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목회칼럼

반율법주의에 없는 개념들

헛소리에 기만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공부하는 것외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공부합시다.

#개혁파_신학은_로마교_신학에_수정을_가했다
#인죄론이_틀어짐은_기독론의_변질과_그에_따른_구원론의_변질을_가져온다_인죄론의_기본구조인_언약과_율법_이해는_말할_것도_없다
#반_율법주의자들이_부인하고_싶은_석의적_개념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 3권 208쪽

로마교 신학은 죄의 허물이 있는 상태 reatus cupae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상태 reatus poenae를 구분한다(P. Lombardus, Sententiarum, II, dist. 42‘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 II, 1, qu. 87, art. 6. Concilium Tridentinum, c. 14, can. 30. XIV ‘de poenitentia’ , c. 8 그리고 can. 18-15. R. F. R. Bellarminus, De amissione gratiae et statu peccati libri sex, V, 19. Theologia Wirceburgensis, dogmatica polemica scholatica et moralis, V!I, 27.) ... 하지만 이러한구분은 여기 지상과 연옥에서 신자들을 위한보상적 형벌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죄책과 형벌의 속성과는 정면으로 모순된다. 물론 신자들, 즉 완전한 용서를 받은 자들의 죄는 그 자체로 언제나 죄이기에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부인하고 따라서 신자들의 용서를 위한 기도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반反 율법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개혁파는이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했고 잠재적 죄과 reatus potenialis와 실재적 죄과 reatus actualis를 구별했다(B. de Moor, Commentarius, III, 135).

#범책과_벌책을_구분하지_않는_것_그리고_범책이_다_사해졌다는_식의_이해는_기만적_평화와_불안과_두려움을_부른다.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 4권 169쪽

결국, 이 체계는 죄의 허물이 있는 상태reatus culpae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상태reatus poenae, 용서될 수 있는 가벼운 죄와 죽을 수밖에 없는 무거운 죄를 부당하게 구별했는데, 무거운 죄는 그리스도에 의해 용서되지만, 가벼운 죄는 신자들 자신이 배상할 수 있었다. 또한 #이_체계는_형벌과_징계의_차이를_부인했고, 그리스도와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며 무시하고, #오직_두려움에서_생겨난_뉘우침attritío을_충분한_것으로_여겼으며, 모든 신자들에게 사적인 고해를 부과했고, 참회를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성사로 들어 올렸다. 실제로 이로 말미암은 결과들은 평신도가 자신의 구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죽을 때까지 사제에게 의존하여, 한편으로는 사제와 마찬가지로 #죄에_대해_피상적으로_그리고_외적으로_평가하고, 사죄의 선언, 자신의 종교적 의무와 사면에 의지하여 #거짓된_마음의_평화를_누리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했는지, 죄의 형벌을 충분하게 받았는지, 그리고 죽을 때 하늘로 갈 것인지 혹은 아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수년 동안 연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매일_불안과_두려움에_빠진다.

#자동_성화론은_바로_이런_석의적_개념의_부재에서_온다
#그리스도의_의를_율법에_순종하신_능동적_순종의_의가_아니라_본질적_의로_이해하는_ㅈㅇㅊ의_오시안더와_유사한_주장은_이런_배경이_있다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 4권 263쪽

이것은 로마교가 주장하듯이 칭의를 ‘은혜의 주입’에 두고 #용서를_성화에_의존하게_하여_죄의_오염을_제거하는데_있지_않다. 죄사함은 또한 단지 ‘죄의 허물이 있는 상태’ reatus cutpae의 제거, 즉 실재적으로 영원한 형별로부터 해방만도 아니다.

#반율법주의자들은_이해할_수_없는_개념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 4권 264쪽

이에 반하여 모든 개혁파 신학자들은 용서가 물론 죄의 실재적 죄책 reatus actualis을 제거하지만, 잠재적 죄책 reatus potenialis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용서가 형벌을 제거하지만, #죄의_형벌의_당위성을_제거하는_것은_아니다. 죄가 지속되는 한 이 죄의 형벌의 당위성은 지속된다. 죄는 특히 신자에게 있어서 죄책감, 비탄, 후회, 하나님과 멀어짐, 자책 등을 수반한다. 죄는 양심의 평안, 믿음의 담대함과 확신을 빼앗는다. #이것은_다른_도리가_없다. 죄의 속성은 죄책감과 형별의 당위성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심지어_신자들이_이미_오래_전에_용서받은_후_나중에_자신의_부패한_마음을_더_깊이_알게_되면, 그들은 심지어 어릴적 죄를 고백하고 자신들의 허물을 #자신의_잉태와_출생으로까지_거슬러_올라갈_필요가_있다(시25 7, 51:4, 5).


https://www.facebook.com/DoyouknowLewis/posts/2229496484035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