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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인문학자료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 강민숙


색이 없다는 것은,

자기의 색갈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서 꽃은 색의 의미를 안다.


색을 고르기 위해

뿌리는 어둠 속에서도 잠들지 않는다.

노랑, 빨강, 분홍 옷감을 고르기 위해

꽃은 자기의 목숨을 건다.


그러나, 꽃은

결코 어둠의 옷을 입지 않고

땅속 어둠을 어둠으로 피워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둠은

향기가 아니라는 것을 꽃은 안다.


눈이 오면 눈이 되고

비가 오면 비가 되는 몸부림으로

돌 틈, 바위 틈서리

부둥켜 안고서 혼자 목울음을 운다.


어둠을 뽑아

살아 있는 빛을 피우기 위해

바람의 푸른 눈망울 앞에

바람보다 먼저 고개 숙일 줄을 안다.


엎드려 낮게 엎드려

바람을 탓하지 않는 꽃이 되어

꽃향기가 되어,

꽃은 땅속 어둠을 넘어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