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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애응지물과 휴리스틱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12세기 중국의 승려로 그가 쓴 答向侍郞이란 글에 이런 글귀가 있다. 礙膺之物既除, 여기서 '애응지물'은 가슴 속 응어리라는 뜻이다. 礙는 '거리낄' 애이며, 膺은 '가슴 속' 응으로 가슴 속에 꺼리끼는 어떤 대상이 있다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공부하다 오래 동안 풀지 못한 의심을 뜻하며 우리가 흔히 아는 화두에 의한 수행법이 이 대혜종고가 개발한 것이다. 이것을 핵심감정에 적용해보면 애응지물기제(礙膺之物既除)라는 말은 '가슴 속 응어리가 이미 사라지다'를 뜻하며 핵심감정이 지워졌다는 의미가 된다.

 

성경의 표현으로 재해석하자면 '내 눈의 들보'로 왜곡된 시각이나 이전의 세계관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탈바꿈했다는 의미다.  신자의 세계관은 애응지물이 제거된 상태라야 한다. 그것이 회심한 심령의 특징이다. 핵심감정은 경제학적 용어를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다니엘 카네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휴리스틱(heuristic)과 그로 인해 구부러진 편향 (bias)을 의미한다. 그는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일한 비경제학자다. 그는 ‘왜 인간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가’를 주로 연구한다. 경제학은 원래 '인간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의사선택을 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인간은 현실에서는 엉뚱한 짓을 하더라는 것이 그의 연구의 출발점이다. "왜 그런가?" 이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연구 주제다. 그는 인간을 human과 econ으로 나누고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을 econ이라 하고 일상의 인간을 human이라 표현하고 둘이 전혀 다르고, 왜 다른지를 연구했다. 

그는 경험하는 주체와 기억하는 주체가 사실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환자 A는 고통의 총량을 기준으로 50점 정도 아팠고, 환자 B고통의 총량을 기준으로 100점 정도 아팠지만 환자A에게는 '가장 아픈 순간'에 아프냐고 묻고, 환자B에게는 통증이 가신 20분 정도 지난 시점에 아프냐고 물었을 때, 경험적으로 적은 고통에 노출된 환자A가 훨씬 더 아팠다고 말한다. 이것이 카너만이 말하는 기억하는 주체다. 50과 100 정도의 고통을 경험하는 주체와 이것을 기억하는 주체가 다르다. 이처럼 그에 의하면, "행복을 느끼는 경험적 주체와 행복을 기억하는 주체가 서로 다르며 둘은 혼동과 착각에 불과하다. 행복에 대한 잘못된 기억은 행복에 대한 소중한 경험조차 엉망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고 이것이 바로 기억하는 주체의 오류다.

 

이 책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휴리스틱(heuristic)이란 단어만 잘 기억해도 이 책에서 건질 것은 다 건진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사고하도록 교육을 받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직관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한다. 좀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프로이트의 1차과정 사고가 그가 말하는 직관적인 사고이며 2차과정 사고가 이성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은 감성과 직관에 기대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의 행동을 설명하기 그래서 학자들은 감성과 직관에 의한 사고 방법을 연구했고, 여기에 나온 개념이 휴리스틱이다. 

휴리스틱(heuristic)은 경험에 기초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학습하거나 발견해내는 사고를 의미한다. 휴리스특의 어원은 그리스어 'Heutiskein'에서 왔으며 이는 '찾아내다', '발견하다'라는 뜻으로 휴리스틱은 그때그때의 상황과 직관에 따라 행동하여 시행착오를 겪고, 지식을 얻고 다시 생각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자연적인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말하며 일반적인 의미로는 '어림짐작' 정도가 되겠다.  휴리스틱은 상황이 불확실할 때,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인간이 맞는 대부분의 상황은 우연적 변인의 연속으로 불확실하다. 상황이 이처럼 불확실할 때,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확률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인간은 불확실성을 주먹구구와 어림짐작으로 단순한 지식이나 직관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런 패턴은 주로 어린 시절부터 형성해온 것이며 핵심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런 행동양식을 통해 살아남았다. 불확실성 하의 의사결정방법이 바로 휴리스틱이다.

 

인간의 실제 행동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휴리스틱이 모여서 편향(bias)가 된다. 이 편향의 개념도 카너만에 의해 처음으로 개념화되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의 아동기적인 감정양식에 기대어 주먹구구의 사고방식을 얽기설기 엮어서 거기에 성경을 얹어서 사고를 한다. 그러다보니 1차과정사고의 미숙함이 계속해서 2차과정사고인 이성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확률적인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이나 확률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직관과 기억에 의한 판단을 한다. 직관과 기억에 의한 판단이 핵심감정이며 1차과정사고이자 애응지물이다. 그런 사고와 행동체계를 그대로 둔 채로 그 위에 성경을 얹져두지만 그의 행동과 사고패턴은 편향적일 수밖에 없고 성경은 그 편향을 확증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의 체계가 이 휴리스틱과 편향을 수정하여서 인간이 자연적 상태에서 주먹구구와 임기응변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던 패턴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성경이 요구하는 공평과 정의를 따라 판단하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나타내는 습관으로서 세계관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패턴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이 편향을 수습하고 교정하지 않은 채로 성경을 집어넣으면 성경이 편향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이 성경을 재료 삼아서 자신이 지닌 편향을 확대재생산하게 된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인간은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런 가정들은 타인의 삶에 훈수를 둘 때는 맞을지 몰라도 자기 삶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서는 경험적 주체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주체로 살며 이런 왜곡이 결국 서로가 소통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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