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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인문학자료

맘 내키는 대로.. - 길 재-

맘 내키는 대로.. - 길 재-

 

맘 내키는 대로 (述志) 
 
시냇가 외딴 초가 
한가로이 홀로 삶에 
臨溪茅屋獨閑居 

달 밝고 바람 맑아 
흥취 절로 일어나네 
月白風淸興有餘 

찾아오는 손 없으나 
산새들 지지배배 
外客不來山鳥語 

대숲 가에 평상 놓고 
누워서 책을 보네 
移床竹塢臥看書 

고려말 삼은 중 한 분이자 조선조 사림파의 원조로 존중받은 야은 길재(1353-1419) 선생의 만년 작입니다. 선생이 암운이 도는 고려말의 흉흉한 정계를 떠나 구미의 금오산에 은거하여 자연을 벗하며 한가롭게 지내던 때의 심사를 적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살지만,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지만, 철 따라 바뀌는 간단없는 시냇물 소리가 있고, 산 너머로 찾아드는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있고, 이젠느 통역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있고, 거기다 책 속의 고인들과 시도 때도 없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니, 자족자락(自足自樂)하는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밖에 바랄 게 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나중에 태종임금이 된 이방원이 그처럼 불러내려 하였지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됨직도 합니다. 
마지막 구의 '누워서 책을 본다(臥看書)'는 표현이 참 묘합니다. 성리학자로서 이름 높은 선생이 정금위좌(正襟危坐)가 아닌, '누워서'라고 했는데, 틀 속에서 자라 마침내 틀을 깨고 나온 무애자득(無碍自得)의 경지인지, 낙천(樂天)을 말함인지…, 오래도록 여운이 남습니다. 옛람들이 현묘한 시구가 있다고 하더니만, 이런 게 그런 겐가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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