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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간섭과 관심

간섭과 관심 


노승수 목사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이거나 정신증이나 신경증으로 상담실을 찾거나 병원을 찾는 경우를 보면, 흔히, 부모가 간섭이 지나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모의 문제행동이 바로 간섭이나 방기(放棄)이다. 지나치게 간섭하게 되면, 아이의 자아가 적절하게 발달하지 못하고 의존하게 되는데 이때 신경증의 기초가 놓이게 된다. 반대로 지나치게 방기하게 되면 아이는 욕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고 이런 경우, 교도소나 소년원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근데 문제는 보통의 경우 부모들이 자신들의 간섭을 관심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어느 선교사가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필리핀의 어느 부족에게 감자 심는 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족은 끝내 감자를 재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봄에 곡식이 궁할 때, 감자가 열리게 된다는 말에 매일 밭에 가서 감자가 자라는지를 뽑아 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지나친 간섭은 생물을 자라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분은 자녀 양육을 마치 난초를 키우듯이 해야 한다고 한다. 때에 맞게 물을 주고, 때에 맞게 볕에 내어놓고 그늘에 들이고 하지만, 그 외에 일들에 간섭하지 않는다. "공부해라!" "너는 밥 먹는 게 왜 그 모양이냐?" "옆집 철수는 공부 잘한다는데 너는 도대체 뭐하냐?" 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관심 있게 돌보기만 한다. 
그런데 보통 부모들이 이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간섭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병이 난다. 대부분의 신경증과 정신증의 원인은 이런 부모의 과도한 간섭에서 시작한다. 보통 정신분열증은 모계로 3대만에 발병한다고 한다. 보통 간섭은 자신 안에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간섭이란 부모에게 잘 안 되는 어떤 것을 자꾸 아이들에게서 발견하는 일종의 심리적 투사이며, 동시에 심리적 조정(manipulation)이다. 아직 자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유, 아동기 시절 이런 심리적 조정에 장기간 노출되게 되면,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부모가 계속해서 방해하기 때문에 이 방해로부터 자신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병증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는 이 병증이 없이는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성격장애, 신경증, 정신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단의 학자들이 일선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에 대한 잠재능력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고 난수표로 무작위 추출한 몇 명 학생들에 대해 학교에 "그 아이는 특별한 아이이니 관찰을 요함"이라고 통보를 해주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을 때, 학교를 찾아보니 그 아이들이 전과 달리 월등해 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왕이 완벽한 여성을 조각해놓고 그것을 매일 닦고 사랑하기에 신들이 그녀를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신화에 기초해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명명했다. 의학계에선 소위 "위약효과"라고 해서 플라시보 효과도 이와 비슷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아이들은 간섭에 의해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에 의해서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일종의 관심이다. 어른들이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을수록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예민하게 되고, 동시에 지나가다가 한 한 마디를 마음에 두고 챙겨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관심이다. 그러나 사랑이 일정한 안정기로 접어들게 되면, 그냥 관심만 갖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점점 요구가 많아지거나 조정하려 들게 된다. 흔히 사랑의 기세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과정에서 조정을 경험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간섭에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적절히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그래서 증상이나 문제행동이 생기는 것이다. 
간섭은 대개 욕심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부모의 욕심이거나 혹은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나 사회적 체면 때문에 아이들에게 부모의 체면에 부합한 행동을 강요하는 욕심이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나는 천부적 소질과 재능 및 인격을 가질 뿐 아니라 그가 종교인이건 아니건 사람의 인권은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인격권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쉽게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의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모 일간지에 외국인에 눈에 비친 한국의 교육에 대한 사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외국인이 어느 한국인 부부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 집의 어린 아이가 열쇠를 가지고 열쇠구멍에 못 맞추어서 끙끙거리자 부모는 너무나도 쉽게 아이의 손을 잡아서 구멍에 맞추어 넣어주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생소하게 여겼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쓴 글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문화이다. 그 외국인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기까지 기다린다는 취지에서 글을 썼던 거 같다. 이게 관심이라면 손을 잡아서 열쇠구멍에 넣어주는 것은 간섭이다. 좀 더 적절한 비유를 들자면, 마치 탁구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탁구를 잘 치는 것은 넘어 온 공을 잘 넘기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렇게 치건 저렇게 치건 그것은 상대의 몫이다. 내게 넘어온 공을 잘 넘기는 것이 관심이고 상대방이 공치는 것을 정해주는 것이 간섭이다. 사실 이렇게 간섭하면 게임의 묘미는 사라지고 말듯이 아이들 개개의 개성과 삶의 묘미도 간섭에 의해서 사라진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그 교육열에서 최고를 자랑함에도 정작 전 세계 100대 대학에 드는 대학이 없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너무나 지나치게 간섭을 받아 대학에 가면, 스스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섭은 일정한 수준에 빠르게 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창의성을 앗아가 버린다. 한국 축구를 보면서 히딩크는 매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서양에는 왼발 오른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개인기도 결코 서양선수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은 간섭이다. 이것은 위계 문화하고도 연관인 있는데, 그래서 히딩크는 선수들이 서로 반말을 쓰도록 했다고 한다. 선배들이 후배들의 플레이를 간섭하니 각자의 좋은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간섭은 이처럼 우리의 진정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든다. 멀리서 예를 찾지 않더라도 누군가 우리에게 지나치게 기대하면 부담스럽고 긴장되지 않는가? 긴장되면 진정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거나 긴장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관심이 아니라 간섭인 것이다. 
DSM이란 미국정신의학편람에 홧병이 나오는데 이것을 한국학자에서 연구해서 올린 것이다. 왜 외국인들에겐 잘 없는 홧병이 한국인에겐 특히 많은 것일까? 그것은 이런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지나친 간섭은 의존을 낫는다. 화란 의존이 좌절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홧병이란 이 화를 억압함으로 생기는 정신적 질병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고 그 기대가 좌절 될 때, 분노하게 된다. 간섭이란 결국 스스로 하는 능력을 저하시키고 현실에 대한 부적응을 증가시킨다. 미국은 대부분 대학을 본인이 융자를 얻어서 다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재정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그러나 한국은 시집,장가가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모들 역시 그런 의존을 당연시한다. 그래서 ○○대학 의과대학의 이○○ 교수는 자녀가 결혼 할 때 결혼 자금으로 500만원이상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과 관심을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간섭은 우리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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