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파이파 교수가 본 ‘칼빈의 신학과 목회’③(끝)
[기독교보 2009-03-09 ]
[기독교보 2009-03-09 ]
칼빈의 설교, “한 도시 아닌 개신교회 바꾸었다”
설교 사역 비중…1년 평균 200회 설교, 연속적 강해설교 선택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은 지난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삼양교회당에서 ‘칼빈의 신학과 목회’란 주제로 제32기 정기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서 주제 강의를 한 조셉 파이파 교수(미국 그린빌 신학교 학장)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편집자 주-
기독교에 끼친 칼빈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설교 사역이다. 칼빈의 설교로 말미암아 근 20년 동안 하나님은 칼빈의 개혁을 거부한 제네바 도성을 종교개혁의 모델로 변형시켰다. 개혁이 성사된 근본적인 수단은 설교다. 정기적인 주일 예배와 주중의 설교를 통해서 제네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변화되어 갔다.
조셉 파이파 교수(미국 그린빌 신학교 학장)는 “칼빈의 신학과 설교 실제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수단으로 주신 설교에 대한 믿음이 상실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주 유용한 모델”이라며 “교회는 설교 임무와 관련해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네일 포스트만은 “TV와 같은 영상 매체의 속성이 사람들을 생각할 수 없는 자들로 만들었으며, 논리적인 강론을 오래 지속적으로 앉아서 듣는 것을 거부하는 세대가 되게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파이파는 “여기에 우리의 위기가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설교가 하나님의 기본적인 은혜의 수단으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모든 개신교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설교를 크게 장려해왔다.”고 전제하고, “TV에 전달 매체가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현 세대에서도 설교를 계속해서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자연인의 무지와 하나님과 그의 복음을 싫어하는 것 때문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잃은 양들을 접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도가 있는가? 설교가 가장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문화적 흐름이 어떠하든지 계속해서 설교를 해야 한다는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등의 질문과 관련, 존 스토트 목사는 “신학은 방법론보다 더 중요하다. 설교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신학이 필요하다.”며 “만일 우리의 신학이 옳다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분명한 기초적인 통찰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파이파는 “존 스토트 목사에 의하면 그 답은 우리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대한 성경적 신학을 습득하라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설교에 대한 칼빈의 신학과 실제는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칼빈의 설교 신학과 설교 구조와 스타일 및 전달에 대해서 살펴보자.
■ 칼빈의 설교 신학…설교 사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론과 적용으로 구성
칼빈에 의하여 설교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론과 적용으로 구성돼 있다. 칼빈은 설교의 내용이 강론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고, 적용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함을 견지했다. 칼빈은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함으로 본문을 강론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연속적인 강해설교다. 제네바에서 그의 사역은 성경의 많은 책들을 강론한 것이다.
그러나 설교는 진리를 강론하는 것 이상이다. 설명과 해석은 신학생들에게는 충분하다. 그러나 강단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권고와 실천적 적용은 강단 사역의 핵심이며, 모든 설교에 등장해야 한다. 적용이 결핍된 메시지는 참된 설교가 아니다. 칼빈은 “예언들과 위협적인 말씀들, 약속들과 모든 성경의 가르침들을 오늘날 교회의 요구하는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적용하는 것은 말씀을 강론하는 것과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별력 있는 적용의 중요성과 관련,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파이파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룰 때, 우리는 두서없이 말하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반드시 일정한 목적을 갖고 설교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하게 말해야만 한다. 요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서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강론이 과장되거나 헤매는 일이 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칼빈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제네바 개혁자는 그의 설교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따로 구별되어 세움을 받은 사람에 의해 선포되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설교했을 때, 그리스도의 권위를 갖고 선포되는 것.
개혁자들의 입장은 둘째 헬베틱 고백서 1장에 요약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파이파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안에서 합법적으로 설교자들에 의해서 지금 선포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위임받은 사람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 하나님은 신적이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취하셔서 그를 통하여 독특하게 말씀하신다. 마셀은 “설교란 공허한 소음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의 의지의 순결하고,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실로 그 뜻이 온전히 성취되는 능력이다. 설교의 본질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설교에 대한 칼빈의 소명은 그의 설교 계획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1년에 평균 200회 설교했으며, 거기에다 200회 강연을 했다. 그것들이 그의 주석의 근간이 됐다. 초기에 그는 주일에 두 번 설교를 했으며, 매주 주중에 한번 설교를 했다. 1549년 이전에는 주중에 세 번 오후 5시에 설교를 했다. 주일엔 세 번의 예배가 있었다. 그 후 매일 한번 설교하는 것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그는 이 주 동안에 동일한 회중들에게 10번이나 설교를 한 것이 된다. 칼빈이 설교 사역을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것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설교신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를 결정하게 했다.
■ 칼빈의 설교 구성과 스타일
㉠ 설교 형식…‘고대’ 형식 사용
칼빈은 그의 설교에 있어서 설교의 ‘고대’ 형식을 취했다. 종교개혁 이전에 설교의 발전에 있어서 두 가지 설교 구조가 개발됐다. ‘고대’와 ‘현대’ 형식이 그것. 고대 형식은 설교 형식으로 불리기도 했다. 블렌치에 따르면 교부들의 설교 형태로부터 계승된 고대 형식은 설교에 독특한 정교한 배열이 없이 진행되는 설교이며, 성경 본문의 해설과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 방식은 보다 더 체계적이다. 반면 학교의 산물인 현대 방식은 고대 고전적인 연설 형식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영향을 입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혁가들은 성경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설교 구성을 단순화했다. 그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현대 방식을 취했다. 칼빈이나 초기 잉글랜드 개혁자들처럼 몇몇 사람들은 고대 형식을 사용했다. 칼빈은 훌륭한 기술과 함께 고대 방식을 취했다. 칼빈은 본문을 통해서 그의 방식을 정리함으로써 종종 ‘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해 본문으로부터 이끌어낸 성경적 진리를 조명했으며, 적용을 위해서 ‘활용’ 또는 교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칼빈은 그의 강론에서부터 나오는 진리를 묘사할 때 ‘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파이파는 “우리는 ‘활용’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그의 적용을 제시한 사례들을 자주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때로 그는 설교 구성에 더 신경을 썼다. 그는 간략하게 그의 구분을 설명한 후, 그 요점의 적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아울러 칼빈은 다음 네 가지 문구를 설명했다. 가르치다, 책망하다, 바르게 하다. 교육하다, 그리고 더 적용의 문제를 다뤘다. 그의 적용을 다 마친 후에 그는 네 가지 대지로 나갔다. 그는 다음 마지막 요점을 적용함으로써 설교를 마무리했다.
블렌치는 “칼빈이 ‘교리’나 ‘활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본문에 응용한 구성에 의하여 우리는 칼빈이 청교도들의 ‘새로운 개혁된 방법’을 발전시켜 나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파이파는 “하나의 ‘교리’는 본문에서 발견한 진리의 진술이다. ‘검증’들은 성경의 참조 구절들이며, 교리의 진리를 확정 짓기 위한 논리들이다. ‘활용’은 교리로부터 만들어진 적용이다. 이 교리, 검증, 활용의 세 가지 구성을 삼중계획이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 설교 스타일…‘명백한 스타일’ 따름
칼빈의 설교 스타일은 ‘명백한 스타일’을 따른다. 이 스타일은 고등 성공회 설교자들을 제외한 모든 개신교 설교를 지배한 스타일이다. 블렌치는 명백한 스타일을 세 가지로 표현했다. 아주 적나라한 스타일, 수식어를 사용한 덜 적나라한 방식, 그렇다고 체계적인 것은 아님, 그리고 간혹 수식어도 사용하면서 체계적으로 구성된 스타일이 그것이다. 명백한 스타일의 목적은 단순성을 위한 단순성이 아니다. 그러나 전달을 위한 단순성이다. 칼빈은 명백한 스타일을 친근한 스타일로 규정했다. 파커는 “성경의 메시지를 친숙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칼빈은 익숙한 방식, 즉 일상생활적인 용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칼빈은 많은 비유들과 은유들을 사용하면서 아주 간결하고도 명쾌한 스타일로 설교했다. 로우슨은 “대부분 칼빈은 성경 그 자체로부터 표현력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의 상당수는 군사적이거나 법률적인 것, 자연적이고 예술적인 것 또는 학적인 연계성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종종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흔한 표현들을 찾아 사용했다.”고 말했다.
파이파는 칼빈의 욥기 설교에서 그의 스타일에 대해 몇 가지 실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속담들을 잘 사용했다. 더욱이 그는 함축성 있는 용어를 사용했다. 명료한 스타일에 헌신한 사람으로서 칼빈은 단문들을 사용했다. 몇몇 청교도들이 한 것처럼 긴 문장이나 산문체를 사용하는 대신 칼빈은 주로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주어, 동사를 예견케 하는 단문을 사용했다. 그러나 칼빈의 단 문체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설교 전달…원고 없이 즉흥 설교 선호
칼빈은 원고 없이 즉흥 설교를 선호했다. 그렇다고 그가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는 효과적인 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칼빈은 “우리가 강단에 오를 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는 배운다는 한 가지 조건 하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은 그가 설교할 내용을 진지하게 준비했다.
파이파는 “칼빈이 원고 없이 즉흥적 설교를 한 것은 그것이 설교의 생동감 있는 스타일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원고 없는 즉흥적 설교를 한 것은 설교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의식 때문이었다.”며 “칼빈이 복음 설교함에 있어서 자유롭게 말씀하시는 것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방편을 방해하지 말라고 한 점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큰 능력으로 강력하게 말씀하시게 한다고 한 말을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이 의존은 성령의 부어주심을 말한다.
마셀은 “성령의 능력과 자유함에 충분히 내맡기는 설교자는 그가 말하기 시작할 때 그는 환경에 매이지 않게 된다.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설명했다. 칼빈은 성령의 주권을 인식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퍼킨즈는 “그리스도 때문에 비록 우리가 도구로 쓰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시고 심령을 새롭게 하신다. 그들을 전적으로 중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칼빈은 그가 주장하는 것은 실천했다.
로우슨은 “칼빈은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자신을 성경적인 본문 안에 전적으로 빠져들었고, 강렬히 고정시켰다. 이것은 그가 설교할 때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그에게 빨려 들어가게 했다. 그러므로 그의 회중은 그의 설교를 들을 때 앉아서 넋을 잃고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칼빈의 설교에서 단순함 등 배우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파이파는 “칼빈의 설교는 한 도시를 바꾼 것이 아니라 개신교회를 바꾸었다. 오늘까지 그의 설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진지한 성도들을 가르치고 세워가는 데 사용되고 있다.”며 “우리가, 우리 교회가 다시 부흥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개혁되고 문화가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칼빈으로부터 교훈을 받아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설교는 주해적이어야 한다. △칼빈의 설교는 적용적이었다. △그의 설교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의 설교는 단순한 것이었다. 등이 칼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칼빈은 명백히 설교했고, 단순히 말함으로써 보통 사람들도 다 이해하게 했다. 그는 설교자를 높이고 하나님을 높여드리지 않는 강단은 반대했다. “만일 설교자가 자신을 기쁘게 하거나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거나, 청중의 구원을 잊고 미친 욕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는 신성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높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칼빈의 설교, 디모데후서 2장 14-15절).
파이파 교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설교 사역이 칼빈의 설교 특징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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