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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이사야서강해

Isaiah 61:1-3 묵상

Isaiah 61:1-3 묵상


 
노승수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1절 : 이 본문은 누가복음 4:18-19에서 인용되는 본문이다. 예수께서 나사렛 동네 회당에서 이 성경을 펴 드시고 설교 후에 이 말씀이 지금 너희 귀에 응하였다 하심으로 이 예언의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자신임을 드러 내셨다. 여호와의 신은 곧 성령을 가리킨다. 기름을 붓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임직했다. 직분의 임직을 뜻한다. 1절 후반절에 나타난 여러가지 사역들에 대한 소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하고 마음이 상하고 갖힌 자를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의 첫째가 공의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의란 그의 진노를 수반한다. 그의 긍휼을 의지해야하는 영적이며 내면적 자세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노를 면하기 어렵다. 1절 후반절의 가난하고 마음이 상하고 갖힌자는 이런 의미를 담아낸다. 우리의 내면의 상태가 어떠한가하는 문제이다. 영적 파산자임을 주 앞에 고백하고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처럼 품군으로라도 써주기를 청하는 마음이 바로 가난하며 상한 마음이다. 그런 자들에게 고침과 자유와 놓임을 베풀기 위해서 기름부어 세움을 임었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직임에는 반드시 두가지 요소가 따라야 한다. 첫째는 성령의 세우심, 즉 내면적으로는 성령께서 그를 세우시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기름부어 세우셨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직함은 공식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교회의 일꾼으로 공식적으로 세움을 입는 일의 중요성을 함께 말하고 있다.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2절 : 이 절은 1절의 부연이기도 하다. 동시에 두 가지 날을 언급하는데 첫째가 은혜의 해이다. 이것은 구약의 희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7년 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 7번 반복되고 50년째 되는 해를 가리킨다. 이 기간은 그동안 가난해서 토지를 팔고 자식을 종으로 팔아야만 했던 사람들의 토지와 자녀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매 50년 마다 종은 자유를 얻고 토지는 조상적 부터 내려오던 원주인이에게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이 희년 곧 은혜의 해의 선포는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60장은 교회의 영광을 보여준다. 보다 엄밀하게는 예루살렘 곧 시온의 영광을 보여준다. 이런 해방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의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61장이 보여주고 있다. 59장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이 죄악의 보수자로 등장하셔서, 모든 죄악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처럼 이 자유는 바로 죄악의 사슬로부터 자유인 셈이다. 마치 보아스로 말임암아 룻과 나오미가 자신의 기업을 무르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의 등장은 이스라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자의 기업 무를 자 곧 보아스가 되신다. 
 
두번째는  신원의 날이라고 표현했는데 좀 어려운 말인데, 쉽게 풀자면, 보응의 날이다. 곧 구약적 개념의 '여호와의 날'이다. 이 여호와의 날은 8세기 선지자 아모스에게서 처음 등장한다.『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암 5:18). 여호와의 날은 원래 축제일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인해 이 축제의 날이 더 이상 축제의 날로 기억되지 않고 심판의 날로 그들에게 주어질 것을 말한다. 이 여호와의 날은 오순절 성령 강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베드로가 성령강림의 의미를 메시지로 말할 때, 요엘서를 들어서 심판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축제의 날로 비견되는데, 가난한자 마음 상한 자들의 슬픔을 제하는 날로 이해된다. 즉 성령의 강림은 참 신자들에게는 해방과 기쁨의 날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보응의 여호와의 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신원의 날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이 두가지 측면을 다 언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맥상으로는 신자들에게 즉 마음이 상하고 가난하고 갖힌자들의 슬픔을 제하는 것에 초점이 있지만 신원의 날이라 말함으로 이들에게 슬픔이 제하여 지는 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공의에 보응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절 : 2절 후반절 부터 세번 연거푸 슬픔이란 단어가 반복된다. 이 자신의 죄악을 슬퍼하며 이 죄악의 사슬에 갖히고 그래서 마음이 상한 무리들에게 희락의 기름이 주어진다. 기름이란 임직의 역할도 하지만 구약에선 자신을 단장하는 단장품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도 단장품의 이미지를 묘사한다. 현대에도 남자들이 자신의 머리를 단장할 때 포마드 기름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이들의 찬송이 그들의 옷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뿐 만 아니라 이들이 의의 나무 본문의 해설처럼, 여호와의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날 재라 불릴 것을 말씀하신다. 이들에게 은혜의 해와 보응하시는 여호와의 날 곧 오순절 성령 강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신다. 그 결과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되고 의의 나무가 되어서 그 영광을 드러낼 하나님의 은혜의 공동체 곧 60장에 언급한 교회의 영광이 어떤 식으로 드러날 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2008.01.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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