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승수의 강해설교/데살로니가전서강해

형제 사랑과 주의 강림에 대한 소망(살전 4:9-18)

형제 사랑과 주의 강림에 대한 소망(살전 4:9-18) 


노승수 목사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1. 형제 사랑에 관하여(9-1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몇가지 질문에 대해 답합니다. 이 형제 사랑에 관한 바울의 답변은 사실상 오늘날 교회의 형편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는데 이 본문을 유심히 보시면 교회의 멤버쉽과 그렇지 않은 외인 사이에 경계가 매우 뚜렷합니다. 교회의 멤버쉽이 매우 분명했던 이 때와 달리 오늘날은 거의 교회의 멤버쉽이 의미 없는 공동체에 가깝기 때문에 여러가지 실천적 제약이 따를 수는 있습니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54:13에 의하면 하나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고 이 약속이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바울이 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다'라는 표현은 이사야서의 70인역의 번역에 의존한 것입니다.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는 빌립보와 베뢰아에 있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행16장; 20:4). 보시면 아시겠지만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형제 사랑의 실천은 지역교회를 넘어서 타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들까지 아우르는 넓은 형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런 형편은 앞서도 설명드렸다시피 지금보다는 더 엄격하고 분명했던 교회읨 멤버쉽으로만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주의 형제들이 우리가 아는 한 분명히 있고 이들을 돌아보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얼마든지 오늘에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멀리 떨어진 형제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SNS를 통해서 확대되는 관계를 통해서 충분히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예전보다 더 돌볼 수 있습니다. 이 형제 사랑은 무엇보다 고대에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나그네를 보살펴 주는 후한 손 대접에까지 미치는 데(히13:2 참조) 그리스도인의 귀한 덕목이었습니다. 
게중에는 이런 형제애에 기대어 일을 하지 않거나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해서 주님 오실 날이 가깝다는 것 때문에 일손을 놓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여기서 표현한 '외인에 대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교회 밖을 가리킵니다.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단정하게 행하고 또 아무 궁핍함도 없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를 서로 돌보아서 그들의 궁핍이 외부인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권면하고 디모데전서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권면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교회 밖에 불신자들을 돌보기는 바쁘면서 정작 등잔 밑이 어둡다고 교회 안에 약한자는 등한히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는 교회가 이름을 내려는 수작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공동체입니다. 이 사실을 늘 잊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항상 먼저 돌봐야 할 것이 있다면 교회 안의 연약한 자들입니다. 처음 예루살렘에 교회가 생겼을 때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세워 이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의 일은 바로 이 교회 안에 여러 불균형들을 평균케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가장 우선하는 일입니다. 


2. 자는 자들에 관하여(13-18)
믿음안에서 이미 세상을 뜬 자들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 아마도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있었던 거 같습니다. 성도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은 이들을 위로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겪은 필화가 있어서 할 말이 많으나 바울이 말한 이 말씀이 너무나 적실하기에 본문을 따라 설명하고자 합니다.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을 주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과 같이 주님 다시 오실 그 때에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일이 있을 것인데, 첫째, 주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 때는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 가운데 임하실 것입니다. 신약의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증거하는 데 계시록과 고린도서에서도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고전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나팔은 성경에서 통상 전쟁을 예비하는 신호라는 메타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나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은유적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분명한 징조로 참 믿음의 배성들에게 알게 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주은 자들이 먼저 부활할 것입니다. 
셋째,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인데 살아 남은 자도 죽음에서 부활한 자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이 부분을 문자적으로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일단 주님의 재림은 지역에 국한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미 말씀하신 대로 “보라, 저기 있다. 보라,여기 있다"고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급격하게 모든 사람이 다 보게 온다는 점, 또것 “번개가 하늘 아래 이 쪽에서 번쩍 이어 하늘 아래 저 쪽까지 비췸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름 속에서 주를 맞이하리라는 것을 단순히 공중에 들려서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맞는다고 물리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구름은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임재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출애굽 할 때, 시내 산에서,성막에 충만함으로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예수님이 변형되실 때,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리고 그분이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 모두 구름이 등장합니다. 공중은 하늘의 처소 곧 주님의 처소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해되고 그곳에서 주님을 임재 중에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성경의 본문들과 조화롭습니다. 
넷째, 그 결과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있을 일이고 이 일을 알려주는 이유는 서로 이런 말들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자는 자들에 대한 소망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모두 거짓입니다. 나는 참으로 주님 재림의 깊은 소망이 있습니까?



2014.07.07 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