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파문과 한국사회
노승수 목사
학력 위조로 한국 사회가 씨그럽다. 유명연예인에서, 종교계인사, 방송진행자, 연극인, 영화인에 이르기까지 학벌 중심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한국 사회가 얼마나 거짓말 위에 기반하는 사회인가를 보여준다. 방송에서도 공공연하게 하얀 거짓말은 괜찮다는 식의 거짓말 불감증에 걸려 있다. 하얀 거짓말은 아니라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말들도 서슴치 않는다.
외국 경제 인사들에 눈에 비친 한국경제는 불투명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기업이 저평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투명성 때문이다. 경제도 거짓의 연속이라는 말이다. 얼마전 우리를 힘들게 했던 대우의 김우중씨 그리고 분식회계 이 모든 것이 거짓말 불감증이다.
그럼 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게 될까? 첫째, 우리 사회가 불신이 높기 때문이다. 불신이 높기에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게 학벌이고 학벌이 없이는 자신을 보여줄 없기에 또 속이게 된다. 그야말로 악순환인셈이다. 정치지도자들도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하고, 청문회에라도 나오게 되면 진실되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앞에서 사죄하는 인사를 찾아볼 수 없다. 사실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 생명의 죽음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끝까지 부인하기 일쑤이다.
둘째, 우리 사회의 비난 문화이다. 거짓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볼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할 수 없는 까닭은 잡아 떼는 사람보다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더 비난 받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을 세조로 옹립했던 한명회는 죽은 뒤에 부관참시라는 형벌을 받았다.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꺼내 베고, 목을 베어 거리에 내 거는 형벌이다. 한국인들의 한의 정서의 깊은 뿌리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얼마나 미우면 죽은 사람까지 형벌을 가하는가? 마음 속에 한과 억울함이 가득하니 비난할 만한 일이 생기면 벌떼처럼 달려든다. 사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자살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한국사회의 거짓말을 줄어들기 어렵다. 아마도 이렇게 사회 문제가 되어도 잠잠해지고 나면 여전히 계속 될 것이다.
셋째, 우리는 거짓말에 너무나 익숙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맛은 없지만 드셔보세요" "아휴 목사님 성가대 봉사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할거 같아요" 유교적 겸양의 문화가 만들어 낸 거짓말이다. 사실 자신의 속마음과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낮추면 상대방이 자신을 의례히 높여줄 것을 기대한다. 예전에 목회학 시간에 선배 목사님이 들려준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어느 후배 목사가 선배 목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인사를 드리려 하자 "아니 무슨 인사인가 그냥 앉으시게" 계속 여러번 강권하여서 할 수 없이 앉았는데 이번엔 "아니 왜 앉으시나 인사를 하셔야지" 그래서 후배목사가 "앉으시라고 강권하셔서" 그러자 선배목사님왈 "아니 그것은 내 도리이고 자네는 자네 도리를 해야지" 유교의 전형적 문화이다. 이런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말들을 사용하는 우리 문화는 거짓말을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경은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고 가르친다. 거짓은 결코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하얀 거짓말도 거짓말로 지어진 평화는 진정한 평화와 신뢰를 구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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