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감사의 원천
노승수 목사
기독교하면 주된 가르침 중에 한 가지가 감사에 관한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이 감사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기독교적이 되기도 하고 비기독교적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감사라는 것은 사실 꼭 신앙이 아니더라도 삶에 있어서 유익이 많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마음가짐의 한가지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모르는 이더라도 감사에 관한 여러가지 명제들을 들으며 실천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하기도 한다. 감사를 하려면 우선 긍정적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근데 그것이 일반적인 부분에서는 합당한 일이지만 신앙의 영역에 들어오면 약간 넌센스가 되어 버린다. 며칠 전 무한도전이란 모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노홍철을 필두로<긍정의 힘>에 대한 유쾌한 유머를 만들어 냈지만 그 양식은 종교적 양식을 빌어 왔다. 예컨대,<긍정 복음>몇장 몇절 하는 식의 자막은 종교적 긍정 곧 감사에 대한 일종의 풍자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시중에 줄 곧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조엘 오스틴 목사의<긍정의 힘>이다. 이 책은 신자나 불신자를 무론 하고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책이다. 이것은 불신자들이 읽기에 전혀 꺼리낄만한 것이 없는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해서 나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긍정에 있지 않고 부정에 있다.<자기 부인>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십자가>로 상징되는 기독교적 진리의 윤리적 실천은 자아에 대한 죽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자기 부인>과 긍정을 의미하는<감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기독교적 감사의 원천은 자기 긍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참한 자기 현실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자신의 죄로 인한 전적인 부패와 의를 행하기에 철저히 무능력한 자신에게서 오는 절망이 사실 기독교적 감사의 원천이다. 무엇인가를 받을 자격도 공로도 전혀 없는 존재라는 자기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잔뜩 배가 부른 사람에게 빵 한조각은 감사의 조건이 아니라 귀찮은 일일 뿐이지만 한 달을 굶주린 사람에게 빵 한 조각은 생명을 가름하는 감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적 감사와 긍정은 그런 점에서 자기 긍정이 아니라 자기 부정에서, 감사의 원천은 자신이 아니라 이런 죄 많은 인생을 아무 공로나 댓가 없이 건져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적 감사는<긍정의 힘>이 말하는 그런 종류의 일종의<자기 암시>내지<적극적 삶의 태도>와 같은 형태의 감사가 아니라<인식론적 감사>이다. 자신의 부패와 무능력에 대한 깊은 자기 인식, 죄의식과 죄책감에 고통받는 영혼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인식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를 건져주시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 아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는 아버지의 긍휼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오는 감사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적 감사는 자꾸 의식적으로 감사를 하려는 적극적 삶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자기 절망과 그 절망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일하심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부터 나오는 감사이다.
자신에 대해서 견딜 수 없는 심적 상태가 된 것이다. 죽을 것 같음으로 인해 죄로 인해 돌이키는 애씀이 나타나고 하나님을 향한 애씀이 나타난다. 그 과정 중에 마딱드린 그리스도와 그 복음은 한없는 영광과 감사 그 자체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신자는 감사하기 위해서 애쓰기 보다 말씀 가운데 자기를 발견하기를 애써야 하며 자기를 발견한 후에 그 절망의 구렁텅이로부터 나를 건지신 주님을 만나기를 애씀으로부터 나오는 일종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블로그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의 지배 (0) | 2018.03.03 |
---|---|
마음을 가꾸는 긍정의 정원사 (0) | 2018.03.03 |
구원을 맛보는 삶 (0) | 2018.03.03 |
자유는 선택입니다. (0) | 2018.03.03 |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 (0) | 2018.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