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02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은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 구조다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은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 구조다#수정증보_2월_2일_오후_5시_12분 제 3번째 책에서 이 문제를 사실 직접적으로는 안 다루었는데요. 그러나 맥락은 충분히 다루었습니다. 어거스틴 이후로 아담의 최초의 죄는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는 범책과 정녕 죽으리라는 벌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뭉둥그려서 후손에서 이것이 유전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웨스트민스터 문서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구요. 근데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속죄를 해석하면서 벌책, 다시 말해서 사망의 형벌은 그리스도가 대속하셨는데 아담의 범책 곧 행위로 지어진 죄들은 속죄되지 않았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원의의 주입"은 이런 맥락이죠. 즉, 주입된 의는 바로 사망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에게 주어진 것은 자신이.. 더보기
율법의 용도 율법의 용도 노승수 목사 율법의 용도는 루터와 칼뱅에게서 첨예한 주제였다. 이것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결정짓기 때문이며 역사적 논쟁의 많은 부분이 여기서 촉발된 것이다. 칼뱅파와 루터파 간에도 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율법의 용도에 대해 성경의 석의를 통해 합의한 바는 4가지 정도며 루터파와 칼뱅파의 이해에는 서로 다른 구분으로 3가지 용도를 이해하고 전개했다. 1. 첫째 정치적 또는 시민법의 용도(usus politicus sive civillis)로 죄를 억제하는 용도로 세상에 죄가 관영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라 할 수 있다. 죄를 지은 자에게 형벌을 줌으로 세상에 구현되는 세상 법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며 이는 택자와 비택자에게 차이가 있다. 로마서 1장에서 보듯이 자연에서.. 더보기
능동적 순종의 핵심적 포인트 능동적 순종의 핵심적 포인트 첫째 아퀴나스적인 내재주의적인 의의 주입에서 비롯되는 순종을 내가 행한 구원의 공로로 가져오는 데 대한 수정에 있다. 종교개혁 신학은 이것의 수정에서 시작한다. 둘째 종교개혁은 이것을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께로 돌림으로 초월주의로 돌아갔다. 셋째 초월주의를 채택한 결과가 전가 교리로 의는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이 의를 우리 것으로 간주받는 것이다. 넷째 중세 후기 극단적인 주의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우리 의지가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노예의지론이며 이것의 중요성을 루터는 자신의 책이 다 없어져도 이것만 남는다면 기독교는 다시 살아난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도르트 신조의 첫 교리인 전적부패로 공고해진다. 다섯째 이런 .. 더보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노승수 목사의 입장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노승수 목사의 입장 노승수 목사 최근 제가 하지도 않은 말로 세간에 화재가 되었습니다. 그 화재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라는 개혁파의 신앙고백들에 나타나는 입장이 있습니다. 제가 제 블로그에 쓴 “이중 칭의(double justification)에 각기 다른 사용법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 중에서 아래의 문장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모 인터넷 신문의 기사가 낫습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참 사람)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하신 순종, 곧 행위 언약의 성취인 것이죠. 이렇게 이루신 의가 전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출처: https://lewisnoh.tistory.com/…/이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