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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자아동조적 자아 vs 자아이질적 자아

자아동조적 자아 vs 자아이질적 자아
노승수 목사
정신건강을 평가하는 척도 가운데, 자아동조적 vs 자아이질적 이런 기준이 있다. 상담시 첫면접에 평가하는 항목 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에게 있는 신경증적 요소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동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비해 치료적 예후가 높기 때문에 이 평가를 한다. 
이걸 문득 생각하다보니,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라는 논어(論語)의 글귀가 떠오른다. 
군자들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들의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다. 
자아동조적인 사람은 그 신경증적 요소 때문에 타인이 자신과 같아지길 요구하고 그러한 압력을 행사한다. 이런 사람이 ...부모가 된다면, 아이들은 무언의 폭력과 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아이의 여린 자아는 결국 부모와 같이 신경증적 요소를 자아동조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반해 자아이질적인 사람은 자신과 그 증상 사이에 분명한 split이 존재한다. 예컨대, 바울이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 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치이다. 자기 내부에서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분명한 분리와 화합을 보인다. 
대체로 한국인들이 토론에서 심하게 열을 받는 이유는 상대의 의견을 자신의 인격에 대한 말로 이해하는 즉, 자아동조적 성향 때문이고 사실 이것은 상당히 신경증적 요소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와 교회는 그런 점에서 심히 병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