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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기타미분류

“실체”(substance) 개념의 발전사

“실체”(substance) 개념의 발전사
우병훈 목사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범주론』에서는 실체(substance)를 개별자(individual)들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형이상학』에서는 실체가 최하위 형상(infimae species; substratum)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현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가들은 어떤 것이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인지를 두고 논쟁한다.
그러나 중세와 초기 근대(16-17세기)까지 발전된 철학의 역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개별자에 두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개별자들 하나하나가 실체이다.” 중세와 초기 근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바로 이 명제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런 사고 구조에 따르면, 인간 김똘똘은 하나의 실체이다. 그리고 그 실체는 영혼과 육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영혼은 형상(form)이고, 육체는 질료(matter)이다. 중세와 초기 근대의 많은 철학자, 신학자들이 인간을 이렇게 형상과 질료의 결합(질료형상론: hylemorphism)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데카르트(1596-1650)는 이러한 실체 개념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두 개의 실체만을 인정했다. 하나는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고, 다른 하나는 연장된 것(res extensa)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에는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이 있는데, 무한한 생각하는 것은 신이고, 유한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연장된 것 안에는 모든 물체들이 다 포함되는데, 특히 인간의 몸이 그러하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인간이란 생각하는 것(정신)과 연장된 것(몸)이라는 두 실체의 결합이다. [참고로, 데카르트를 기회우인론자(occasionalist)라고 보는 견해가 그 동안 지배적이었으나, 요즘 학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데카르트를 기회우인론자라고 보지 않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리처드 멀러 교수도 데카르트를 엄밀한 의미에서 데카르트를 기회우인론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두 실체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라이프니츠(1646-1716)는 서로 구분되는 이 두 가지 실체들, 즉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몸은 원래 만들어질 때부터 서로 조화되도록 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여, 결정론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2년 2월에 칼빈신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제출한 제이콥스(Nathan Jacobs)는 라이프니츠가 결정론자가 아니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 속에 서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는 달리 말브랑슈(1638-1715)는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몸을 연결시키는 것은 신의 활동이며, 그 활동은 매순간 지속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기회원인론 혹은 우인론(occasionalism)이다. 원래 기회원인론은 이렇게 정신과 몸의 연관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이론이지만, 점차 발전하여 모든 사물의 활동에는 신의 적극적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하여, 피조물의 독자성을 거의 말살시키는 쪽으로 흘러갔다.
스피노자(1632-1677)는 흥미롭게도 이것을 다 통합시켜 버렸다. 즉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있다. 그것은 신이며 자연(Deus sive natura)이다. 물론 스피노자가 브루노(1548-1600)가 사용한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의 구분을 받아들였기에, 그가 신과 세계를 완전히 섞여 버렸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그는 하나의 실체만이 있고, 그것이 곧 신이며 세계인 것처럼 말하거나, 신이 모든 세계에 다 펼쳐져 있는 것처럼 말하기에, 그는 범신론자가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두 실체설, 라이프니츠의 조화설,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 스피노자의 범신론 모두 초기 근대와 근현대 개혁파 신학자들이 대체로 거부하였다. 물론 에드워즈(1703-1758)의 경우 기회원인론을 주장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Oliver Crisp, Stephen R. Holmes). [나도 에드워즈가 그런 입장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자유의지론)에서 에드워즈는 개혁파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일반적으로 개혁파 신학자는 실체는 개별자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인간에 대해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이해하고 있고, 하나님은 개별자의 실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며, 하나님이 역사와 만물에 대해 예지하시되 개별자의 자유를 허용 및 활용하는 방식으로 예지하셨다고 보았다. 이런 내용 중에 많은 부분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잘 드러나 있고, 내가 믿는 바로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견해가 바로 그러했다.
* 위의 내용은 책을 안 보고, 기억에 의존하여 그냥 풀어 쓴 것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만 사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