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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신학서론

개혁주의 인식론

개혁주의 인식론 
이성호 교수
1. 용어에 대해서. 개혁주의 인식론(Reformed Epistemology)는 일단 인식론의 한 종류이고 그 가장 큰 목적은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변증하는 것이다. 즉 변증적인 목적이 강하다.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없이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진정으로 기본적인 믿음(properly basic faith)에 속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진정으로 기본적인 믿음"은 개혁주의 인식론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식론을 "진정으로 기본적인 인식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을 개혁주의 인식론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들의 주창자가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고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칼빈의 sensus divinitatis (신의식) 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2. 주창자. 이 인식론의 주창자는 단연 Alvin Plantinga와 Nicholas Wolterstorff, 그리고 William Alston이다. 앞의 두 사람은 칼빈 대학교가 배출해낸 세계적인 철학자들이고 마지막 사람은 영국 성공회 사람이다. 플랜팅가와 월터스토프는 원래 칼빈 대학에 있었으나 지금은 노틀댐과 예일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미국 철학계에 끼친 공은 지대하다. 불모지와 같은 기독교 철학을 미국에서 꽃 피웠을 뿐 아니라 종교가 철학적 논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결정적인 장본인들이다. 그들의 철학으로 인해 무신론이 세속철학을 지배하는 것을 현저하게 막을 수 있었다. 월터스토프는 생활이 검소한 것으로 유명한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기독교 철학자들이 모였을 때 회의를 마치고 있었던 관광 일정에 유일하게 참가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 돈이면 바로 옆에 배고파 죽어가는 어린이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 참석한 손봉호 교수는 그 이후 월터스토프를 "형님"으로 모셨다한다. 
3. 대표적인 저서: Plantinga 와 Wolterstorff 편저, Faith and Rationality: Reason and Belief in God, Notre Dame, 1938. 여기에 대해서 카톨릭 신학자들이 한데 뭉쳐서 비평을 내 놓았는데, Thomistic Papers IV, Center for Thomistic Studies가 있다. FR 은 미국 철학계에 광범위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4. 개혁주의 인식론(이하 개인)의 배경. 
근대철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제는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바뀌게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도 그 지식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가 문제이다. 데카르트와 로크의 합리론과 경험론의 영향으로, 그리고 칸트의 종합을 통해 우리의 합리적 지식은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 온다는 것이 정립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지식이 분석적 지식(Analytic, 순전히 이성의 사고를 통해서 이루어진 지식, 대표적으로 수학적 지식)이거나 종합적 지식(Synthetic, 경험이나 실험을 종합하여 이루어진 지식, 대표적으로 과학적 지식)만이 합리적인 지식으로 간주되었다. 
신앙 역시 이성에 의해 당연히 비판받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합리적인 신앙은 가능한가이다. 신앙은 이성과 무관하니 굳이 합리적인 변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은 오직 성경이 말하면 끝이라고 믿었고 세상 철학과의 대화는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믿음은 세상사람들이 볼 때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Locke 이후에는, 충분한 증거(evidence)가 있을 때만이 우리의 신앙이 타당하다는 것으로 이정받았다. 따라서 증거가 없는 신앙은 합리적인 신앙이 아니다. 이것을 증거주의 (Evidentialism)이라고 한다. 이 증거주의는 또한 근본주의(foundationalism: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본주의와는 전혀 다름)와 밀접하게 관계를 지니게 된다. 근본주의에 따르면 지식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그 증거가 자명한(self-evident) 진리에서 나오든지 아니면 그 자명한 지리에서 연역된 진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경우 지식이 근본적인 진리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을 위한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개인론은 이러한 증거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하게 된다. 
증거주의와 근본주의를 종교에 적용시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당신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믿는다면 증거를 대라. 증거를 댈 수 없다면 당신의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다." 이후 많은 기독교 변증가들은 이 전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의 합리성을 옹호하려고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신존재증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난관에 봉착하였다. 우리의 신앙이 합리적인 것을 어떻게 변증할 수 있겠는가? 
개인론의 결정적인 공헌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전제 자체를 공격한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증거가 꼭 있어야만 합리적인 믿음이 가능한가?"이다. 증거가 없어도 합리적으로 얼마든지 믿을 수 있지 않는가?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개인론의 핵심이 되고 수렁에 빠진 기독교 변증학을 구하게 된다. 
증거가 없어도 합리적인 믿음에는 다음 몇가지가 있을 수 있다. 
1)나는 내 앞의 나무가 푸르다는 것을 믿는다. (감각적 지식) 
2)나는 오늘 아침에 밥을 먹었다는 것을 믿는다. (기억력) 
3)나는 내 앞에 있는 환자가 아프다는 것을 믿는다. (다른 사람의 정신) 
우리들은 이러한 모든 기본적인 세 사실들을 다른 자명한 진리에 근거하거나 아니면 자명한 진리에서 추출한 진리에 근거하여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믿는다. 증거가 없어도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믿음들을 불합리한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또한 이러한 믿음은 근거가 없는 믿음도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보편적인 경험과 환경 조건들에 근거하여 위 세가지 사실을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믿는다. 따라서 이 경우 우리의 믿음은 근거없는 믿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론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1) 만약 당신이 푸른색 선글라스를 착용했다면, 그 나무가 실재로는 흰색일 수 있다. 
2) 당신 기억력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어제 밥 먹을 것을 오늘 아침에 먹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3)앞의 환자가 꾀병을 부리는지 어떻게 아는가? 
개인론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반박한다. "물론 당신 말이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떤 조건"에서는 우리는 증거가 없이도 어떤 사실을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기가 심히 어렵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가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고, 그러한 조건 자체가 얼마든지 우리들의 신앙에 근거가 될 수 있고 따라서 합리적인 믿음이 가능하다. 
그리고 개인론은 이러한 결론들을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적용시킨다. 즉 하나님의 신앙도 앞에서 말한 3가지 카데고리에 들어간다면 증거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합리적인 믿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증거는 없지만 
1)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2) 하나님은 나에게 용서를 베푸셨다. 
3)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물론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합리적인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댈 필요는 없다. 증거가 없다고 나의 신앙이 근거없는 것도 아니다. 앞의 3가지 모든 사실은 나에게 "진정으로 기본적인 신앙(properly basic belief)"이기 때문이다. 
개인론은 기독교 변증학을 "증거를 대라'라는 세속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인식론의 연구방법 자체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개인론을 충분히 섭렵하여야 할 것이다. 철학 전공한 분들이 좀 더 잘 설명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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