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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개혁신학과 신앙의 구조

개혁신학과 신앙의 구조


노승수 목사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뜻과 그 자유, 주권을 신학구성의 머리에 둔다. 그 자유를 따른 삼위하나님의 의논에 의하여 작정이 이뤄지고 그 작정의 시행으로서 창조와 섭리를 논한다. 특별히 작정 중에서 천사와 사람에 관한 작정을 예정이라고 하고 더 좁혀서는 인간의 구원의 관한 작정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예정은 시간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며 이 실행은 창조와 섭리를 통해 이뤄지는데 특별히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역사 안에 구현된다. 무엇보다도 이 언약의 통일성이 핵심인데, 창세 전부터 전능자의 일관된 계혹을 따라 이뤄지는 경륜으로 보기에 때문에 언약의 통일성을 불가피하다. 실제로 바울이 로마서에서 논증하는 것이 바로 이 언약의 통일성이다. 구약의 백성과 신약의 백성의 구원의 경륜으로서 언약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믿음이라는 방편을 통해서 삼위하나님과 그 택자 간에 언약이 맺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언약은 택함보다 넓다. 언약이 역사라는 방식에 의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고 그 언약에서 변하신 바가 없지만 유대인이 스스로 넘어진 것이다.


특별히 언약의 조건이 믿음이라는 점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믿음의 고백으로 사도신경을 다룬다. 이는 어거스틴이 신앙편람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으로 설명한 방식에 기원을 두고 있고 가까이는 루터의 대소요리문답에 그 기원이 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은 사도신경 대신에 구원의 서정을 이 자리에 넣어 두었다. 이는 일종의 신학적 진보라 할 수 있다. 믿음이 단지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이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작정하신 바를 이뤄가는가를 언약적 맥락을 통해서 그 성취를 드러내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논리적인 순서임에도 섭리 안에서 이러나는 언약의 성취 과정을 설명해간다는 점에서 시간적 요인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가 시간에 머무르고 있음으로 시간적 이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속의 인간이지만 초월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담보이기 때문에 지식에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되고 시간 밖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의 구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구원의 서정은 그 언약이 성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태초에 작정하신 바가 이뤄져가는 과정을 신자들에게 보여줌으로 믿음에서 넘어지지 않고 이 믿음의 경주를 마치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