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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예배학

예배는 구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교회의 방법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이들과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상 기독교인들의 예배는 담대한 정치적 행동이다. 세상이 멸시하는 그분에게 영광과 찬양을 돌림으로써 세상의 가치들을 뒤엎는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가 세상에는 아무리 약하게 보일지라도 세상의 힘은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힘과 견줄 수 없다. 더군다나 교회는, 예배는 낡은 방식이고 실제 세상과 관계가 없고 고립되어 있다는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신자들에게 교회의 예배는 실제 세상이다. 지성소(예배당)에서 성도들의 모임은 모든 역사가 지향하는 실제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종말을 미리 향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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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이 예배 중에 편안함을 느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예배는 세상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편한 예배(user-friendly) 또는 구도자 중심 예배(seeker-sensitive)는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실상 교회와 세상의 분리됨을 증명하는 예배는 메이첸이 ‘자비로운 불친절’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을 세상에 증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를 놀린다면 내버려 둬라. 진실한 예배는 교회를 위한 것이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D. G. 하트, John R. 뮤터, 개혁주의 예배신학, 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