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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기타미분류

철저한 교리 교육이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듭니다

철저한 교리 교육이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듭니다
김남준
질문 : 열린교회 목회 역사를 간략히 소개해주십시오.
저는 1993년 12월에 소명을 받고 교회를 개척했죠. 지하실에 월세를 얻어서 한 3~4년 그곳에서 사역했습니다. 교인들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서, 두 번째로 옮긴 곳이 방배동이었습니다. 3년 정도 지났을 때 200명의 성도가 약 1,000명을 넘어섰죠. 거기사 한 3년 반 있었는데 교인들이 너무 많아져서 고민 끝에 7년 9개월 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지난주 출석 성도가 2,600명입니다. 교회학교 학생 수는 1,200명 가량 됩니다. 교회를 이곳으로 옮긴 지 2년지 지나서 보니까 교육 공간이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규모가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80억 교육관 프로젝트에 덤벼들었어요. 지금 교유관은 8층짜리 건물 2,250평인데 땅 면접은 교회의 절반이지만 40%이상 넓어요. 여기서 1,000명 정도의 성도가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6층 전체는 담임 목사의 연구실입니다. 그래도 현재 공간으로는 교인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주일날 5번 예배를 드려요. 주일 대예배만 4번 드리고요. 500명만 더 늘어나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어요.
질문 : 열린교회가 성경 교육 특히 교리 교육을 체계적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리 교육에 대한 목사님의 철학과 교육 과정을 말씀해주십시오.
저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교회가 개혁주의의 전통을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가 무슨 내요인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이잖아요.<기독교강요>초판의 내용도 주로 이 세가지를 해설한 겁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시대에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각각 일 년씩 가르쳤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물려받은 개혁주의 전통은 사실은 종교개혁자들 이후에 내려오는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남긴 유산입니다.
종교개혁에서 일으켰던 이슈들을 잘 정리해서 기독교 신앙의 뼈대를 세운 것은 캘빈 이후의 제3세대 사람들부터입니다. 약 150년간을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부르는데, 제가 연구하고 가르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교회가 철저하게 교리 교육을 가르쳐야 흔들림 없는 신앙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순종하는 이 세가지 기본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교회 등록자를 초신자와 수평 이동자로 구분합니다. 수평 이동자는 면담을 실시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불신자 수준일 때는 처음 믿는 사람들과 기초 교리 교육을 받게 합니다. 약 20주 과정으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배웁니다. 새가족반이 되는 거죠.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교회에 약 100여 명의 일대일 담당 선생님들이 원하는 시간에 만나서 가르쳐줍니다.
한편 다른 수평 이동자들은 19주에 걸쳐 자체 제작한 교재를 가지고 철저하게 공부를 시킵니다. 이때 예배, 구원, 목양, 십자가를 주제로 한 교리를 배우고 나서 교리반에 올라갑니다. 교리반은 좀더 전문적으로 배웁니다. 그래서 루이스 벌콥의<기독교 교리요약>이라는 책으로 서론부터 시작해서 종말론까지 공부를 하는데 학사 관리를 매우 엄격하게 합니다. 매주 시험을 보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봐서 90점이 넘어야 통과됩니다. 열린교회에서는 교리반을 수료한 사람에게 다른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구역장도, 교사도 할 수 있는 거죠.
질문 : 교리반을 이수하기 전까지는 교회 직분을 받을 수 없습니까?
다른 직분은 받을 수 있는데 가르치는 것은 안됩니다. 자기가 아는 내용이 없으면 책임지고 가르칠 수 없으니까요. 교리반을 이수하고 1~2년이 지나면 고급 교리반(성화반)에서 호출합니다. 고급 교리반에서는 캘빈의<기독교강요>를 가지고 제가 직접 강의합니다. 6권 전체를 강의하다가 분량이 너무 많아서, 최근에는 문병호 교수가 라틴어를 번역한 초판을 교재로 해서 12주에 걸쳐 강의하고 매주 퀴즈를 봅니다. 성화반도 역시 중간, 기말고사를 봐서 90점을 넘어야 졸업이 됩니다. 이수를 못하면 권사, 안수집사 등 항존직 임명이 안됩니다. 이 틀을 기본적인 이수 과정으로 해놓고 사이사이 구약개관학교, 신약개관학교 등을 개설해 놓았습니다. 또 매년 두세 차례씩 세미나를 합니다. 세미나를 통해 교리나 철학, 복음주의 역사 등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합니다. 사경회도 매년 4차례씩 진행합니다. 연초에는 '새해 말씀 사경회', 고난주간에는 '십자가 사경회', 여름수련회로 '숩솦의 사경회', 그리고 '가을 사경회'가 있어요. 60회 이상 직접 했죠. 충분히 준비해서 목차를 짜고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를 출판부에서 정리하고 2주 안에 책으로 출간해요. 그러면 이것을 가지고 3주동안 공과공부를 합니다. 계속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역 예배에서는<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책을 가지고 4개월간 공부합니다. 내용이 좀 어렵긴 하지만 구역장들이 기본적으로 교육이 되어 있으니까 이해를 잘해요.
학습 세례는 그 사람이 정말 회심했는지 교역자가 면멸히 살펴보고 추천합니다. 세례 받을 사람이나 학습 받을 사람은 4주간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강의를 들은 다음에 시험을 보는데, 시험은 장로 한 명과 목사 한 명이 있는 방에 하 사람씩 들어가서 시취합니다. 그때 문답짐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외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진짜 회심했는지를 묻고, 신앙생활까지 체크한 다음에 장로와 목사가 사인하고 합격자 발표를 하는 거죠. 우리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려면 교리문답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빌려줍니다. 결혼 예비자들은 교리문답을 학습하고, 신랑과 신부 모두 교리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도 빌려주고, 담임 목사가 주례도 서줍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2년 후면 아이를 낳죠? 아이를 낳으면 교리 문잡을 다시 해야 합니다. 부모가 교리 교육을 4주 받으면 유효 기간이 3년이에요. 3년 동안은 교육을 다시 안 받아도 됩니다. 그런데 문답은 다시 외워서 시험을 봐야 해요. 첫 아이를 낳을 때 시험을 보고, 그 다음에 합격하면 유아 세례를 줍니다. 집사가 될 때에도 반드시 교리 교육을 받고, 교리문답을 통과해야 합니다. 집사 이상부터는 별로 문제가 안돼요. 왜냐하면 이미 교리반을 다 마쳤기 때문에 신학적인 내용도 다 알고 있어 언제든지 보면 외울 수 있으니까요. 이분들은 종교, 계시, 성경부터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까지 다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신학교보다 낫습니다. 신학생들이 우리 교회 와서 시험을 보면 20~40점 정도 나올 겁니다. 우리 교회 구역장들이 훨씬 더 교리 점수가 높게 나와요. 
제가 역사 공부를 해보니까 터툴리안 시절에는 교인이 교회에 오면 우주론부터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교리의 내용,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르치는거죠. 이것을 주일학교 때부터 가르칩니다. 우리 교회는 태아부,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그리고 청소년부(중등부, 고등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영아부 아이들부터 가르쳐요. 각 단계에서 철저하게 교리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어린이 교리학교까지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서 부모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교리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강력하게 자라나는 것이죠. 아이들이 한둘밖에 없는 세상이잖아요?
질문 : 성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잘 따라와요. 억지로 공부시키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습니다. 이후 출간된 책을 열어보면, 설교 시간에 들었던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상세하게 각주까지 달아서 설명합니다. 책은 훨씬 전문적이며 분석적으로 써야 하고, 설교는 그보다는 훨씬 통합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합니다. 개괄적으로 듣던 내용들이 책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교인들은 설교 시간에는 큰 그림을 그리고, 여러 책을 보면서 상세하게 그림을 그려 나가는 거죠. 그러니까 좋아하고 탁월하게 예습을 잘 해옵니다.
질문 : 많이 배우거나 연세가 많은 분들은 공부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지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자기가 그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거죠.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구역장들과 교역자들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에게는 설교 테이프를 듣고 정리해서 나누고 가르치는 등 지혜롭게 돕습니다. 문제가 별로 업성요. 어려운 책으로도 공부했는데도 훌륭하게 잘해냅니다. 설교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책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이해가 모자라는 사람들은 책과 테이프를 병행해서 공부합니다.
질문 : 설교 후에 가방을 매면서 "설교 끝났으니 공부하러 가자"고 말씀하신다고요.
맞습니다. 설교 후에 강단에서 내려올 때 이렇게 내려옵니다. (김 목사는 직접 가방을 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양복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항상 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겁니다. 주일 아침 7시면 교회에 나갑니다. 마당에 앉아서 설교할 본문을 읽거나 책을 읽다가 설교하러 올라가요. 그래서 전 항상 이 가방이 필요해요. 항상 공부하고 가르치는 책을 가지고 다녀요. 저는 설교를 원고 없이 합니다. 설교에 대한 전체적인 주제와 틀을 정해놓고 내용은 머릿속에 집어놓고 설교합니다. 한 시리즈가 끝나면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질문 : 열린교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에베소서 1:10을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나와요. '통일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머리가 된다는 뜻인데 현실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이 만물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은 인간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사랑의 공동체, 한 몸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첫 케이스가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래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이 나온 것이죠. 이것은 단순히 아내와 남편 사이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하나의 몸으로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이 사상이 에베소서 4~5장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나오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후 인간과의 관계가 깨져서 미움과, 죽음, 질병, 고통이 들어와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원래의 상태로 돌리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재창조이고, 창조의 머리가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머리가 되시는 겁니다. 그때 만물이 다시 그리스도께 속하고 성령 안에 있게 되고, 깨어진 모든 것이 회복되고, 인간도 다시 사랑의 연합을 이루는데 그 사이에 있는 존재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 계시는데, 결국은 교회가 하나의 밀알이 되어서 썩고 사라지면서 그 껍질을 깨고 재창조되는 세상이 나오는 신학적인 구도거든요.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완성된 그날을 바라보는 과도기적인 존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마지막 모판입니다. 그래서 이 완성된 세계는 현재 이 둘 사이에 있는 교회와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어요. 신학적으로 두 가지 완전성이 충족될 때 세계의 창조가 완성됩니다. 재창조의 잣대는 교회입니다. 두 가지 완전성은 계량적 완전성과 성질적 완전성이에요. 계량적 완전성은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사람의 숫자가 성도의 전도에 의해서 꽉 차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서 교회가 성화되다가 어느 순간에 주님이 이 모든 것을 끝내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통합해 한 몸 인류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때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사라지는 때가 아닐까요?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너무 경영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을 해야겠죠. 그러나 신학적으로 교회의 가치는 성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장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과의 온전한 연합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있으면 생명은 끊임없이 뻗어나가게 됩니다. 그런 신령한 성장은 꼭 필요하고, 우리가 그리스도께 재대로 연합되어 있으면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둘째, 이와 상관 없이 자의지적으로 성장하는 겁니다. 그러나 자의지적인 교회 성장은 성경에서 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목표는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 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성도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참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질문 : 교리 교육과 성경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성경적 진리에 따라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우리의 영혼이 변화되는 데 있어서 두 요소가 있는데, 객관적으로는 진리의 요소이고, 주관적으로는 은혜의 요소입니다. 은혜의 요소라는 것은 참다운 지식이 내 머릿속에 이해되어서, 내 마음 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만나게 될 때에 차가운 지식이 아닌 진짜 그리스도의 피가 묻은 지식이 되어 그 뜻대로 살게끔 만듭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경 교육이죠. 끊임없이 성령의 은혜를 구하면서 교인들에게 교리르 가르쳤을 때 지식 때문에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교리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는 가운데 공부하면서 변화되고, 은혜 받는 겁니다. 
우리는 먼저 지성을 주님 앞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캘빈은 중생의 본질을 지성의 변화라고 보았습니다. 어두웠던 영혼에 진리의 참된 빛이 들어오는 것이 중생의 본질이라고 보거든요. 중생은 인식론적인 변화와 존재론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인식론적인 변화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복음과 진리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눈이 열리는 거에요. 존재론적인 변화는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성향의 변화죠. 내가 끊임없이 죽고 그리스도에게 합치되는 삶을 살 때, 나 자신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로 흘려 보내는 거대한 하나님의 회귀적인 사랑의 통로가 됩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가장 행복하고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개혁주의의 구원관입니다.
많은 교회 프로그램이 있지만 항상 예배가 중심축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감격이 있는 열린교회'라고 이름을 지었고, 그렇게 사람들에게도 인식이 되었죠.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진리와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많이 애씁니다. 
질문 : 목사님의 설교가 내용 면에서 딱딱할 수 있을텐데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은혜 받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산과 아무런 관련 없는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이 등산을 한다면 산에 대해 그리 큰 감동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식물학자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산에 올라가면서 끝없이 감탄할 것입니다. "세상에 이 풀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우리나라에 몇 포기 안되는 건데"라며 말이죠. 똑같은 거에요. 진리의 맛을 본 사람들은 진리르 조금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하고, 그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진리의 맛이 없으니까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교회가 커진다거나 교회의 건물이 훌륭하다거나 담임 목사의 박사학위가 몇 개인지는 교회의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도 바울도 그러지 않습니까? "내 면류관이 무엇이겠느냐? 주님 앞에 설 때에 너희가 나의 면류관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전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 목회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 진리 자체의 능력은 동일하지만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 않을까요?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요한에 대해서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설교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진리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변호인은 그 현장에 있을 수 없어요. 심정적으로 저 사람이 무죄라고 생각하고 변호하는 것이지 현장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증인은 그 사건의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독일의 복음주의를 이끌었던 루터파 신학자인 헬무트 틸리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약하고 다른 회중과 다름없는 한 사람이 주의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가 일주일 동안 진리와 함께 씨름하는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그 한 시간의 설교가 증언이 될 수 있다."
좋은 설교자는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이 훌륭한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어느 날 제가 사경회를 준비하러 시골에 내려갔어요. 혼자서 성경을 차례대로 읽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은혜받은 내용을 아침 10시부터 메모하기 시작해서 밤 9시 24분에 마쳤습니다. 이것을 정리한 것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삶을 사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캘빈을 비롯해서 무수한 개혁주의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입니다.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거든요. 성독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직접 섭취해서 올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자신이 그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청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질문 : 목사님이 보실 때,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가 저의 가장 큰 목회적 화두입니다. 크리스천은 누구인가? 그 기준이 있어야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기준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도전적인 질문을 드리자면, 오늘날 교회가 진정한 크리스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지방 도시에 부흥회를 하러 갔었어요. 그런데 어떤 부목사님이 자기네 교회가 뜨고 있고, 목사님이 방송도 많이 타고, 교인들이 막 몰려온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물어봤어요. "목사님이 이 교회에서 맡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장년교구를 담당해 500명쯤 목양을 한다고 해요. "목사님을 개혁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나요?"하니까 그렇대요. 그러면 "중생과 회심 아세요?"라고 물으니 "물론 알지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서 회심 없이 구원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더니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목사님이 맡은 500명 중에서 회심해서 진짜로 영혼이 거듭난 사람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으니까 한 30% 정도 된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러면 목사님이 무엇을 자랑하고 있는거냐, 지금 목사님 말대로라면 나머지 350명은 구원받지 못한 채 교회 다니면서 늙어가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말하는지 대답해 보라"고 일침을 놓고 왔습니다.
그렇다고 저 역시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끝없는 고민이 되고 아픔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소위 잘나가는 교회의 기준이 성도 수나 목회자가 얼마나 방송을 타는지에 달려 있다면 이는 사업적인 사고 방식이지 목회적인 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16년간 목회를 했지만 금년의 표어나 목표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주일학교 교역자들을 모아놓고 금년에 몇 명까지 늘리겠냐고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맹세코, 인원을 많이 모으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역자를 내보낸 적은 없습니다. 인원에 대해서 내가 초연하냐? 그럴 수는 없지요. 여기에도 죽어간느 사람들이 수없이 많잖아요. 우리 교회는 매우 화요일이면 한 120명이 아파트 경비에게 욕먹어가며 전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래요. "목사님네 교회는 굉장히 설교가 어렵고 수준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이 수평 이동한 사람들이죠?" 아닙니다. 40%가 불신자로서 우리 교회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합니다. '원래 설교는 이렇게 어려운 건가 보다,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게 교회 생활인가 보다'생각하는 거에요. 저에게는 그게 목회의 꽃입니다.
제가 어린이 부흥회를 일 년에 두 번씩 직접 인도합니다. 그때는 주일날 출석하는 숫자보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모입니다. 제 설교를 듣고 아이들이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회심은 재미있고 감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들이 건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거에요. 지난해에도 제가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75분간 설교했습니다. 
질문 : 초등학생들은 놓고 75분이나 설교하셨다고요?
네. 십자가 설교했는데 그중 한 아이는 사경회가 어땠냐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 사경회가 너무 좋았는데 설교가 너무 짧았어"라고 했답니다. 아이들의 흡입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유치부 아이들에게도 지난주 설교를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화가 많아요. 하루는 교회 복도에서 네 살짜리 두 아이가 싸웠어요. 그러다가 남자아이가 물었어요. "너,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는지 알아?" 여자아이가 "네가 잘못해서 우리가 싸우는 거잖아"라고 하자 남자아이가 "아니야. 우리 모두 속에 새카만 것이 많아서 싸우는 거야"라고 했답니다. 그 아이는 유아부에서 전적 타락의 교리를 배운 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교회만 나오면 다 크리스턴이에요. 전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절반이 넘는데도, 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사람들인 양 설교하는 거에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저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중생과 회심에 대해 설교합니다. 크리스천은 자기의 죄를 복음 앞에서 회개하고 영적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어 교회의 지체가 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승 존 오웬 목사님은 '회심'과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목회의 핵심 가치입니다.
질문 : 외과의사를 예로 들면서 목회자란 사자 같은 심장과 독수리 같은 눈길과 여자 같은 손길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자의 특징은 용감함입니다. 담대하게 진리를 외치는 것이 목회자의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사자와 같은 심장은 하나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자신 속에 부어준 성령의 확신과 권능 안에서의 담대함입니다. 만약 지성이 없이 사자와 같은 심장을 가지면 조폭 같은 목사가 됩니다. 사자의 심장이 없이 독수리 같은 눈만 있으면 약삭빠른 목회자가 되기 십상이죠. 독수리 같은눈을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까지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학문적인 업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전자를 위해서는 욕망과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낸 순결한 마음으로 살면 되지만, 후자는 끊임없이 매달려서 공부해야 합니다.
제가 열린교회 16년 목회에 4천 번을 설교했습니다. 새벽기도 빼고 1, 2, 3, 4부 예배를 한 번으로 쳐서 말이죠. 그런데 설교가 주먹만한 머리에서 무한정으로 나오겠어요? 내가 아무리 탁월하게 알아도 성도들이 성장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제가 공부하는 겁니다. 외부 활동도 많이 못하고 여기 앉아서 날마다 공부해야 합니다.
세 번째 여자의 손길은 손재주입니다. 꼼꼼한 사람들이 수술을 잘합니다. 목회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지만, 기술이 필요하죠. 주위에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정신도 바르고 담력도 있는데 기술이 모자라요. 그래서 교회가 자꾸 흩어지고 모이지 않더라고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기술을 익혀서 어떻게 리더십을 행사하고 교회를 조직하고 지혜롭게 해나가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질문 : 후배 목회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권면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먼저 성경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십시오. 두 번째로 신앙 선배들의 아름다운 신학을 공부하십시로. 세 번째로 지혜로운 목회의 기술들을 터득하십시오.
* 출처 : 목회와신학(두란노) 3월호 '특집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