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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옥수수 박사 김순권의 신앙과 삶

옥수수 박사 김순권은 서구의 학자들이 100년을 걸쳐 해결하지 못한 잡초 스트라이가(striga)를 견디는 품종을 만들었다. 스트라이가는 악마의 풀(witch weed)이라 불린다. 주변의 농작물들을 말라 죽게 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게다가 스트라이가는 농약에 매우 강했으며 쉽게 돌연변이를 일으켜 환경에 적응해 퇴치가 불가능한 잡초라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나이지리아는 연간 옥수수 생산량이 100만톤 밖에 되지 않았고 미국에 100만톤을 더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순권 박사의 개발 품종으로 생산량이 1000만톤으로 늘어났다. 김박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스트라이가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이상으로 성장력을 보이는 옥수수의 품종 개발이엇다.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과 생리의학상 후보로 5번이나 추천을 받은 바가 있다. 농업계의 노벨상인 국제농업연구대상(벨기에 국왕상)을 수상했다. 그는 “상보다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 훨씬 가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신앙을 가진 계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 2때 한 여학생을 짝사랑 했습니다. 그 여학생이 교회를 다녀서 신앙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다 보니 진지하게 물음이 들더군요.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내가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얼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정말 고민했지요. 결국 울산 농고에서 농업도 적성에 맞았고, 신앙 배경 때문에 “세상에서 태어난 이상 내가 농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자”는 결심으로 경북대 농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나님은 연애감정도 사용하신다. 그렇게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졌다. 그를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그를 자군몰루(위대한 뜻을 이룬 사람)과 마이에군(가난한 이들을 베풀리 먹이는 사람)이란 칭호로 불렀다.

 

이 일후 농업자본들은 UN에 김박사를 해고하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1974년 박사 취득 후 미 농업회사 파이디아가 월 3000불로 스카웃을 하려 했으나 농업진흥청에 47불을 받고 입사를 했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회고했다. "돈보다는 사명을 위해서 가난한 대한민국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농진청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경북대 1학년 때 대구제일교회에 다녔습니다. 당시 이상건 목사님의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됐다”는 설교 들었어요. 나처럼 IQ도 가정배경도 안 좋았던 내가 하나님께 붙들리면,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수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 마인드도 생겼고요. 이것이 옥수수 육종 개발을 계속할 수 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농진청 당시 개발한 옥수수 19호로 강원도 농사의 소득이 연간 400억이나 증가되었다. 현재는 모금만으로 국제옥수수재단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김박사님 후배들에게 이렇게 격려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는 그런 인생이 매우 중요합니다. 받아먹기보다 남한테 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인생에서 좋은 일도 많이 생기고 꿈도 크게 될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성공이면 인생에서 남는 게 없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꿈을 크게 가져 전 세계 60억 인구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해요."

 

장기려 박사님만큼이나 큰 하나님의 사람이신 거 같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이런 삶이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