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과정 :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가?
노승수 목사
회심의 과정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시는대로 이 부르심에는 일반적 부르심과 효과적 부르심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일반적 부르심은 불신자가 받고 효과적 부르심은 신자가 받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로마서가 말하는대로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알 만한것이 가득해서 그의 신성의 영광을 감출수가 없기에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자들보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일반적인 부르심으로 보면 그 부르심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을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와 같은 은혜와 능력을 보이셨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사실 이점에 이르러 모든 인류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것만 해도 반역의 죄요 대역죄인데, 그럼에두 불구하고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로 다시 부르셔서 은혜를 주겠다는 것을 굳이 거절한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다 버리시고 다 심판하셔도 무방하신데,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기로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효과적이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부르심이며, 중생의 시작이며, 믿음의 시작입니다. 우리 안에 믿음의 씨가 심겨지는 일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이며,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일이 결정적 구원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땅속에서 씨앗이 발아하고 어떻게 자라는가가 우리에게 숨겨진 것처럼 이 상태로서는 그의 구원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부르심은 그의 자비로움과 그의 의를 드러내는 일임으로 사람들이 힐난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음에도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의의 행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부르심을 입으면 이제 말씀이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을 영적 귀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저명한 신학자(루이스 벌콥)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찔리게 되고 양심이 괴롭게 되고 죄가 각성되며 자신의 여러 행위적 잘못들에 대해 괴로워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단순히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과 본성에서부터 죄악에서 출생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를<죄의 각성>과<죄의 확신>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잘 말해주는데로 이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양심>과<율법>입니다. 율법의 근본적 기능은<정죄>에 있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말하는대로 율법은 죄를 더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오해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율법은 폐하여졌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오해입니다. 율법은 폐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영광>이라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의 때를 영광의 때라고 말씀하시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요 13:31) 요즘 연말 시상식이라 상받는 연예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달리 말해서<영광>이란 하나님의 큰일 곧 하나님의 구원의 일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드러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우리가 더 거룩해지는 일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영광 곧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의>라고 하며, 이 의의 행동을 기록한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은 결코 폐하여질수 없는 세세무궁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까닭에 죄인인 우리가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각성하고 확신하게 되면, 사실상 죽음을 경험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가 우리 영혼을 황폐하게 하고 그 경험은 마치 주님이 십자가에서, 아무 죄 없으시나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정죄를 받아 죽으신 것과 같은 일종의 가사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미 우리 안에 믿음이 심겼고 그 믿음이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정죄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회개와 믿음>이며 이렇게 주님께 돌아서는 순간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안심할 수 없습니다. 아직 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시기에 신자는 죄의 확신을 인해서 복음적인 회개를 하게 됩니다. 우리의 돌아선 마음은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어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씀을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게 된 신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는 슬픔을 갖게 되며 그래서 그 영광에 가까워지려는 애씀을 보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으로 비로서 영적 출생(New birth)를 하게 되는데 그 증거가 바로<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칭의와<성령을 선물로 받는 일>입니다.<칭의>는 이전에 짓누르는 정죄에서 해방되어 누리는 영적인 자유로 경험되며, 이 자유를 보증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입니다. 흔히<성령세례>로 불리는 이 사건은 특별한 사람들이 받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중생의 표지입니다.
이 때 비로서 신자는<구원의 확신>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회심시에 신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어떤 이는 믿음을 먼저 경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회개를 먼저 경험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짧은 시간에 회개로부터 성령을 선물로 받는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죄의 각성으로부터 출생까지 한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이 구원 받는 이 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속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생하지 못한채로 자신을 신자라 여기는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음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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