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천신학/설교학

설교자와 성령의 기름부음

설교자와 성령의 기름부음
1. 성경의 영적 해석 원리
로이드 존스의 성경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칼빈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전통의 빛 속에서 성경을 이해한다. 그는 말씀과 성령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불가분의 연결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원리를 설교에 적용하면서 설교자가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성령의 조명이 필요함을 가르쳤다.
만약 성령이 성경이 쓰여지는 데 영감을 주었다면, 그것에 대한 이해력이 점점 자라가고 현재 당면한 상황에 그것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도 성령의 도움이 필요함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고 순간의 영감에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또한 성경을 우화적이나 신비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거리를 두었다. 그는 성령을 의지하며 믿음 안에서 설교를 하였지, 성령을... 걸고 도박을 하는 설교를 멀리하였다. 정당하게 강해되고 적용된 말씀들은 시제로 설교자의 회중을 위하여 주님에게서 온 말씀이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청교도의 설교에 대한 공리를 반영한다. 이 확신에서 몇 가지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첫째로, 오직 성령이 성경의 해석자이다.
우리 주님은 성령이 오시면 그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16:13)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깊은 생각을 가졌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은 성령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성경을 ‘성령 안에서’ 읽지 않는다면, 거기서 받을 수 있는 충격은 단지 시적이며 미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은 1566년 개혁주의 스위스 제 2신앙 고백서에 나온다. Praedication verbi Dei est verbum Dei. 것에 불과할 것이다.
에베소서를 가지고 행한 연속 설교에서 로이드 존스는 조직적인 방식으로 그
절들을 훑어 나가면서, 바울이 그의 독자들을 위하여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라
고 기도한 표현을 다뤄야 했다. 그는 이것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인식한다. 만약
성령이 눈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설교는 ‘전혀 무익하고 공허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영적인 조명과 설교자의 노력은 양립한다.
비록 로이드 존스가 설교에서 영감의 요소를 믿었지만, 만약 우리가 입을 넓게 열면 주님이 채우시리라”(시81:10)는 본문의 오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 통찰과 지식의 섬광을 받을 수 있지만, 설교자는 준비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로이드 존스 또한 성령을 진실하게 의지하되 자신이 성경을 해석하는 노력과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하나님을 믿되, 가루를 건조하게 유지하라’는 격언과 나란히 놓았다. 즉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을 믿되, 당신이 그 복을 받을만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열심히 연구하라고 하였다. 성령의 역할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서 그 진리 가운데로 들어가기를 원할 때 그를 비추는 것이다.
셋째로,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의 진리에 도달하도록 돕기를 원하신다. 
성령님은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를 기꺼이 도우신다.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강해자는 올바른 마음과 훈련된 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그것의 깊은 것들을 측정하며 그것의 가르침을 명확하고 적절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모든 학문적 기술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충고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경을 적용하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며, 우리의 지성은 빛을 받습니다.…우리는 이것들을 한 데 모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 사이에 쐐기를 박고,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더 강조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 말씀 위의 성령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우리 안의 성령님입니다. 그는 자신의 요점을 확증하였다. 설교자가 설교자 되려면 성령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것이다.
2. 중요한 요소들 - 8가지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말할 것이다. 로이드 존스가 가장 존경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의 설교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강조하였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바입니다. 조지 휫필드는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느끼지 못하고 설교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이드존스는 설교에 대해 말할 때에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달하는 연설, 이것이 설교다.” 라고 말한다. 이렇게 성령의 능력과 기름 부으심은 로이드 존스가 가장 사모했던 것이었다. 설교를 준비하는 그 자체부터 기름 부으심이 더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름 부으심은 곧 ‘능력의 부가’(accession of power) 혹은 ‘능력의 부어주심’(effusion of power)라고 부르며121),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한다.122) 이것을
로이드 존스는 잘 알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기름부음의 8가지 요소를 말하였다.
첫째로, 기름부음은 영구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이것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취할 수 없다. 한 번 기름부음을 받은 경험이 있더라도 다시 추구해야 한다고 로이드 존스는 말했다.
둘째로, 기름부음은 ‘주어진’ 요소에 의존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능력의 부
어 주심은 완전히 성령의 주권에 달려 있다. 그분이 그것을 내려 주실 수도 있
고, 내려 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재량이다.
셋째로, 설교자의 연약함이 기름 부으심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고, 그의 외모는 형편없었지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2:4)’ 말씀을 전하였다. 로이드 존스의 고백에 의하면, 타고난 연설가도 아니었으며, 그 당시의 수사학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훈련한 적도 없었던 사람의 말을 통하여 부어 주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넷째로, 기름부음의 필요성은 설교에는 단순히 말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확증한다. 설교는 잘 준비될 수 있으며 좋은 자료들로 장식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과적이고 능력 있는 전달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설교는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살전1:5) 것이다.
다섯째로, 준비가 부실하고 부적절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름부음이 넘쳐흐를 수 있다. 준비가 잘 되지 않은 설교라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름 부음이 넘쳐흐를 수 있다. 그렇다고 설교 준비를 대강 하라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 아무리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기름부음은 그 열심에 대한 보상이 아닌 것이다.
여섯째로, 기름부음은 설교자로 하여금 ‘불타게’ 한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는 불이 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신학’이라고 외쳤다. 최상의 묘사는 ‘불이 붙은 논리! 유창한 논증’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분명 기름부음이 있어야 한다. 엘리야가 일부러 물에 흠뻑 적신 제물을 불을 붙일 번개를 기다렸듯이,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에 능력이 임하기를 열망해야 한다.
일곱째로, 노련하고 경건한 설교자라 할지라도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름부음이 필요하다. 요한도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계1:10)”라고 말했던 것처럼 누구든지 경력이 많든 적든지 간에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덟째로, 기름부음에는 회중이 포함된다. 회중에 대해서도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설교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신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위대한 신비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복음의 선포를 듣기 위하여 함께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그 분위기 자체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출처 : 로이드 존스의 설교 방법론 연구 / M.Div 학위 논문 이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