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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의롭게 된다는 것의 의미

의롭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어요?

1. 죄가 없다.
2. 의로운 행위가 있다.

1일까요? 2일까요?

당연히 2번이죠. (1을 포함하는..)

그래서 십자가 대속만 주장하는 것은 복음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죄를 십자가가 치렀으니 우린 아무렇게나 살아도 의인이다는 생각을 함의해서 구원파적인 사고로 흐르게 합니다.

미국에서는 주재권 논쟁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주재권 논쟁이란 우리는 예수를 누구로 믿어야 하는가?

1. 구주로 믿으면 된다.
2. 구주이자 주님으로 믿어야 한다.

이 논쟁은 존 맥아더로 촉발되었는데 2번을 주장했던 맥아더를 1번이라고 믿던 소위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에서 예수 믿었던 다수의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정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단이거나 반쪽 짜리 믿음은 2번이 아니라 1번입니다.

그런데 2번을 따르면 "순종"이라는 문제가 따라 붙습니다.
이것을 다루는 신학적인 방식이 그 의로운 행위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 내 안에 주입되어 있다.
2.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1번은 로마 가톨릭의 입장이고 2번은 개신교회의 입장입니다. 사실 이때 정리가 끝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사도들이 전승한 복음을 이때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의에 우리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1. 순종의 일부는 우리가 해야 한다.
2. 모든 순종의 공로가 그리스도께 있다.

1이라고 하면 알미나안이나 패더럴 비전 새관점 등입니다.
1을 신율주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2라고 하면 전통 개혁파와 루터파의 신학이 됩니다.

순종에 기여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선행이 신자의 삶에 나타날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2가지 대답이 가능합니다.

1. 그런 거 필요없다.
2.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열매로 나타난다.

1이라고 하면 반율주의자가 됩니다.

그런데 반율주의와 신율주의는 쌍둥이며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한 천사라도 저주받는다는 바로 그 유사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