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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실/문화자료

그림을 통해 본 색의 상징성 1

그림을 통해 본 색의 상징성 1
“우리 시대에 더 이상 흑백 논리나 새빨간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의미 없는 우울(blue)도 푸르른 젊은 날의 특권이지.” “암시장을 통한 검은 거래는 근절되어야 해.” “그 때 붉은 악마들의 열정이 그라운드를 달구었지.” “선의(white)의 거짓말도 경우에 따라 큰 격려가 될 수 있어.”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색의 상징성
이처럼 성격이나 감정, 상황 등을 표현할 때 다양한 색명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색이 지닌 심리적 효과와 상징성의 예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색의 상징성은 지역이나 문화,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례에 관계된 색이 미국에서는 검은 색으로 한국이나 인도의 전통에서는 흰색, 터키에서는 바이올렛, 버마에서는 노란색, 이디오피아에서는 갈색으로 나타납니다. 왕족을 상징하는 색이 중국에서는 노란색, 로마에서는 빨간색이었고 성직자의 의상 또한 인도에서는 노란색,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사용되었습니다. 또 국가의 상징인 국기나 문장 등에 사용된 색들을 살펴보면 색이 나라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국기에 사용된 파랑, 흰색, 빨강색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고 중국 국기에서의 붉은 색은 혁명을, 우리나라의 태극기에서 빨강은 양(陽)을, 파랑은 음(陰)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색의 상징성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수많은 미술작품에 반영되어 왔습니다. 서양 미술사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의상은 십자가에서 고통스런 죽음을 맞은 아들에 대한 비탄과 슬픔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비롯하여, 순결함을 상징하는 흰색이나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12세기 청색 염료의 발달과 더불어 수많은 작품에서 청색 의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청색이 고귀함의 상징적 의미를 얻음으로써 미술작품에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미술에서는 색의 상징성이 과거처럼 보편적으로 적용되기보다 작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새롭게 사용되기도 하고 그 해석 또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사용해온 색의 심리적 효과나 상징성에 관한 관심과 이해는 작품 감상과 창작의 과정에 있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흰색과 검은색 - 대비되는 수많은 상징들
흰색과 검은색, 이 두 무채색은 전통적으로 수많은 상징을 내포해온 색들입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 음과 양, 긍정과 부정, 순결함과 불결함, 가벼움과 무거움 등 세상의 다양한 대립적 의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신고전주의 화파에 속하는 월리엄 부게로의 작품 [일손을 멈춘 여인]은 실을 감는 여인의 작업을 방해하는 ‘사랑의 전령 큐피트’의 속삭임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신화와 현실 세계를 교묘하게 배합하여 불현듯 찾아온 사랑에 가슴 설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인의 의상은 순결함과 우아함의 상징인 눈부신 흰색으로 묘사되어 있고 큐피트의 작은 날개 또한 순수한 천상의 날갯짓을 느낄 수 있는 흰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감지한 듯 일손을 멈춘 여인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상기된 볼은 흰 의상과 어울려 낭만적인 순간의 아름다움을 전해줍니다.
에곤 쉴레의 작품 [은둔자]는 비엔나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배 화가인 클림트에 대한 경외심과 동료애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자신과 이미 고인이 된 클림트를 예술을 통해 교감하는 은둔자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을 치켜뜬 쉴레의 표정과 눈을 감고 기대어 있는 클림트의 표정에서 삶과 즉음이 교차하고 화면을 지배하는 수도복의 검정색은 에곤 쉴레 자신의 예술적 과정에 등장하는 어두운 내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죽은 클림트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던 에곤 쉴레는 같은 해인 1918년 사망함으로써 연이은 두 천재의 죽음이 검은 의상의 색을 통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마치 죽음의 동행을 예견이라도 한 듯 우연치고는 너무도 운명적인 상황이 연출된 이 작품에서 검은색은 더더욱 무거운 예술적 삶의 고통과 어두운 죽음의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순수 절대성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흰 바탕의 중앙에 커다란 검은 원형 하나가 있습니다. 전통적 회화에 익숙한 감상자에게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이 작품은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원]입니다. 과거의 미술은 사실 재현을 기본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세잔느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조형적 시각은 추상미술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말레비치에 이르러 극단적인 형태로 전개됩니다. 말레비치는 화면에서 모든 구체적인 형상을 제거하고 물질세계를 초월한 순수감성의 절대적 우위를 표현했습니다. 표현대상이 없는 순수 정신의 회화, 말레비치는 이러한 자신의 그림을 절대주의(suprematism)라 불렀습니다. 이 절대주의 회화는 몬드리안처럼 자연의 근원적 형태를 모색한 것이 아니며 칸딘스키처럼 자유로운 구성을 통한 미적 유희를 추구한 것과도 구분됩니다. 
모든 구체적 대상이 사라진 화면 속에서 절대적 회화성을 추구한 그의 작품은 사각형이나 원 등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소수의 색에 의해 구성되었고 [흰 바탕에 흰 사각형]이라는 극도로 단순한 표현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화면에서 바탕의 흰색과 사각형의 검은 색은 모든 색을 배제하고 마지막 남겨진 순수 정신적 절대성의 색이며, 미적 대상으로서의 색이 아닌, 어쩌면 유(有)와 무(無)의 중간에 놓여진 정신세계와 통하는 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붉은색 - 생명, 열정, 사랑
검은 소의 두렵고 흥분된 눈빛과 거친 숨소리를 줄기듯 투우사는 붉은 망토를 부드럽고 날렵하게 흔들며 죽음의 게임을 진행합니다. 날카로운 뿔이 투우사의 몸을 겨우 비껴 지날 때 관중은 생사의 흥분에 휩싸여 열광합니다. 소의 검붉은 피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달구어진 땅을 적시고, 붉은 망토는 너울거리며 마지막 죽음의 춤을 연출합니다. 생명을 담보로 진행되는 게임은 이렇게 붉은색의 향연으로 막을 내립니다. 투우에서 황소를 유인하는 붉은 망토는 색을 지각하지 못하는 소와는 관계없이 관중을 자극시켜 흥분을 유발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태초의 색, 삶과 죽음에 연결된 색, 색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빨강은 많은 언어권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핏빛이며 불과 대지의 색이자 결실의 색, 열정과 의지, 권력과 탐욕의 색이기도 합니다. 또 악마적인 자극과 흥분의 색이고 가장 유혹적인 색이기도 합니다. 요하네스 이텐은 “빨간색은 검정을 배경으로 악마적이고 불길한 주황으로부터 감미로운 천사와 같은 분홍에 이르기까지 천국과 지옥의 중간계단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삶 속에 가장 깊이 뿌리내린 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와 혁명의 불길을 상징하는 붉은색
프랑스 삼색기를 치켜들고 흘러내린 옷에도 아랑곳없이 용감하게 전진하는 여인과 발길에 밟히는 병사들의 시체, 자욱한 화약연기와 피 비린내가 진동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투, 어린 소년마저 총을 들고 나서는 급박한 혁명의 현장을 담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자유를 열망하는 프랑스 시민들의 의지를 표현한 서사적 대작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를 부인하고 다시 왕정체제로 복귀하려는 샤를 10세의 7월 칙령에 반대하며 봉기한 시민들이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 7월 혁명의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처참한 전투의 현장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색은 프랑스 국기의 삼색 중 단연 붉은색입니다. 폭정과 억압, 빈곤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찾으려는 시민들의 자유의지와 혁명의 불길을 가장 잘 상징하는 색입니다. 뜨거운 피와 자유를 향한 열정, 혁명의 숭고함을 상징하는 깃발의 붉은색은 화면 속에 등장하는 모든 서사적 표현을 함축하기에 충분합니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관능적이라기보다는 의지에 찬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그녀의 이름을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여자이름인
마리안느
로 칭했고 혁명의 의지에 공감한 작가는 장총을 든 자신의 자화상을 여인의 왼쪽에 배치했습니다. 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소년 가브로슈를 되살려 화면 오른 쪽에 배치함으로써 혁명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일 작가가 프랑스 국기의 삼색 중 붉은 색을 강조하지 않고 흰색을 강조했다면 화면의 내용은 급변하여 전투의 의지가 사리지는 투항의 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청색을 강조했다면 긴장감이 사라져 맥이 빠진 화면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색의 상징성과 심리적 효과는 화면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주제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지된 사랑과 욕망을 나타내는 붉은색과 검은색
금지된 사랑과 욕망을 붉은색과 검은색의 상징성을 통해 드러낸 에곤 쉴레의 [추기경과 수녀]을 살펴봅시다.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은 두 남녀가 껴안고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속삭일 듯 집중하고, 여자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두려운 눈빛과 당황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두 남녀의 손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지 못하고 굳어 있습니다. 뭔가 불안하고 어색해 보이는 이 남녀는 놀랍게도 추기경과 수녀입니다. 세속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직 종교적 교리에 의해 살기를 신 앞에 서약한 사람들. 이들에게 세속적 사랑은 곧 종교적 죄악이며 파문의 벌이 기다리는 악마의 유혹과도 같은 것입니다. 권의를 상징하는 추기경의 붉은 의상은 금욕을 상징하는 검은 수녀복과 대비되면서 음험한 욕망의 상징으로 변하게 됩니다. 흐트러지지 않은 의상을 갖춘 두 사람이지만 발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입니다. 타인에게 맨발을 드러낸다는 것. 그것은 형식을 벗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격한 종교적 신분으로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본능적 욕구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적 금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회화 역사상 드문 예에 속합니다. 에곤 쉴레는 그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에로티시즘을 통해 금기에 도전하는 예술적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추기경과 수녀라는 종교적 상황을 빌어 인간의 불안한 내면에 자리한 고통스런 사랑과 두려운 욕망을 표현한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문학에서 사용된 색의 상징성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에서는 윤리적 타락의 의미를 주홍색으로,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서는 종교와 금욕, 이성을 검은색으로 상징하고 군대와 세속적 욕망의 세계를 붉은색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회화작품 속에서 색은 여러 조형적 요소 중에서도 가장 즉각적이고 강렬하게 감상자의 가슴에 파고들어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심리적 효과와 상징성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연출합니다. 다음 2편에서는 그림 속에 담겨있는 파랑, 노랑, 녹색등의 상징성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글 최화삼 / 화가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목포대, 전남대 등에서 강의했고 3회 개인전과 초대전 및 단체전 40여 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미술협회 회원이며 드로잉그룹 [몸으로 展하다]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드로잉/서양화 교실 '화실사람들 (http://cafe.daum.net/yourart)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