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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기타미분류

바울,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에게 있어서 “법”

바울,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에게 있어서 “법”
(Law in Paul, Thomas Aquinas, and Luther)
우병훈 목사
루터에게는 자연법이 신법과 일치한다. 루터에게 자연법은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의 표현이다(88). 따라서 크리스천에게도 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의 마음에 쓰여진 신법은 황금률로 나타나는데 이는 자연법의 핵심이다(88, n.265).
루터는 바울이 말하는 율법을 구원 역사적 맥락에서 관찰하지 않고, 구조적 해석으로 접근한다. 즉 유대인의 율법주의적 태도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의 하나로 본 것이다. 루터에게 구약 율법은, 모든 민족이 가지고 있는 법들의 한 형태이다(79).
루터는 자연법을 성령의 새로운 법과 연결 안 시키고 우리를 고발하는 구약의 율법과만 연결시켰다(80).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바울처럼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 관계로 보지 않았다. 이 점이 바울과 루터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80; Ebeling, Word and Faith, pp. 260-61).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완성시키신 분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성취하셨다. 바울에게 성령의 새로운 법은 자연법의 완성이 아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법의 정신은 사랑과 성령이 핵심이다. 사랑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더욱 융통성 있게 모든 상황에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해 준다(76). 사랑은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바꾼다(77). 바울에게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새로운 법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의 완성이다.
루터에게 법과 복음은 다른 것이다. 루터는 중세 스콜라 전통과는 다르게 복음을 자연법에 새겨진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의 한 형식으로 보지 않았다(88). 스콜라 전통에서는, 자연법과 동일한 방향을 지향하는 신법이 구약법과 복음의 차이 위에 위치한다(80 n.250).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I-II, Q91에 따르면, 세상은 하나님의 이성에 의해 질서지워진 영원법(lex aeterna)에 종속되며, 그것이 이성에 의해서 인식된 것이 자연법(lex naturalis)이다. 자연법에 따라 인정법(lex humana)이 세워진다.
영원법, 자연법, 인정법은 자연 질서를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초자연적 질서를 위해서는 신법(lex divina)이 필요하다. 신법은 옛 법(lex vetus)과 새 법(lex nova)으로 구분된다. 옛 법은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선을 약속하는 두려움의 법(lex timoris)이고, 새 법은 천상의 지성적 선을 약속하는 사랑의 법(lex amoris)이다. 신법은 자연법과 일치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다.
이와 별도로 육의 법(lex carnis)이 있는데, 이것은 동물의 경우에 본능에 속하며, 인간의 경우에 법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이 된다.
정리하자면,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구원 역사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율법의 정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법으로서 온전히 완성시켰다. 이는 성령의 새로운 법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
중세 스콜라 전통(특히 토마스의 『신학대전』)에서는 영원법이 가장 상위에 있다. 자연법과 인정법은 영원법의 자연 안에서의 구현이다. 구원을 위해서 신법을 주셨는데, 신법은 자연법과 원리상 일치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다. 신법의 하위 항목으로 율법(옛 법)과 복음(새 법)이 있다. 따라서 중세 스콜라에서는 복음도 역시 하나의 법(새 법)으로서 묘사된다.
루터에게 자연법은 신법과 일치하며, 그것은 다시 구약법과 일치한다. 루터는 복음은 법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복음을 새 법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에서는 정죄하는 기능으로서 율법(옛 법)이 여전히 구속력이 있다.
따라서 루터는 법을 스콜라 전통에서처럼 구조적으로 해석하면서도, 스콜라와는 달리 복음을 법의 형식으로 보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지점 모두 바울과 다른 점이다. 바울은 법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였지만, 복음 역시 성령의 새로운 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에게 성령의 새로운 법은 자연법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법의 완성이다.
* 이상에서 괄호 안의 숫자는, Pannenberg, Systematic Theology, Vol. 3의 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