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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기타미분류

멀러 테제와 개혁신학의 미래

멀러 테제와 개혁신학의 미래 
김남준 목사
리차드 알프레드 멀러가 하고 있는 신학적 작업들이 우리에게 함의하는 바가 충격적이다. 기존 우리들이 편견에 의해 보지 못하고 있었던 신학연구의 다른 부분에 대해 볼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충격적이다. 멀러 테제에서 테제는 자신이 발견한 테제가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인데, 너무 오랫동안 여러 편견으로 인해 잊혀졌던 것들을 다시 보여주는 것 뿐이라 멀러는 말한다. 그렇다면 멀러 테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중세는 종교개혁과 관계가 없다. 종교개혁이 성경적 신앙을 재건하였는데, 그만 시간이 흘러 종교개혁자 1-2세대의 순수한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이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루터파에서는 멜랑히튼이 주범이고, 칼빈파에서는 베자라는 사람이 주범이었다. 그들의 큰 과오는 종교개혁자들이 세워놓은 성경적이고 신앙중심적인 신학을 이성주의와 스콜라철학을 도입하여 변형시켜놓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개혁신학의 내용들이 훼손이 되어서 별 가치가 없는 신학적 결과물들이 되었다는 것이 요지다..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에 획을 긋고,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에 줄을 긋고,
종교개혁가들이라고 했는데, 루터는 너무 신앙중심적 주관주의에 빠져 급히 종교개혁을 만들어 잘못된 요소들이 많았는데, 칼빈이 그 모든 것을 조절하여 완전한 형태로 만들었다. 루터는 짤라져 나가고, 같은 시기에 쯔빙글리나 블링거는 왜 그런지 가르쳐 주는 자 없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고, 칼빈 한사람이 남았는데, 칼빈의 저작이 많은 책을 저작했으나, 논쟁적 작품이나 편지등은 번역 안되어 짤려 나가고, 주석은 너무 길어 생략하고.. 기독교강요는 3번에 거쳐 증보되었으나 마지막것이 제일 좋으니까 1판 2판 짤라내고 마지막 최종판을 두고 개혁신학의 전부인것 처럼 외로운 섬하나 기독교 강요.. 그것이 개혁신학과 일치하고, 개혁신학이 아니냐 마냐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슐라이어막허라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 있는 단절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내세운 이 테제가 슐라이막허 테제였다. 그리고 우리는 슐라이어막허 테제하에서 공부하게 된 것... 
아이러니..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또 생각했으면서 정작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개혁파 신학적 유산 교의학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루이스뻘콥, 찰스하지가 나오고..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크다. 찰스하지가 쓴 조직신학책이 개혁파 정통주의 시기에 나왔던 에프란시스틴...?? 칼빈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17세기(존오웬과 같이 활동하던시기)에 같이 활동하던 사람이 소위 변증신학 강요라고 하는 책을 정리해서 만든 것이 찰스하지의 조직신학 책이다. 이렇다 보면 모순이 명백해진다. 그러나 거의 모르고 신학작업을 해왔다. 그러다 멀러교수가 이러한 기존에 알고 있던 테제가 상당히 잘못된 편견에 의해 학인도 되지 않고 전승되어 내려온 습관적인 편견이란 사실을 방대한 문헌을 통해 섭렵해 내면서 멀러테제라는 것이 빛을 보게 됨.. 그러나 멀러 교수 자신이 말하듯, 멀러 교수 방법대로 연구하는 자가 모드 멀러와 연관을 갖고 있거나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화란개혁주의에서는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의 연속성에 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신학작업을 하던 무리들이 있었고, 스위스도 있고 독일에도 있었다. ..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들이 다 살펴볼 터인데... 
개신교 정통주의란? 정통이란 길을 의미하는 것인데 “올바른 가르침”, “올바른 견해” 라는 뜻이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제기했던 최대의 화두였다.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사도들->신약성경->속사도 교부들->초대교회 교부->중세교부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왔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이 교회의 터를 놓을때 견지했던 정확하게 일치하던 올바른 견해들이 똑같은 형태로 하나의 막대기처럼 존재했던 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처럼 덧붙여지고 성장해 왔는데, 그것이 덧붙여 진것 중에 어떤 것들이 정통적인 것을 역사적으로 정당하게 펼치면서 성장한 것인지, 원래 있던 것을 굽게 했는지의 문제를 분간이 필요해 정통이란 것이 나왔다. 
종교개혁자들이 그래서 중세의 교회로부터 종교개혁을 할 때에 제일 먼저 제기한 것이 우리들에게 광범위하게 살포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견해가 참으로 근거가 있는,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 나아가 예수그리스도의 교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통적인 것인가가 화두가 되었다. 
여기서 정통이란 말이 오게 된다. 비성경적 가르침들이 어느 시대의 가르침에 함께 융합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제거하고 일탈된 견해에 대항하여 올바른 기독교적인 삶과 교훈을 다시 재확립하는 것을 위해 정통주의라는 용어가 도입되었다. 
개신교 정통주의라 할때에.. 크게 시기를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1단계: 종교개혁1,2세대(1523/28-1564)
-개신교 신학 전제들이 제시되고 설명됨
-주요학자: 멜랑히튼, 칼빈, 블링거... 등
종교개혁1,2세대 쯔빙글리의 67개조항.. 칼빈이 죽을때까지.. 
루터가 1세대라면 칼빈은 2세대에 속함..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멜랑히튼시대에 속함.. 그러면서 정통주의 시기로 넘어감.. 개신교 정통주의시기.. 
2단계: 초기 정통주의 (1565-1640)
1) 초기 정통주의 전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출간(1565)부터 도르트총회(1618)까지.. 존오웬이 3살때 쯤.. 초기 정통주의가 막을 내리고 있었음.. 
-정통주의 뼈대를 세우고 형식화를 시작한 시기
-주요 국가신앙고백서들이 출현
이때 어떤 신학에서 사용된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교리에 대한 응집력이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정리하던 시기
2) 초기 정통주의 후기: 도르트 총회 이후 시기
-알미니우스와의 논쟁을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정의
-논리적, 철학적 일관성을 갖춘 ‘교회 교의학’을 발전시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경
-주요학자: 우르시누스, 유니우스, 퍼킨스, 베자, 폴리누스, 헤일즈 등.. 
레이든대학교에 유니우스라는 인물이 칼빈 밑에서 공부를 하고, 레이든 대학교를 개혁신학으로 이끌고 이 사람의 제자인 고마르스인데. 그 사이에 알미니우스가 들어온다. 그가 여러가지 요소로 개혁신학자가 아닌데도 이 학교에 힘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다 고마루스가 등장한다. 영국에서 공부해 옥스포드에서 학위를 받는데.. 이 사람의 제자가 카톨릭 신학을 거의 정확히 알고 있던 몇 안되는 자 중 한사람인 후치우스이다. 
초기 정통주의에서 알미니우스와의 논쟁을 거치면서 종교개혁자 편에서는 큰 충격이 오게 된다. 이제까지 종교개혁자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물려받았는데.. 처음부터 개신교의 모든 조직신학이 완성된 것이 아닌 상태에서 예를 들어 칼빈은 삼위일체론을 기독교강요에서 다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카톨릭에서 주장하던 삼위일체와 별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카톨릭과 관계에서 볼때 차이가 나는 것만 집중하여 다루면서 조직신학을 세우게 된다. 그러다가 알미니우스가 나타나면서 두 가지 도전을 받게 된다. 
여태 이루어진 논쟁에 대해 무딘 칼로 다루어졌던 것을 이제는 예리한 칼로 다루어야 알미니우스 같은 자가 비집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미로.. 알미니우스 주의자였는데.. 그는 칼빈의 신학을 정당히 물려받은 자들에게 “너희는 칼빈을 몰라. 너희는 칼빈을 잘못 계승하고 있어. 내가 칼빈을 가장 정확히 해석하거든?” 이라고 하면서 칼빈이 동의할 수 없는 알미니주의적인 주장을 설포한 것... 칼빈의 원천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내놓으면서 예리하게 이 문제를 다룰 필요성.. 
두번째는 개신교만의 독자적인 새로운 체계를 내놓아야 겠다는 필요성..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다시 정확하게 정의하고.. 일관성과 철학적 일관성을 다시 정검하면서 잘 갖춰진 교의학을 갖추기 시작... 하이델베르그 등... 
그러다 전성기 정통주의로 오게 된다. 
3단계: 전성기 정통주의(1640-1725)
-새롭게 등장한 논적자들에 대항하여 신학의 정교화 작업과 종합화 작업이 일어남
-신앙고백의 형태를 띤 신학을 논쟁적, 스콜라적, 적극적, 설교적, 요리문답적 형식 안에서 정교화시킴
-주요학자: 코케이우스, 마레시우스, 보에티우스, 차녹, 오웬, 튜레틴, 마스트리히트, 푸치우스, 브라켈, 픽테트 등.. 
이러한 전성기 정통주의는 1725년에 급격히 막을 내리는데 그 이유는 18세기 계몽주의 운동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통적 철학과 논리학들이 쇠퇴하면서 개혁주의 사상들이 사라져 가는데, 그래도 남아서 정통적의 유산을 지키려 했던 자들이.. 
4단계: 후기 정통주의
-18세기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정통주의의 죽음이 시작됨
-전통적 철학과 논리학의 상실,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의 쇠퇴로 개혁주의 사상의 신앙고백들이 사라져감
-주요학자: 존 길, 콤리
개혁파 전통주의는 종교개혁 이후에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좀더 구체화 했던 작업을 했던 작업을 했던 자들인데.. 이들의 자질이 종교개혁 이후에 최고의 자질들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들은 철저히 인문주의 교육을 받고 많은 자들이 카톨릭 출신으로 있다 전향했던 자들이라 카톨릭을 철저히 공부했던 자들이다. 이들이 작업했던 작품들이 상당하다... 이것이 거의 라틴어로 작성되었는데. 영국학자들이 번역을 그나마 많이 했다. 
이 때에 이루어진 신학의 일반적 특징이 있다. 
이전에 교회가 신앙을 고백해왔는데, 자기들도 신앙을 고백했고. 그 고백한 내용을 성경 석의를 통해서....그 시대 사람들의 주석의 제목만 썼는데. 레터지로 250페이지.. 
개혁파정통주의자들의 40%는 어학자들이 많았다. 히브리어, 헬라어, 근동언어까지..
그 당시에는 아무나 목사가 되었던 것이 아니다.. 의사되는 것처럼 좁은 문이었다. 제대로 된 학문을 공부했어야지만 했고 경건과 학문이 융합되었어야지만 하는 삶전체이다. 그들에게 신학지식, 교리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정의하고 있는 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들은 성경하나를 배우고 믿습니다 하면 충분히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지식의 원천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지식의 원천으로 해서 모든 세계에대한 지식이 하나로 통합된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해 인간이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 이런 통합적인 신학의 그림을 이 사람은 가르치고 있었음.. 
이때의 일반적 특징이 스콜라 방식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비난을 받는다. 
종교개혁
개신교 스콜라주의
-하나님의 계시를 개인적인 것, 사건으로 이해함.
-역동적
-그리스도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그것을 증거하는 것임
-온유한 인문주의 정신을 가짐
-명제적인 것으로 이해함
-정적
-하나님에 의해 언어적으로 지시된 말씀이라고 전제함
-아스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형이상학의 엄격함이 있음
하나님의 계시를 개인적인 것, 사건으로 이해한 것을 스콜라주의식으로 진술할 때에 개인적이고 사건이 아닌 명제적인 것.. 즉 이런 식으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주장.. 
멀러 학자가 이러한 오해를 벗겨주기 전까지.. 이렇게 알고 있던 이해.. 
스콜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혁파정통주의가 왜 그런 식으로 신학을 진술하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스콜라주의.. 스콜레라는 형용사에서 온다.. 이는 할일없는.. 노는.. 이런 뜻인데.. 여기서 스쿨.. 이란 단어가 나온다. 그래서 공부는 한가한 사람.. 배부른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하기 이른다... 
그런데 스콜라주의는.. 본래적으로.. 
1. 본래적 의미: 학교에서 교욱을 위해 사용하는 정신 훈련의 형태
2. 내용적 의미: 방법론만의 문제가 아닌 중세시대 대학에서 가르친 가르침.
3. 경멸적 의미: 전횡적 or 권위적 방법론 or 고루하고 상상력 결여된 견해->스콜라주의가 변질될때 나타난 전형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것(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오는... )
4. 방식적 의미: 개신교 교리의 제도화 과정에서 교도의 기술적이며 논리적인 접근방식을 말함. 
개신교 교리를 형식화 함에 있어서 고도의 기술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방식이 교리 진술에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개신교 스콜라주의라는 이름이 나오게 한 원인... 이 스콜라주의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스콜라주의는 “방법론” 어떤 인문학에서 어떤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진술해 나갈때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크게 4가지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1) 질문 곧 논제를 제시
2) 제시된 질문안에서 논의해야할 주제들을 명확히 지정
3) 채택된 교리와는 상반되는 주장, 곧 다양한 반론들을 제시
4) 광범위한 신학의 원천들을 고찰하여 제시된 반론에 답변함.
그런데 이 스콜라주의라는 것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게 된 것은 개혁파 정통주의는 스콜라주의적 방법으로 교리를 진술했다. 이런 방식을 접하면서 슐라이막허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스콜라주의를 나쁘게 보기에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순수한 재료들을 스콜라주의적으로 좋게 받지 않고 변형시켜 놓았기에 순수한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던 순수한 교리와 경건을 올바르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옳지 않은 작업들을 거둬야하는데. 그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동안의 테제였다. 
그러나 멀러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그런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베자나 멜랑히톤과 같은 사람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살던 시대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다. 모든 인문학의 기본은 그 사람의 기술이나 업적을 해석할 때에 그 당시의 칸텍스트에 맞게 해석해야지 오늘날 문맥을 가져가 바울에게 혹 칼빈에게 가서 왜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사람과 피흘리며 싸우지 않았냐 질문하는 것은 인문학의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때의 칸텍스트로 보면 루터와 칼빈의 식대로 진술하는 것이 꼭 필요했고
루터와 칼빈이 그가 죽은 이후 약 100년 후에 치열하게 전개되는 개혁파 정통주의 방식대로 종교개혁의 대의를 진술을 했다면 종교개혁은 본래의 의미를 희석해버리고 말았을 것..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저작된 저술된 루터나 칼빈의 저작들을 보면서 무엇이 카톨릭과 다르다는 말인가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그들은 그 당시에 충실했던 것... 그리고 그들이 죽은 후 시대는 상당히 급격히 변화됨.. 
1559년 마지막 판.. 기독교강요.. 제3판과 전판을 비교해보면.. 3배나 늘어났다.
칼빈은 자기 생각을 바꾼게 아니라..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옛날의 간단한 것 가지고 안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 칼빈 이후에는 더 많은 상황이 벌어진 것... 
그들이 사용한 스콜라주의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의 문제”다... 라는 것.. 
칼빈과 루터가 만들어 놓은 종교개혁의 떡반죽이 예전에는 큰 양푼에 담겨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교한 유리 그릇에 담겨 나온 것.. 종교개혁 신학이란 그 질료를 스콜라주의라는 틀을 사용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먹을 만한 빵으로 다른 모양으로 찍어낸 것이다. 이것이 멀러 교수의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대한 요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스콜라주의와 무슨 관계인가?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주의를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하고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했다. 긍정적: 자신의 학문을 나타낼 때.. 긍정적으로 사용했으나.. 큰 도움이 되나.. 종교개혁자 1,2세대가 버린적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 부정적: 기독교강요에 보면 스콜라주의를 아주 강력히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당시에 있었던 개신교 신앙을 불합리한 방법으로 모함하던 카톨릭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한 탄핵의 내용이었던 것..
개신교 정통주의 스콜라주의에 대한 결론.. 두 가지.. 
1. 개신교 정통주의 스콜라주의는 13세기에 완성된 신학적 스타일을 변형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대게 성경을 중심에 놓고 가능한 대중적이고 설득적인 방식을 사용했고 초기에는 과도하게 신학적 전개를 하지 않았다. 후기로 가면서 성경해석 주석의 결과를 토대로 논적들과 달리하는 의견에 대해 구분하는 이성적 논리를 따름.. 
기독교 교리를 총포괄적으로 개신교 만의 독자적인 기독교교리의 포괄적 진술을 만들기 위해 스콜라철학을 사용했고 이바지하여 도움을 주었지, 개신교 신학을 망가트린 것이 아니라는 것..
2.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방법론에 속한 스콜라주의였고, 중세 스콜라주의의 폐단과 문제점들을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도 너무 잘알고 있길래.. 방법론 스콜라주의와 내용으로서의 스콜라주의를 혼용해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변질시킨 것은 아니다..
크고 중요한 핵심 논점.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의 연속성.. 
슐라이막허 테제에서는 불연속성이 강조,
연속성이 강조되었어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연속성이 강조..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의 연속성.. 요약하면
불연속 이론과 연속성 이론.. 
연속성이론: 부정적의미에서냐? 긍정적의미에서냐?로 나눔.. 
-종교개혁으로부터 이탈한 것이라는 주장
-두 원천을 가진 교리 (이성과 계시)로 주장
-이성 우위성(계시를 대체할 중요한 원리로 등장), 자연신학에 대한 신뢰 등을 그 실례로 제시
슐라이막허 이후로 내려와 지배하는 이론이다... 칼바르트가 나타나 수정을 가하나 기본적 토대는 같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치명적으로 이탈해서 종교개혁의 대의를 심하게 훼손했다” 그래서 전통적 신앙으로 돌아가려면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중요한 근거를 삼으면 안된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이성을 너무 중시했다. 너무 중시한 나머지 계시와 동등하게 놓기를 중세의 카톨릭이 실패한 이성의 지위를 높은 것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것.. “ 계시보다 이성을 너무 높였다.. (물론 근거는 없는 주장임.. )
-스콜라주의적 요소가 종교개혁자들 속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을 주장, 그러나 둘 사이의 연속성은 부정.
-신앙을 체계화, 이성화 하였고 스콜라주의적 사고방식 요소를 의식적으로 차용하였다고 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개념의 틀이 정통주의 해석학을 결정하였다고 주장.
-스콜라주의는 형식적 도구적 장치 이상이었으며 성경은 이성주의 양식 안에서 왜곡되었다고 봄.
개혁파정통주의자들이 안좋은 의미에서 스콜라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어디서 배웠냐? 종교개혁자들이 없던 것을 새롭게 배워온 것이 아니라. 그 밥의 그 나물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제2세대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활짝 펼치지 않았던 것을.. 그 후계자들이 선생들이 절제했던 것을 확 펼친 것이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스콜라주의는 14-17세기까지 점차적으로 발전함.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수용함에 있어서 내용적 측면과 형식적 측면을 구별하여 적용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였다고 주장
-이중적 연속성을 강조함(중세와 종교개혁, 종교개혁과 정통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차용하여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세계, 인간, 영원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이 중세철학의 전체적인 배경이었다라고 배워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세기 이전 철학자인데.. 그의 철학 체계가 기독교에서 생각하기에는 기독교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 초기 기독교는 플라톤 사상이 되려 적합하다 생각.. 기독교 사상과 흡사해서. 세계가 일자에서 왔다는 것. 만물이 일자로 돌아간다는 것 인간이 덧없다는 것.. 등... 그렇기에 플라톤을 좋아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형이상학과 범주론을 읽으면 특히 형이상학을 읽으면 플라톤은 회심한 철학자란 느낌이 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회심할까 말까한 철학자로 느껴진다. 그래서 후에 아리스토텔리스의 저작들을 후에 불태워 없애 버린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점령한 나라의 문화(이슬람 문화)를 보고 충격받은 기독교... 이슬람문화를 이끈 원천이 무엇인가 했더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었던 것...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점으로 이전의 모든 세상의 학문이 아리스토 텔레스로 집결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퍼져나간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그가 혼자 만들어낸게 아니라 어떤 판단과 진술을 쓰는 방법들을 그가 정리한 것이다. 
학문이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유사한 것 그 속에 다른 것을 찾는 것.. 학문의 첫번째 요소.. 분석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보이지만 같은 것을 종합하는 것 이것이 학문의 핵심.. 
그런데 학문을 하려면 그 틀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 이슬람 문화가 이틀로 이슬람을 발전시킴.. 11세기 12세기 경에 있었던 일... 
그런데 그 시기에 수도원에서 높은 학문을 유지..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것이 있으나 연속성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눈사람 만드는 원칙 같이.. 발전해서 추가된 면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의도했던 그 내용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바꿔서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는 예전의 이 테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
결국...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통찰들을 개혁파정통주의가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의 반복이나 복사판이 아니라는 것에서는 불연속성을 가진 것이고
-중세신학이 스콜라주의적인 형태를 의존하는 면에 있어서는 방법론적 연속성을 가졌으나 중세의 내용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내용을 가진 점에는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루터가 부겐하겐을 목회쪽으로 멜랑히톤은 신학쪽으로 맡기는데.. 루터가 살았을때 비텐베르크 신학교를 멜랑히톤에게 일임함.. 당시 제네바 아카데미와 비텐베르크 커리큘럼을 보면.. 3분의 2가 인문과목이고.. 멜랑히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침.. 
루터가 죽은 후에 그 일을 했다면 그 일을 했다면 비난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다 봄.. 
루터와 칼빈 말기에는 그들의 초기 종교개혁과 다른 상황이 전개 되었고 새술을 새부대에 담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루터가 천재인줄 알았으나.. 학교가 성적을 보면 중간 쪼금 넘는 정도... 
신앙은 성적 순 아님.. 
각 시대마다 인물들이 태어나면 자기에게 맡겨진 몫이 있는 것 같다. 칼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한 것 같고, 자신의 후계자는 자기와 같이 단순히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논재를 토대로 논쟁력을 갖춘 자를 찾았던 것... 그런데. 그러면. .모든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멀러교수팀이 자주 하는 말이.. 
“이게 최초다라는 말 하지 말라” 그래서 멀러테제 라는 용어자체를 싫어함.. 
멀러교수는 어디서 모티브를 얻어서 150년 이상동안 통요되어 오던 사람들의 선입견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의 연속성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하는점이다...
프랑스 철학자 에띠엔느 질송(프랑스 토미스트 철학자) 데카르트 연구가임.. 데카르트를 기준으로 철학사가 중세가 근대사로 갈림.. 그가 남긴 유명한 말.. “나는 생각(회의=의식)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는 인류 역사상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사유였다.. 여태 철학이 존재론 중심이었는데, 인식론 중심으로 넘어간 것이다... 
모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아나? 
배고플때 돌을 보면 빵같고, 정신차려 보면 돌인데.. 
내가 이것이 무엇이라 보인다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회의론..
의심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사물을 의심할 수 있는 것을 다 의심하는데.. 
결국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어쨋든 그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로 옮겨온다.. 
도나벤츄라.. 중세후기 철학에 접하면서 결론이 온게..
데카르트가 독창적 사람이 아니라.. 중세 후기에서 이 단서를 발견하고 
자기 것처럼 하여 데카르트 주의를 만들었음을 깨달음... 
1900년대 초에 논물을 발표함.. 그때까지 갖고 있던 테제는.. 
중세에는 신학만 존재했지, 철학은 없다는 것... 모든 합의를 이룬 테제였는데..
데카르트철학은 중세와 연관성없고 이전 그리스철학과 연관성 갖고 있었다는 것... 
데카르트 철학은 중세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 
40년 이후 그의 주장이 보편화 됨...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르네상스 인문주의 연구가. 중세와 르네상스 인문주의 연속성 연구) -콜롬비아대학 명예교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사실 새로운 철학의 체계나 사조가 아니라 고전 수사학 전통에 기반을 둔 문화적 교육적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것”을 찾아냄..
스콜라주의가 인문주의자들이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일으켰던 사상들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함 그것이 뭐하냐하면 중세시대 개념에 항거하여 인본주의중심으로 개념들이 공격하는데 중세시대 있었던 스콜라주의란 상자 안에 종교개혁주장을 담아 보관.. 
헤이코 오버만..(네덜란드 역사신학자) 중세와 종교개혁의 연속성 연구... 
라차드멀러의 핵심 주장
1.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스콜라주의는 방법론적으로 사용했지,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훼손한 것이 아니었다. 
2. 모든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다 스콜라주의식으로 저술한 것이 아니다. 
3. 17세기 개혁파 신학은 결코 성경신학을 무시하지 않았다. 
4.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주의를 모두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5. 고유한 의미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어느 철학이든지 성경의 진리를 그 시대에 맞게끔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도움이 되면 차용한 것... 
신학공부하고 신앙생활하는데. 뭐가 문제냐면.. 종합적이질 않다... 
즉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되는 것..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지식의 체계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나마 옛날에는 교리 교육을 했는데
요즘은 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교리를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도 안가르치니
붙들고 살것이 없다는 것.. 
세계와 교회와 역사와 인간을 보고..내가 지금 어느 시점에 왔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것인가 하는 시야를 가져야하는데 이는 교육이 필요한 것... 교회와서 윤리적 삶의 당위성 발견못하고 나 때문에 믿는자 욕먹으면 안되니 잘 살자는 생각은 신앙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