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신학자들은 그의 의지나 지식을 주로 다뤘다. 이것은 영의 기능이 주로 이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지성에 의한 체계를 극단적으로 밀어부쳤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자연신학은 견고해졌으나 자연적 인과율에 하나님의 의지까지도 매이게 되는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문제를 간파한 후기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의지와 주권에 의한 체계를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의지의 강조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켰는데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의지의 충돌이다. 그리고 인간 의지의 확장은 펠라기우스주의의 부활을 불러들였다.
루터가 에라스무스와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을 하면서 노예의지론을 정립하고 이책을 그의 최애로 두면서 그가 한 말은 이 책만 남아도 사도들이 전승한 복음이 살아난다 뭐 이 비슷한 말을 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난다.
어거스틴의 원죄 교리에는 정확히 부패나 무능력에 대한 교리가 지금처럼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거스틴은 이 의지와 지성의 균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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