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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교회에 대한 고민

교회에 대한 고민


노승수 목사


가끔 목사님 설교말씀이 저에게는 은혜가 안되어서요. 특히 성경인물을 예로 드시며 누구처럼 누구처럼 하자~ 할때, 그리고 아... 그.., 좀.... 말씀을 너무 깊이 없이 전하실 때? 마음에 시험이 많이 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분이시다, 나 말고는 다 은혜 받는다, 내가 좀 이상하다, 다른 불만은 없으니깐 계속 섬기자' 라는 생각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고민이 되요. 교회가 워낙 많으니깐여 여기저기 다 다녀볼 수도 없구요, 혹시 교회 좀 추천 받을 수 있을지요.
은혜가 안될 때, 목회자의 설교에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성도들의 마음이 높아져서 그런 경우들도 많습니다. 제가 아는 아주 정말 제 생각에는 설교로만 놓고 평가하자면, 한국교회에서 5손가락 안에 들만한 교회의 성도들이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불평하고 심지어 그 설교 때문에 교회를 옮기기도 하더군요. 
대체로 지식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는 말씀으로부터 찔림을 받기보다 말씀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베뢰아 교인처럼 그 말씀이 그러한가 상고하시면 조금 부족한 설교에도 우리 마음이 찔린바 되며, 은혜를 경험하리라 믿습니다. 어지간하면 옮기지 마시고 신앙생활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싱글이 자유로운 반면 인생의 깊이는 혼인자에 비해 옅은 편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생을 덜해서 그렇죠. 책임도 적고 결혼 생활이 늘 행복하고 달콤하기만 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가라지를 두시는 이유가 알곡이 상할까 염려하심이라는 말씀을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교회 안에 때론 여러가지 시험꺼리가 우리를 성숙케 합니다. 결혼 생활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혼인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사람과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은 같은 심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더 많이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두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런던 어시장에 청어를 산채로 잡아오는 어부가 있었습니다. 비결은 청어 어항에 대구를 몇마리 넣어두는 것입니다. 그럼 청어는 잡아 먹힐까 긴장하며, 이리저리 피하다 런던까지 살아 옵니다. 때론 우리 삶의 위기가 나를 살게하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호주에 가면 키위라는 날지 못하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천적이 박멸이 되어 그들에 입장에서 자연환경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멸종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유는 천적을 피해 날지못하는 까닭에 늘 도망다니던 새가 천적이 없음으로 도망다닐 필요가 줄어들자 비만이 온 거지요. 그래서 평소 낳던 알보다 두배나 배속 에서 자란 알을 자연상태에서 산란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멸종위기를 맞은 거지요. 하나님이 신자에게 환난을 베푸시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교회 생활이 지겹고 은혜가 안되십니까? 내게 똑같은 위기 때문에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 것이라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잘 견디고 생활하면, 어느새 열매 맺고 자란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목회자의 설교와 관련하여서 여러차례 제가 나눈 거 같지만 다시 말씀드리면, 설교도 좋고 인격도 좋은 설교자, 설교는 좋은데 인격이 안좋은 경우, 설교는 형편없고 인격은 좋은 경우, 설교도 인격도 형편없는 경우, 첫 경우면 금상첨화요, 마지막 경우면 교회를 옮기십시오. 그러나 우리 삶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목회자는 가운데 두 경우이지요. 두번째 경우라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고 세번째 경우라면, 진리의 파편을 붙들고 목회자와 건강한 관계 가운데 배워가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상에 교회가 완전한 것이 있겠습니까? 고린도 교회를 보면 오늘 내가 속한 교회에 감사하게 될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교 회를 떠나 선교단체를 찾는 까닭이 이런 이유이지요. 그러나 교회는 보다 다양하며, 연약해 보일때 진정한 성숙과 성장이 가능한 공동체가 됩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 내가 속한 교회를 정말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