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목사를 닮는다
노승수 목사
길지 않은 목회 여정에 많은 교회를 경험해본 것 같다. 처음에 교회 생활을 하고 교회에 익숙해지고 교회를 통해 신앙이 자랄 때는 모든 교회가 다 이럴꺼라는 막연한 어떤 전제같은 것이 있었던 거 같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한국교회 교인이라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교회 생활을 깊이 경험하면서 내가 처음 교회를 옮기게 된 것은 아버지의 신앙생활 때문이었던 거 같다. 온 가족을 다 부르셔서 가족구원을 이루었지만 아버지의 신앙 생활을 그야말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 그 자체였다. 교회는 다니지만 구원받지 못한 그런 사람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집 가까웁고 말씀이 좋은 교회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청년대학부를 졸업하는 날 담임 목사님과 상의를 하여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나 온 가족이 처음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옮겨간 교회는 예배가 살아있었다. 내 일생에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그 교회를 꼽을 것이다. 목사님의 말씀과 예배 가운데 살아 숨쉬는 성령의 운행하심, 그리고 모던 예배의 가벼움이 없는 전통적인 진중함과 장엄함, 그러면서도 현대적이고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배와 살아있는 제자훈련, 제자훈련 수료식은 수많은 간증이 쏟아지는 날이며, 동시에 믿지 않던 가족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던 교회, 구역(사랑방) 모임은 생생한 중생의 간증과 복음의 영향력이 영혼을 변화시키던 아름다운 교회이다. 내 일생에 목회와 교회의 완전한 모델이기도 했던 교회였다. 나는 그 교회에서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신학 연수 과정을 위해 하는 수 없이 떠나온 교회, 내 마음에 여전히 고향과 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교회이다.
그 때 즈음이었던 거 같다. 교회는 저마다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 같다. 신학생이 된 후, 그리고 나를 사역자로 불러준 그 교회를 떠나온 후 첫 사역한 교회는 사랑이 참으로 많은 교회였다. 나는 이 때까지도 모든 교회는 참으로 사랑이 많구나!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이후의 수많은 교회 경험을 통해서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무튼 성도들과 직분자들은 모두가 겸손했다. 특별히 직분자들은 솔선수범하며, 누가 뭐라하기 전에 먼저 실천하는 분이었다. 예배시간이면 특별한 안내가 없어도 앞자리부터 채워 앉으며 뒤에 오시는 분들을 배려했다. 자녀들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아 어려서부터 믿음에 신실하였다. 아이들이 주일성수 문제로 고민하였고, 그런 신앙적 고민을 대하는 내 마음은 아이들에 대한 기특함으로 가득했었다. 단 한가지 단점이 있었다면 사역자들간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문제 없는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 교회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이런 문제는 문제 축에도 끼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두란노를 섬길 때, 한 장로님의 소개로 용인지역에 무목사 교회를 1년 정도 섬기게 되었다. 이 교회는 이전 교회에서 목사님과의 갈등으로 떨어져 나온 교인들이 세운 교회였다. 다른 교회 목사님과 합병을 했다가 다시 깨어지기를 반복하여서 교인들은 순박하지만 사역자들에 대한 불신이라는 상처를 깊이 받은 교회였다. 소박하고 정이 많은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불신은 골이 깊어 수없이 갈라지기를 반복하고 말았다. 당시 목회지를 두고 고민하던 동기 목사님이 이 교회를 맡겠다고 여러번 전화를 걸어와서 이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그 목사님께 교회를 맡기었다. 그 목사님의 수고로 이젠 제법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전혀 소식이 없었는데, 얼마전에 위임을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한 번 와서 말씀 전해달라는 청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그 목사님과 정이 들어서 제법 교회도 안정되어가는데 이전 사역자가 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에 덕이 되겠는가? 속으로 이런 판단들이 섰다.
또 다른 경우는 매우 규모가 없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신데, 교회가 어떤 원칙이 없이 임시변통으로 사역이 진행이 되었다. 예컨대, 직분자 임명에 대해서 한 쪽에서 원성이 나오면 우는 아이 젖주는 식으로 그 형편을 목사님이 들어주시고 그럼 또 다른 쪽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목사님의 좋은 성품은 오히려 교회를 규모없이 만들고 있었다. 규모가 없는 것은 사역자를 대우하는데도 그대로 들어났다. 고린도전서 9장에 의하면 사역자가 일함으로 마땅히 그 삯을 받는 것은 사역의 당연한 원리이다. 교회에서 하루 종일 사역함에도 식사문제나 유류비 혹은 통신비 같은 가장 상식적 것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라는 성경의 가르침도 제대로 배워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규모가 없는 것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까닭이라고 생각된다. 강단에서 성경이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고 해서 성경이 가르쳐지는 것은 아닌 거 같다.
그 후에도 여러 교회를 거쳤지만 일산으로 오게 되었던 타 교단의 한 교회에서 사역할 때, 일이다. 이 교회는 거의 사모의 휘두름이 도를 넘어선 교회였는데, 그런 탓인지 교회가 성장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분란이 생기고 교인들이 쫓겨나는 일을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교역자 역시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쫓아내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나는 거기서 가장 오래 사역한 목회자였다. 무려 9개월이나 사역을 했으니 그 교회의 여러 사역자들에 비하면 오랜 기간의 사역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떠난 성도들이 겪는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교회에 대한 상처, 그리고 그들을 향한 정서적이며 영적이며 물질적인 착취에 깊은 안타까움과 탄식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에 우연히 가게 된 교회가 우리 교단의 한 교회였다. 이 교회는 말씀이 너무 좋았다. 교인들도 매우 신사적이며 내가 처음 사역자로 부름 받았던 그 교회 이상으로 말씀이 좋았다. 글쎄 내 개인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들어갈 만한 설교였다. 예배의 단순함이라든지, 주일 성수에 대한 성도들의 경건한 태도라든지, 종교개혁시대에서 방금 튀어 나온 것만 같은 그런 성경중심 사상을 그대로 구현하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단지 한 가지 흠이라면 지나친 엄격성 때문에 오는 경직성이었다. 이 엄격함은 우리의 연약함을 털어놓고 나누는 것을 방해했다. 그래서 교인들의 관계는 보다 깊어지지 못했다. 이건 약점이라기 보다 이 교회가 가진 놀라운 장점에 비견되는 아쉬움이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아이들의 실수를 용인하면서 자라가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엄격성은 이런 시행착오를 과실로 여기게 만들었던 거 같다. 교회란 공동체는 완전한 자들의 사교장이 아니라 연약한 자들이 와서 은혜를 얻음으로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는 장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넘어짐이 허용되는 공동체를 구현해야 한다. 이 교회는 그런 아쉬움을 내게 남겼다.
그제서야 나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교회가 가지는 저마다의 칼라는 결국 목회자의 성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목회자가 모든 부분에서 완전할 수야 없지만 그래도 교회가 목사의 지배를 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스리는 공동체라고 한다면 더더욱 말씀이 지배하도록 목사는 자신의 성품의 변화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 성품의 변화는 말씀에 깊이 젖어들어서 목사 스스로 말씀의 지배를 받지 않고는 요원한 것 같다. 교회는 결코 목사를 닮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왜냐하면 목사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이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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