러날 영광이 크기를 목격하고 더 기도하고 더 믿음 가운데 거하지 아버지가 다 하시니 기도할 필요도 없다는 논리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만약에라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단언컨대 영광을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험난함도 잘 모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위로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마라토너가 자기 경주의 결승점을 보고 사력을 다하지 않는 선수가 있습니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경주에서 지치는 까닭은 성경이 약속한 영광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그 영광을 가까이 보여줄 하나님의 수단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환난 가운데 붙들어야 할 것도 이것이구요. 
그리고 그 극난한 구원의 여정에 예정의 영광을 목격했더라도 오늘 당장 너무나 힘들지 않습니까? 그때,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공급받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기 때문이 기도의 필요가 없다구요. 저는 이 말이 더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나님이 신실하게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을 때는 예정의 영광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겪는 풀무와 망치질에 그 견딜 힘을 주시는 은혜의 통로를 어찌 사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혹 형통한 길을 걷고 있기에 필요 없다구요. 그 형통하고 편안한 중에도 은혜의 공급이 없으면 금방 불평과 불만 가득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기도할 필요를 못느낄 수 있을까요? 전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전도서는 형통한 일과 곤고한 일을 번갈아 주어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 헤아려 알게 되면 하나님의 권고를 따라 우리 영혼이 자라가는 과정에 인간의 꾀를 따라 혹은 요령을 따라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성령의 권면을 따라 성경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인생에 내 선태 ㄱ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 선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묵묵히 이겨 가는 것이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만을 위로로 삼는 신자의 본분입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2014.03.15 0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