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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


노승수 목사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다. 그러나 기쁨만으로 기독교와 여타 종교를 구별하려들면 우리는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고대의 모든 이방종교들의 제전은 기쁨의 도가니였기 때문이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바알과 아세라 신전의 제의는 커다란 축제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즐거워하였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기독교를 생각할 때 교회당 안에서 낮은 소리로 말하고 발끝을 숨죽이며 걸어가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축제적 이미지를 교회가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대적 교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무슨 축제의 장이나 시장 통 같이 변질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그저 기뻐하는 것은 이방종교의 축제적 제의와 기독교 신앙을 구별하여 주지 못한다. 그 내용이 성경에서 왔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내용이란 사실만으로 이 둘 사이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자신의 만족을 인한 기쁨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삶을 두 종류로 구별했다. 첫째는 ’아모르 수이’(Amor Sui), 곧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아모르 데이’(Amor Dei), 곧 하나님 중심적인 삶,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신자의 기쁨은 주님의 아름다움과 그 영광을 인한 기쁨 곧 하나님 중심적 기쁨이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함께 만들어진 소요리문답의 제 1 문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인해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그렇다. 기독교 신앙이 이방적 제의와 차이를 갖는 것은 이방적 신앙은 자신을 인해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이 이방적 제의는 아직도 우리 가운데 남아 있다. 나이트클럽을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춤을 춘다. 그러나 거기에선 경건을 찾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뻐함을 찾아 볼 수도 없다. 기독교 신앙의 기쁨은 나를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한 것이어야 하며 내가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어야 한다. 
사랑이 얕은 사람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연애 한다. 그러나 깊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나의 기쁨이 된다. 뭔가를 줄 때도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준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런 밀월의 관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해야 하고 그 기쁨이 우리 신앙의 중요한 본질의 하나이다. 우리가 예배에 발끝은 세우고 들어가는 경건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기뻐하려면 그냥 기뻐하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 즉, 그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사랑은 귀기울여 듣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쁨의 본질이다. 
-승수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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