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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경건의 연습

20세기 많은 거장, 지휘자, 작곡자, 연주가들이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라고 말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꾸준한 연습의 결과다. 신자의 경건도 꾸준한 연습의 결과다. 바울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디모데를 권면한다. 경건을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감정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이런 우리의 내적 상태는 은혜의 수단을 부지런히 사용하지 않고는 형성되지 않는다.

이것을 율법의 행위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이 방식은 자신의 행위를 의지해서 은혜라는 최종 목표를 향한다. 퍼거슨의 표현대로 하면 그리스도 그 자체보다 그 은택에 초점을 두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기 행위를 제어하는 노력을 하고 그 결과로서 은혜라는 어떤 종류의 감정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의 경건은 율법을 대면하고 거기에 순종할 수 없는 자기 비참을 발견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이다. 이 때 신자의 초점은 그리스도가 베푸는 은택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 자체이며 그렇게 그리스도와 연결된 신자는 은택을 입게 된다. 이렇게 신자에게 베풀어진 은택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내적 동력이자 정서이며 가장 본질적인 사랑이다.

이런 이유로 참 신자가 경건을 위해서 하는 연습은 행위를 의지해서 어떤 감정을 얻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시편 기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자기 연한을 깨닫고 그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순종하지 못하는 죄인임을 발견하고 거기에 절망함으로 그리스도 그 자체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으로서 말씀과 기도이다.

이런 자기 상태에 대한 각성과 그리스도에 대한 갈급함이 신자를 기도와 말씀으로 밀어넣고 그렇게 신자는 하루 기도를 쉬면 그 심령이 알며 그가 이틀 기도를 쉬면 그의 말이 변하고 사흘을 기도를 쉬게 되면 그의 손과 행동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이것이 칼뱅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감정의 실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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