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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미움의 기원

미움의 기원
노승수 목사
미움이란 감정은 하나님이 주신걸까? 아님 범죄로 인해, 그 타락으로 인해 결과된 것일까? 
내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겐 통점이란게 있다. 뜨거운 걸 만지만 '앗 뜨거'라고 신속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주는 통점, 통점이 없다면야, 인간은 고통이란 걸 겪지 않겠지만 그것이 없음으로 인간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emergency system과 같다. 우리 삶이 겪게 될 더 큰 재앙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헤의 수단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몸에만 이런 장치를 주시지 않고 우리 마음에도 위기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두셨다. 그게 바로 미움이다. 뜨거운 걸 만졌을 때, 즉시로 반응하는 것이 위기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이듯이, 미움을 맞닦뜨렸을 때..., 우리는 즉시로 그 위험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난 후, 우리는 미움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다. 미움은 우리의 사랑이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것으로 부터 속히 돌아서야 하지만 뜨거운 것을 만지고 다시 살피며 마음에 새기고 수없이 복기하며 미움의 대상을 해꼬지 하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문제는 미움이 결국 자신에게 더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마치 뜨거운 것을 손에 계속 쥐고 있으면 우리 피부가 해를 입듯이 말이다. 결국에 우리 삶은 황폐해진다. 이것은 연약한 자아의 자기 방어이다. 그럴 수 있다. 이 미움을 사랑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로 알고 통합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라면서 이것을 배운다. 사랑의 대상인 엄마에 대한 미움이 커질 땐, 그들의 상상 속에 사랑을 주는 엄마와 마녀로 split을 한다. 우리 전래 동화에도 공포의 상징인 호랑이가 사랑의 상징인 엄마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도 이런 유아적 내면의 그린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미움은 사랑으로 통합되어 간다. 그것이 성장이요 성숙이다. 때론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미움을 잘 못 다룸으로 미숙함이란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미움은 사랑을 더 온전하도록 만드는 사랑의 안전 장치와 같다. 고급 스포츠카가 놀라운 속력을 낼 수 있는 까닭은 엔진이나 구동장치가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 속력을 감하여주는 제동장치가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미움은 마치 우리 사랑의 과속을 알려주는 제동장치며, 사랑의 위기를 알려주는 emergency system이며, 사랑이 더 사랑이 되도록 도와주는 좋은 벗이요 친구이다.



2012.02.27 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