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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결핍과 균형

결핍과 균형 


노승수 목사


평화운동가는 평화롭지 않고 상담가는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기도를 말하는 이는 기도에 안 된다. 사람들은 자기 결핍을 추동삼아 삶을 만들어 간다. 대체로 강조는 자기 결핍을 표현하는 다른 언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적은 평범이다. 다소 불교적 표현일 수 있는 "걸림이 없는 삶"이 기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결핍을 사용하시며 그것을 소명으로 부르신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 결핍이 네거티브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결핍이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핍이 우리 삶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결핍 때문에 결국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핍의 동력이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아카데미로 다루는 것에 반대하는 데 사실 세계관은 이런 소소한 우리 삶의 동력과 삶을 바라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내 결핍은 내 삶을 바라보는 안목을 만든다. 그리고 그 결핍을 보충하는 어느 시간까지는 이것이 유효한 동력이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면 그것의 유효기간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핍에서 비롯된 삶의 기술을 필요에 따라 쓰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엄격하게 자동화된 결핍의 동력은 삶의 모든 것을 이것으로 해석하면서 결국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이다.


행글라이더가 활강하듯이 삶의 붕괴는 서서히 찾아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은 이것이 무너지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다. 보험 업계에서 통용되는 법칙 중에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과학적 통계 법칙인데 1명의 사명자가 나오기까지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 300명의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1:29:300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핍이 균형을 깨뜨리고 하강 국면을 보일 때, 300번의 신호가 먼저 온다. 그리고 29번의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이 신호를 무시하게 되면 행글라이더가 활강하면서 난기류에 관한 300번의 신호를 무시하다가 추락하게 되는 시점을 맞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핍이 가져다 준 동력이 일정하게 삶의 기술을 형성했다면 이제 그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강을 건넌 후 필요없어진 보트를 산을 오르면서 지고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럴 때 내 삶에 다가오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오는 신호를 무시하고 가면 안 된다. 이 신호는 이제 그 결핍의 동기를 넘어 다른 사랑을 하라는 신호다.


사람들은 사랑을 두 가지로 한다. 첫째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사랑이며, 이것은 내 세계관으로 타인을 보는 방식의 사랑이다. 둘째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랑이며 이것은 타인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랑의 방식이다. 전자는 결핍을 근간으로 한 삶의 동력이며 후자는 진정한 돌봄을 동력으로 하는 삶의 동력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성숙이며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이다. 어려운 말로 현혹하는 것들에 속지 마라. 내가 보는 게 삶의 자리에서의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