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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삶의 방식 : 화평

삶의 방식 : 화평


노승수 목사


봄에 산에 가서 삽으로 한 번 푹 퍼면, 그 안에 평균 865마리의 진드기와 265마리의 벌레와 22마리의 노래기와 19마리의 풍뎅이와 12가지 다른 형태의 생물 다수를 포함하여, 평균 1356마리의 생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애니 딜라드라는 작가가 말했다. 하나님의 다양하심을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화평이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 평화가 있는 것을 화평이라 한다.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로 인해서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그의 삶의 스타일이 못마땅하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인데,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바꾸지 않으면서 상대방은 나에게 맞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삶이다. 앞서 자연의 예에서도 보듯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결정조차 같은 것이 없고 나무의 잎사귀 모양조차 같은 것이 없고, 사람의 지문이나 눈의 홍체조차 같은 사람이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것은 사람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견디기 힘들고 왠지 괜히 주는 것 없이 사람들이 미운가? 누군가와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하는가? 그건 내속에 화평이 없다는 증거이다. 화평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 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다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쉽게 휘말린다. 내가 아니면 그 뿐인데,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에 흥분한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술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다. 이것은 그 안에 분노가 내재해 있다는 증거이고 사람들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평은 개별화가 잘 이루어질 때 나타난다. 내 안에 당당한 자부심이 있다면 누가 뭐라한들 흔들리겠는가? 보통 초등학생들이 친구들끼리 서로 많이 놀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기가 아직 자존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기여서 그런 것이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갈 수록 현저하게 줄어든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명확하고 확고한 인식과 깨달음, 그리고 맛봄이 없이는 화평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 우리가 서로 같아 지는 것은 비극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교훈을 배운다. 전체주의 사회를 지향했더 독일 제 3 제국의 히틀러를 생각해보라, 볼셰비키 혁명과 공산주의의 몰락을 생각해보라, 같은 것은 비극이다. 다르고 달라야 한다. 
우리는 다를 때 불안을 느낀다. 그것은 낮은 자존감의 반증이다. 다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같이 가면 안심이 되고, 바른 길을 가더라도 혼자가면 불안하다. 우리 사회가 유행에 민감한 것도 사회적 자존감이 낮다는 반증이요, 비싼 물건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낮은 자존감의 반증이요, 명품과 명품 짝퉁이 범람하는 것도 이것의 증거이다. 우리는 비슷해지면 화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이다. 화평은 내가 비로소 나 다워지는 개별화가 충분히 이루어질 때, 타인의 타인됨을 존중해줄 수 있는 것이다.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화평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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