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다름이 아니라 같은 교회를 다니는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점이 있어서 상담을 부탁드립니다...저와 친구는 둘다 모태신앙이고 한번씩 탕자(?)의 길을 청소년기에 걸었고 지금은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나름대로 주님의 곁에 다시 돌아와서 저희 모두 구원의 확신도 있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어쨌든 본론은...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같은 지역으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었는데 어제 저녁에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서로 의견이 엊갈리는일이 벌어 졌습니다...^^; 아직 저희 모두 부족하고 어리석은지라... 무슨의견이냐 하면 친구는 모든 세상의 처음과 끝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사람 그리고 지옥에 가는 사람이 태초이전부터 모두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는 사람이 하나님은 안타까우시긴 하지만 모두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가... 가룟 유다,사울왕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한번 듣지 못하고 죽은 우리선조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계획은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 하신 데로 진행되고 있고 천국에 갈사람 지옥에 갈사람도 모두 태초 이전에 계획되어 있었다는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랑 전도사님이 그런 하나님의 말씀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고 얘기 했습니다.
반면 제 의견은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아담과 이브 때부터 자유 의지를 주셨고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을 얻는것 이나 죄 또한 우리의 의지와 자유 선택권으로 결정할 권리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항상 돌아오길 바라고 계시지만 주님께 돌아가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맏기셨다고 얘기했습니다...
저희 모두 말씀이 부족하고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은 질문일지는 모르겠는데 친구가 지금은 사정상 주일에 교회가는 것이 여의치 못하고 언젠간 주님께서 가지신 계획이 있다면 자기를 다시 교회로 부르실꺼라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물과 기름이 서로 합쳐질 수 없는 것처럼 의견의 요지가 해답 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 평행선만 그리고 해결이 안나기에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상담 드립니다... 목사님 말도 안 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으나 꼭 좀 자세한 답변 부탁 드립니다. 물론 말씀도 함께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
안녕하세요 상담전문가 노승수 목사 입니다.... 반갑습니다......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친구분과의 토론은 사실상 하나의 주장인 듯합니다.....
먼저 작정(Decree)의 특징을 정확히 아시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작정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을 계획 하셨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계획에는 인간 타락에 관한 계획도 포함됩니다. 다만 인간이 타락한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기만 한 것이고 인간의 자유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이면서 하나님이 이것을 허용하심으로 이루어진 작정을 허용적 작정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모두 강제적으로 작정하셨다고 하면 하나님이 죄의 궁극적인 조성자가 되며 결국 인간에게 죄의 책임을 물으실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범죄한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이나 그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반대로 인간의 전적 자유의지라고만 말하게 되면 하나님의 전능성을 훼손합니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하나님은 알 수 없고 그 선택에 따라 작정이 달라진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큰 타격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예지(미리 아심)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인간이 행하기 전에 미리 아심의 정도가 아니라 창세전의 미리 아심이기에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전의 미리 아심임으로 인해서 그것의 강력한 영향력은 인간 자유의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은 이해하기도 까다로운 중간지식이라는 것을 설정하는데, 결론적으로 어떻게 말해도 하나님의 작정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로 이 논의는 한가지 혼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월적이며 동시에 우주가 열리기 전에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논의는 결국 우주가 열린 뒤 그 작정의 실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섭리에 관련한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섭리는 통상 하이델베르그 26-27문에 나타난 것처럼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현재까지 "보존"하시는 일 그리고 여전히 우주의 통치자로서 "통치"하시는 일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협력"이라는 사역이 있습니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2절을 살펴보면
제 1 원인되시는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에 따라, 모든 일들이 변함이나 틀림이 없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동일한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은 제 2 원인들의 성질에 따라 그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작정해 두셨다.
두가지 용어가 등장하는데 1원인과 2원인입니다. 1원인은 하나님이시며 이것은 창세전, 즉, 작정에 속한 것입니다. 2원인은 사람 혹은 다른 만물들에 속한 것인데 창세후, 즉, 섭리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상 협력이라고 칭합니다.
작정과 관련하여서 사람들이 하는 통상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미리 다 정해 두셨다면 내가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 받고 버림 받을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버림받는 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정과 섭리를 혼동한데서 온 질문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성경 본문은 사도행전 27장에 나옵니다. 바울의 일행이 로마로 행선하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이때 계시가 임하는데 배에 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이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이 바울 일행을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한 직후 작정한 것일까요? 아니지요? 작정은 어디에 속해 있다구요? 전적으로 초월의 영역에 속했으며 세상의 모든 일은 창세전에 정해졌으며 단지 그 때 바로 계시된 것입니다. 이것을 제 1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7장을 계속 읽다가 보면 바울일행들은 어떻게 행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창세전에 다 정해버렸다면 이들이 가만히 있어도 가 목숨을 건져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 2원인 하나님의 섭리의 사역에 있어서 "협력" 혹은 신적일치(Divine concurrence)라고 합니다. 이 협력의 배후에는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 존재하고 있지요.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섭리와 작정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 입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작정해 두셨다. " 자유롭게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작정하셨다는 점을 주목해서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동양문화권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스토아학파의 운명론이나 동양적 숙명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섭리의 교리는 이런 두 가지 인간 이성의 상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진 교리이며 성경이 명백히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혼동이 있는데 그것은 작정 중 구원에 관한 작정 즉 예정에 대한 혼동입니다. 하나님이 다 미리 정해버리셔서 인간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은 굉장히 무자비한 것처럼 그려지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정의 논지는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미리 아실 뿐 아니라 사람에 관한 작정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사용함으로 타락할 것을 허용하심으로 인간의 타락을 작정하셨고, 그런 후에 인간에 구원에 관한 작정을 하셨습니다. 이 때 혼동이 있는데, 하나님이 덮어놓고 구원받을 자를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를 부르셨습니다. 로마서의 표현대로라면 만물 가운데 신성이 보여서 누구도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양심안에 종교의 씨앗을 두셔서 자연계시를 통해서도 인간 내면의 증거를 통해서도 누구도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도록 그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일반적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이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범죄하였고 그 까닭에 신성이 만물가운데 분명히 보여 알게 되지만 그것을 짐승과 버리지의 형상인 우상으로 바꾸어버렸다고 로마서가 증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효과적으로 부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을 "유효적 부르심" 혹은 "효과적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이 부르심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즉,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백성들, 그 결국은 심판이요 사망인지라 하나님이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그들 중 몇몇을 반드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논지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아무도 대답이 없어서 다 멸망하도록 내버려두면 공평한 것이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몇몇을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구원하시기록 작정하면 불공평한 것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평과 불공평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의로우심이 나타나는 수단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따라서 믿는 듯 하지만 뭐라고 말하냐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엡 2:8,9은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적절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다른 의문 사항이 있으시면 다시 글을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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