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의 언어는 성전적 언어다. 사실 4개를 반복함으로 이 복의 중대함과 장엄함을 드러낸다. 동시에 6개의 대립 명제가 뒤따라 주어짐으로 산상수훈 자체가 10계명의 구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마태복음 5:8의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1:12의 “내앞에 보이러”와 시편 43:3의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 예배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 성전적 언어는 하나님과 관계된 4개의 계명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시편의 평행법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팔복의 문학적 양식은 시로 되어 있다. 실제로 4개를 8개로 늘린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마 5:3에만 나온다. 그래서 그 뜻이 불분명했으나, 1947년부터 발견된 쿰란 문헌에 보면 “심령의 가난한 이들”이란 표현이 두 번 나오는데(1QM 14.7: 1QH 14.3), 예수 시대 쿰란 수도자들이 그렇게 자처했다. “영의 가난한 이들”의 반대가 완고한 마음인 점으로 미루어(IQM 14. 7) 볼 때, “심령의 가난한 자들”은 겸손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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