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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상식이 통하는 신앙

상식이 통하는 신앙


노승수 목사


어느 누구에게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은 삼가야 한다. 말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의 가슴에 꽂은 칼은 어느 날엔가 내 등에 비수로 돌아온다. 그가 수많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깔아뭉개고 모욕감줄 권리는 없다. 누군가에 가슴에 남은 비통함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신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강변하지 마라. 하나님은 그걸 허용하신 적이 없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신앙은 병적인 것이다. 그것은 해로운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일은 결코 하나님의 일일 수 없다.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19세기 선교가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시행됨으로 중국정치의 삼자 원칙을 만들어 냈다. 선교 = 제국주의로 인식된 것이다. 역사가 준 교훈을 외면하면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영혼이 불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로 그들의 인격권이 무시되고 우리의 신앙을 그들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교회 밖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나의 믿음을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가? 믿음은 우리가 강요한다고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신앙을 나눌 뿐이다. 내가 받은 은혜를 간증할 뿐이다. 성경의 증거하는 복음을 강단에서 선포할 뿐이다. 그것이 들리도록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세 기독교는 두려움의 종교였다. 그런 까닭에 이유없이 마녀사냥을 일삼았다. 사람들을 귀신들렸다고 내 몰았다. 이런 신앙적 행태는 결코 선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종교 개혁 당시 재세례파들은 예배 중에 남녀가 다 발가벗고 성령이 임하였으므로 우리가 이렇게 벗고 있어도 음욕이 일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정상적인가? 비뚤어진 신앙이다. 신앙은 상식적이어야 한다. 
개인이 하나님이나 종교를 사적 유익, 권력, 쾌락, 명예를 위해서 이용할 때, 신앙은 해로운 것이 된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고, 그것으로 상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적 유익, 권력, 쾌락,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하급 종교에 흔히 있는 일이다. 점쟁이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8월에 꼭 물조심하라 거나 자전거를 타면 죽으니까 타지 마라거나, 등등의 말로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고, 그 두려움으로 사적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사랑" 그것 외엔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일이 우선이다. 믿음은 마음을 여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참된 신앙은 상식적이며,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로 나타난다. 섬기는 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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