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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자료

군상육폐와 영조대왕

영조대왕은 신하들에게 자기 허물을 묻는다. 신하들은 그를 거침없이 말하고 임금도 과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사서삼경을 통해 마음을 닦음으로도 이러했다면 성경에 순복하는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서로 이보다 더한 것도 나눌 수 있어야 하겠으나 들을 줄 아는 이가 없고 그것을 수용할 만한 그릇이 없다. 잠언의 메시지는 이 시대에 참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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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년 12월, 영조가 신하들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이른바 ‘군상육폐(君上六弊)’ 가운데 내가 면치 못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소견을 말하라.”

‘군상육폐’는 당나라의 학자 육지가 덕종에게 말한 임금의 여섯가지 폐해를 말하는 것으로 1. 남을 이기기를 좋아하고(호승인, 好勝人), 2. 허물 듣기를 부끄러워 하고(치문과, 恥聞過), 3. 언변으로 합리화 것이며(빙변급, 騁辯給), 4. 총명을 자랑하는 것이며(현총명, 眩聰明), 5. 위엄으로 겁을 주는 것이며(여위엄, 厲威嚴), 6. 걍퍅한 행위를 제 멋대로 하는 것(자강복, 恣强伏)을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임금의 질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허물을 말해보라는 거다. 눈치를 보거나, 돌려서 말하는 미덕 정도는 보여주는 게 아래 사람의 예의 아니던가. 그런데 신하들, 주저함이 없다. 면박을 주듯 거침없이 내뱉는다.

참찬관(參贊官) 홍경보가 포문을 열었다.

“총명함을 자랑하고, 남을 이기기를 좋아하며, 허물 듣기를 부끄러워하고, 변급이 빠른 것 네 가지가 전하께서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독관(侍讀官) 오원이 냉큼 보탰다.

“가만히 생각하니 강퍅함을 제멋대로 한다는 것 외에 모두 있는 듯합니다.”

검토관(檢討官) 윤득화는 얄밉다.

“신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하들의 까칠한 말에 민망해졌는지 영조의 대답이 변명조로 길어진다.

“나는 아는 것이 적고 배운 것이 많지 않으며 뜻은 크나 재주가 적어 말을 하고 일을 하는 사이에 과연 허다한 병통(病痛)이 있다. 대저 세도(世道)를 개탄하는 마음은 지나치고 사람을 용납하는 도량은 작으니, 남에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통이 있게 된 것이요, 일에 실수가 있으면 문득 깨닫고 마음속으로 후회하니 허물듣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병통이 있는 것이며, 변급에 빠르다는 것은 학문이 부족한 소치요, 총명을 자랑함은 아는 것은 적은데 뜻만 크기 때문이다. 또 위엄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위엄을 부리는 것은 위엄을 사납게 부리는 데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려 한다.

“오직 강퍅함을 제멋대로 한다는 한다는 한 가지는 나에게 실제 없다.”

임금을 앞에 두고도 구부러지지 않은 꼬장꼬장함, 조선 선비가 싫지 않은 이유다.

"영조실록" 36권, 9년 12월 기사 중에서,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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