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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디도서강해

바울의 사명과 장로의 자격(딛 1:1-9)

바울의 사명과 장로의 자격(딛 1:1-9) 

노승수 목사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1-9, 개정)
1. 바울의 사명(1-4)
성경 묵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늘 잊으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교훈이나 방법을 얻으려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경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말씀하시는지를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 어려워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 경건의 시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합니까? 거짓이 없으신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영원한 때 전부터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으로부터 바울이 사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세가지를 말씀하네요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전도로 나타내셨고 이 사명을 맡기셨다고 합니다. 결국 바울의 사명은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그 복음의 내용이 세가지 곧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까? 
2. 디도가 그레데에 남은 이유(5)
그레데의 디도가 남겨진 사명은 부족한 일을 바로 잡는 것과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장로와 같은 직분자들을 위임하여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역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부족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있습니다. 지상에 교회가 있는 한 교회에 늘 부족한 일이 생깁니다. 그런 일이 생길 때 사역자들은 이 일을 성경의 말씀에 따라 바로 잡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나는 사역자들의 권면에 잘 순종합니까? 그것이 성경에 따른 권면이요, 우리 신앙 양심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역자들의 말씀에 의한 권면에는 우리가 순종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두번재는 이 부족한 일을 바로 잡는 일이 사역자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장로를 세우라는 것은 그 일을 상당 부분을 장로들에게 위임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장로가 아니니 나에게는 해당이 없다고 성경을 읽으시면 잘 못 읽으시는 것입니다. 장로는 교회의 모범이 되는 자이고 따라서 모든 성도가 따를 만한 모범임으로 우리에게도 적합한 말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교회가 위임하는 일들에 대해 순종함으로 따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장로의 직분은 아니더라도 사역자들이 위임하는 일들을 게으르고 불충하게 대하는 일은 주님의 맡기신 사명을 악하고 게으르게 대하는 일이라는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다른 한 면에 교훈은 사역자들에게 주어진 교훈입니다. 보통 사역자들이 위임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족한 것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울은 장로를 위임해서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그 부족함을 바로 잡는 일에 위임보다 더 좋은 방편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는 위임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주님께 물으시고 적절히 성도들과 직분자들에게 위임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3. 장로의 자격(6-9)
앞서 말씀 드린대로 내가 장로가 아니니 나에게는 해당이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는 마땅히 교회의 본이 되는 자요, 모든 성도가 마땅히 따를 만한 귀감을 보이는 자이니 장로의 자격에 합당한 것은 모든 성도가 따를 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잘 행하게 되면 무흠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자격이 바로 무흠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신앙은 가정 생활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자녀를 방치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일관성 없는 양육으로 자녀 마음 속에 분노를 심지 않는 부모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제 고집대로 하는 법이 없겠지요. 특히 중요한 것은 신실한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들이 너무나 형편없이 취급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습니다. 주일성수가 무너진지 오래이며, 예배에 대한 소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방적이며 세속적인 문화가 예배에 들어와 예배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장로된 자 뿐 아니라 믿음 가운데 있는 자라면 언약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할 수 있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스려 말하는 자들이 사랑의 대상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양들은 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들이 거스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양이 아니거나 아직 미숙하여서,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거나 입니다. 성경은 그와 같은 일을 책망하여 바로 잡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책망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책망하면 시험들어 교회를 떠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런 일로 교회를 떠나야 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하루 속히 교회를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책망을 소홀히 한 결과, 오히려 교회가 순결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책망을 하는 일이나 책망을 듣는 일에서 주의 언약의 말씀 앞에 신실하며 그 말씀이 세운 권위자들 앞에서 진실함 마음으로 들으며 또 그런 마음으로 권면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