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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본 색의 상징성 2

그림을 통해 본 색의 상징성 2

1편에서는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색채의 의미와 회화작품에 등장하는 흰색, 검정, 붉은색의 상징성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본편에서는 노란색을 중심으로 작품감상을 통해 그 상징적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최고 권력과 부, 권위의 상징 - 황금
현재 영국왕실에서 사용하는 왕관 중 하나인 성(聖)에드워드 왕관은 순금으로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왕관은 대관식 행사에서만 잠시 사용되지만 이렇게 황금으로 제작되었던 세계의 수많은 화려한 왕관들은 실제 착용하기에 부담스러운 무게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왕관의 무게라는 표현에는 권력자에게 주어진 의무나 감내해야할 시련을 암시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실제 황금의 물리적인 무게 또한 적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바퀴가 쉬지 않고 구르는 동안 지배자와 피지배자, 귀족과 평민 등 분리되고 대립되는 모든 계급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체제와 권위의 정당성을 유지하는데 많은 상징물들을 활용해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절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왕관이며 교황관, 건축, 의상, 문장, 훈장, 금화, 장식물, 가구 등등 의식주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화려하며 권위적인 상징물들이 등장해왔습니다. 과거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거나 문맹률이 높은 사회일수록 시각적인 상징물의 의미는 대중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빠르게 전파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상징물의 구성 요소 중 색채는 직감적이고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 활용되었습니다. 지상 최고 권력의 상징물 중 으뜸인 왕관의 색, 노란색은 바로 황금의 색입니다.
절대적 가치, 고귀함과 성스러움의 황금색 - 노랑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황금은 가장 고귀하고 값비싼 금속 중 하나로 부의 척도는 물론 장신구를 비롯한 수많은 공예작품과 권력을 상징하는 상징물의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또 쉬 얻을 수 없는 희소성 때문에 인공적으로 금을 만들어내려 했던 연금술이 고대유럽은 물론 중국과 아랍등지에서 시도되었습니다. 이 연금술은 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물리학을 비롯한 화학, 금속학 등의 과학을 비롯하여 철학과 계몽주의적 사상들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바로 신(神)임을 모르느냐?" 라고 했던 연금술사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유명한 금언은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처럼 무지몽매한 인간을 깨우쳐 지적이거나 영적인 고귀한 존재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계몽주의적 사상을 대변한 것입니다. 또 선분을 1:1.6184의 비례로 분할하는 기하학적 비례는 이상적인 조화와 질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황금비례로 불리어 왔습니다. 경쟁을 거쳐 선발된 최후의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메달도 황금으로 제작하여 가장 높은 수준과 권위의 상징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황제에게 부여되는 절대권위의 상징 색 또한 황금색이었습니다. 황제가 거주하는 궁전의 기와를 비롯하여 실내 장식은 물론 의상과 침구, 사소한 물건 하나에 이르기 까지 황금색인 노랑을 사용했으며 많은 부분에서 황제만이 사용하는 색으로 공인되어 일반인들의 사용을 금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고대로부터 삶의 근원인 태양과 빛을 상징해온 노란색은 중세 종교화에서 선과 천국, 초현실적인 영의 세계, 거룩하고 고귀한 종교적 세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오라치오 젠틀레스키(Orazio Gentleschi, 1563-1639)의 작품 [수태고지]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신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고지를 받는 마리아를 그린 작품입니다. 카라바조의 영향이 보이는 배경의 커다란 붉은 커튼과 마리아의 청색의상은 고귀함을 상징하고 흰 침대는 동정녀의 순결함을 느끼게 합니다. 수태고지를 알리는 천사의 의상 또한 천상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금색이 사용되었습니다. 우측 상단의 허공에는 예수의 탄생과 신약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듯 성령의 비둘기가 성스러운 순간의 종교적 신비함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귀족적인 분위기의 실내와 의상은 마리아의 고결함과 종교적 권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위한 중세 종교화의 수태고지 구성패턴 중 하나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삼촌의 화실에서 수업을 받고 거의 40세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라치오 젠틀레스키는 제노아에서 루벤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카라바조와의 우정을 쌓으며 화풍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의 작품들은 정교하고 우아하며 감성적인 표현이 돋보이는데 후일 파리 생활을 거치고 런던의 왕실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수가 많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7세기 초 뛰어난 종교화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리스 태생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화가 엘 그레코(El Greco,1541~1614)의 작품 [삼위일체]는 십자가형을 받아 숨을 거둔 예수의 승천을 표현한 것입니다. 황금빛 하늘엔 성령의 흰 비둘기가 날고 긴 수염의 성부의 품에는 모멸과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해진 얼굴의 예수가 안겨있습니다. 천사들에 의해 천상의 세계로 인도되는 예수의 몸은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처럼 입체감이 두드러진 이상적인 남성의 육체를 빌어 표현되었지만 'S'자 형태로 다소 뒤틀린 듯 늘어진 자세는 매우 사실적이어서 한층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게 되고 또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이 작품은 높이가 3미터인 대작으로 화면 맨 위 천상을 상징하는 하늘은 고귀한 황금색인 노란색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또 성부의 의상에도 성스러움과 신적 권위의 상징으로 노란색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란색들은 천사들의 의상 중 청색과 부분적인 보색대비의 관계를 이루며 더욱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관능적 사랑과 위험한 유혹, 욕망의 색 - 노랑
초록, 노랑, 보라, 자주색 꽃들이 아름다운 곳에서 남녀가 껴안고 있습니다. 무릎을 굻은 여인은 온갖 화려한 꽃문양으로 장식된 황금색 의상을 입고 실루엣을 통해 몸의 곡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남자의 의상 또한 기하학적인 무늬의 화려한 황금색입니다. 성스런 의식을 위해 아름답게 단장 하듯 두 사람의 머리는 모두 꽃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남자의 몸은 극히 일부만이 드러나 있지만 부드러운 여인의 몸과 대조적으로 매우 강한 남성성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남자의 두 손은 강하게 여인의 머리를 끌어안고 그의 입술은 두 눈을 감고 사랑의 몽환에 빠진 여인의 상기된 볼에 닿아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본능적 사랑의 순간, 남자의 뒷목에서 펴지도 쥐지도 못하는 여인의 오른손은 신비로운 관능의 세계에 접근하는 두려움과 기대를 복합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하나의 존재로 이어주는 황금색 의상은 연인들만이 세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소유하고 점유할 수 있는 고귀한 사랑의 가치이자 아름답고 화려한 영역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완전해 보이는 황금빛 사랑이라도 경계할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요? 지면의 화려한 꽃밭은 충분히 넓고 안전한 평지가 아닙니다. 여자의 발끝부분은 아래로 비탈져있어 자칫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움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남녀의 사랑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수없이 많은 불안하고 위험한 요소들, 그 비탈의 끝에서의 이루어지는 본능적이고 화려한 사랑, 그래서 클림트의 [키스]는 황금빛으로 인해 더욱 신비하고 화려하며 관능적인 세기말적 에로티시즘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클림트의 또다른 그림 [다나에]에는 신화가 담겨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중의 신으로 하늘을 지배하는 제우스는 여성편력이 화려한 바람둥이였습니다. 그는 부인 헤라의 눈을 피하고 여성들에게 쉽게 유혹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는데 황소나 먹구름은 물론 심지어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백조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외도를 일삼았습니다. 여기서 제우스가 황금의 비로 변신하여 또 다른 여성을 유혹하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스의 왕 아크리스오스에게는 다나에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그는 무서운 신탁을 받게 됩니다. 신탁은 장차 자신의 딸인 다나에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며 바로 그 아들인 자신의 손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비극적인 내용 이었습니다. 그는 믿기 어려운 신탁에 번민하다 딸 다나에가 결혼을 하지 못하면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청동탑을 만들어 급기야 그녀를 탑에 가두고 세상의 그 어떤 남자도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격리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의 입과 귀를 막을 수는 없는 법, 이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탑에 갇힌 딸 다나에는 한층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소문은 마침내 바람둥이 제우스의 귀에 닿았고 역시나 바람기가 발동한 제우스는 황금의 비로 변신해 청동 탑의 다나에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제우스는 다나에를 유혹하게 되고 다나에는 결국 페르세우스라는 사내아이를 낳게 됩니다. 손자의 탄생을 알게 된 아크리스오스 왕은 차마 직접 자신의 손으로 손자를 죽이지 못하고 딸과 손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지게 합니다. 그러나 신탁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 후일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신탁의 내용대로 장성한 손자의 원반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됩니다. 
클림트는 1907년 이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에와 황금의 비를 테마로 [다나에]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화의 내용과 화면은 얼핏 부조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가혹한 신탁의 운명에 내몰려 청동 탑에 갇히고 자신이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가 죽게 되는 비극적 상황에 번민하는 청순한 여인으로서의 다나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슴과 허벅지를 드러내고 황금비로 변신해 유혹하는 제우스를 맞아 깊은 관능의 쾌락적 세계를 탐닉하는 도발적인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우스가 변신한 황금비의 노랑은 성적 욕망과 권력의 상징입니다. 노골적인 성적 상징들로 인해 외설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클림트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고 관통하는 가장 강한 인간 본능인 에로티시즘과 치명적 매력의 팜므 파탈적 이미지를 다나에를 빌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몇몇 작품들을 예로 들어 화면 속에 보이는 노란색의 의미와 상징성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고명도 태생의 노랑은 명시성이 높고 따뜻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속성으로 인해 노랑은 수많은 회회작품에서 긍정적인 의미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긴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처럼 밝고 따뜻한 색 노랑은 새로움과 지혜, 이성과 진실을 향한 가장 밝은 빛의 색이기도 합니다. 미술 이론가 요하네스 이텐의 노랑에 관한 정의를 음미하며 본편을 마무리합니다. 다음3편에서는 파랑의 상징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노랑색은 여러 가지 색상 중에서 무엇보다 환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빛을 비추어 본다 라는 것은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사실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 요하네스 이텐
글 최화삼 / 화가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목포대, 전남대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