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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신약주석

"옥에 있는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신 그리스도

"옥에 있는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신 그리스도 
- 베드로전서 3장 18-20절의 해석과 교훈 - 

길성남 교수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는 베드로전서 3장 19절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본문입니다. 이 본문 앞뒤의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8. . .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 . . 
마틴 루터는 이 본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놀라운 말씀이요, 동시에 신약 성경 가운데서 어느 것보다도 모호한 말씀이다. 그래서 나는 베드로가 뜻한 바를 확신 있게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Martin Luther, Commentary on Peter and Jude, 166). 위대한 종교 개혁자 루터가 이 본문의 의미를 확신 있게 알지 못했다면, 과연 누가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본문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신자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본문을 통해서도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교훈을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 본문의 의미와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 표현을 지옥에 갇힌 죽은 자들의 영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지옥에 내려가서 노아 홍수 때 멸망당한 사람들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어서 오늘날에는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경 어디에서도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오직 살아있는 자들에게만 전파됩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히 9:27). 그러면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베드로전서 4장 6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본문은 지금 죽어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즉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살아있을 동안에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육체적으로 죽어있지만 장차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성경학자들은 "옥에 있는 영들"을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예수님은 지옥에 내려가서 죽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 시대에 성령으로 노아와 함께 하시면서 그를 통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셨습니다. 이 해석에도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18절과 19절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치고, 19절에 있는 "가서"(남성・단수・주격 분사 "포류떼이스")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18절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이 진술에 이어서 19절에 "가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19절). 예수께서 언제, 어디로 가셨다는 말입니까? 본문의 흐름을 고려할 때 부활하신 후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셨다고 보아야 합니다(예수님의 죽으심 → 부활 →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심). 이렇게 보는 것이 예수께서 영으로 노아시대로 가셨다고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같은 단어(19절과 똑같은 형태의 분사)가 22절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나타냅니다. 개역 개정에서도 같은 단어를 "(하늘에) 오르사"라고 번역하여 승천의 의미를 분명히 합니다. 
예수께서 영으로 노아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다는 해석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옥에 있는 영들"이라는 표현이 죽은 사람들의 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pneuma, 프뉴마)"이라는 단어가 죽은 사람들의 영을 의미하려면 반드시 "죽은 사람들의," 또는 "의인의"와 같은 수식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참조. 히 12:23, "의인의 영들"). 신약성경은 물론 유대 문헌에서도 "영"이라는 단어가 단독으로 죽은 사람들의 영을 가리키는데 사용된 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을 가리키는 단어는 "프뉴마(pneuma)"가 아니라 "프쉬케(psychē)"입니다. 또한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을 "옥(phylakē)"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데스(Hades)"나 "스올(Sheol)"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영으로 노아를 통해서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선,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지 밝혀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영"이라는 단어가 복수로 사용될 때, 거의 예외 없이 사람이 아니라 귀신들(마 8:16; 10:1; 막 1:27; 3:11; 5:13; 6:7; 눅 4:36; 6:18; 7:21; 8:2; 10:20; 11:26; 행 5:16; 8:7; 19:12-13; 딤전 4:1; 계 16:13-14;)이나 천사들(히 1:14)을 가리킵니다. 유대 문헌인 제1에녹서에서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옥"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 20장 7절에서 사탄이 천년 동안 갇혀 있는 장소를 가리킵니다(참조. 계 18:2). 이런 증거를 종합하면 "옥에 있는 영들"이란 하나님께서 옥에 가두신 악한 영들이나 악한 천사들입니다. 이 해석은 다른 성경의 지지를 받습니다. 예컨대, 베드로는 자신의 두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말합니다(벧후 2:4). 유다서 6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 따르면, "옥에 있는 영들," 즉 하나님께서 옥에 가두신 불순종한 천사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노아시대에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일 것입니다(창 6:2).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나 범죄하였습니다(유 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습니다(벧후 2:4).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성령에 의하여 가셔서 선포하신 대상이 바로 그 악한 천사들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의 메시지였을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어 두셨기" 때문입니다(유 6절). 그들은 영원히 멸망당할 것입니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승천하신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 베드로전서 3장 22절은,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한 천사들에게 선포하신 것이 승리의 메시지였음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써 타락한 천사들은 물론 사탄과 사망과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해 승리를 거두셨음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통치자이십니다! 
오늘날 다수의 성경학자들이 이 해석을 지지합니다. 물론 이 해석에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흐름이나 단어들의 사용례에 비추어 볼 때 여러 해석들 가운데 이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이 해석은 최초로 베드로전서를 받은 독자들의 형편과도 조화를 이룹니다. 1세기 당시에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은 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비방과 고난과 시험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머지않아 더 무서운 불시험이 그들에게 닥쳐올 것입니다(4:12).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2:20) 열심히 선을 행하라(3:13)고 권고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도전합니다(4:13).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합니다(4:16). 
그런데 비방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중에 즐거워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만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께서 악한 세력들에게 승리를 거두시고 진정한 통치자가 되셨음을 확신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겉으로 보기에 패배한 것처럼 보였던 싸움에서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에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옥에 갇힌 악한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자신이 사탄과 악한 영들을 이기신 진정한 승리자요 그들의 통치자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모든 영적 세력들)을 다스리십니다(3:22).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지금 그의 독자들을 핍박하고 있는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능히 다루시고 마침내 벌하시리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독자들은 지금 자신들을 핍박하는 자들과 그들을 조종하는 악한 영적 세력들조차도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하는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만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악한 영적 세력들을 이기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모든 영적 세력들을 통치하고 계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자기 백성이 고난을 당할 뿐 아니라, 그 고난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진정한 통치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악한 세력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악한 세력들은 이미 패배했으며, 마지막 형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질 최종적 승리를 확신한다면 오늘의 고난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세기만큼 극렬한 고난이 없는 시대에 사는 신자들에게 이 본문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건져주신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악한 영적 세력들에게까지 승리를 거두신 진정한 만물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지금도 악한 영적 세력들이 이 세상의 경제 정치적 구조와 함께 불의하고 악한 사람들 배후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진정한 승리자이자 통치자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신한다면 사회 경제적 위기 앞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얻은, 그리고 약속된 최종적 승리를 확신하면서 능히 위기를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들은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영적 세력들은 물론 만물을 통치하시는 진정한 승리자 그리스도 예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가 모든 상황과 위기를 다루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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