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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강단

네 부모를 공경하라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우리 나라는 복음이 들어오기 전부터 부모 공경을 각별히 했던 나라다. 고려사에는 "부모가 죽었는데 잡된 놀이를 하는 자는 징역 1년, 상이 끝나기 전에 상복을 벗는 자는 징역 3년, 초상을 치르지 않는 자는 귀양을 보낸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죽은 후에 그 예를 다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모 공경은 아니지만 부모에 대한 존경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기록과는 달리 산 부모를 산에 갔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고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이 고려장 풍습에 관한 기록은 1882년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 Griffis) 목사가 서술한 Corea: The Hermit Nation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에 의하면 "이전까지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유행하여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풍속이 한국에 성행하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그는 일본 정부의 초빙으로 도쿄대학의 전신인 다이가쿠 난코(大學南校)에서 화학, 생리학, 비교 문헌학(comparative philology), 도덕과학(moral science)” 등을 가르쳤으며(안종철, “윌리엄 그리피스(Wiliam E. Grifis)의 일본과 한국인식(1876-1910)”, 445.) 아펜젤러의 전기 <A Modern Pioneer in Korea; The Life Story of Henry G. Appenzeller>(1912)를 쓰기도 했다. 1874년 귀국하여 뉴욕 유니언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당시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채 이 책을 썼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방문은 1927년에 이루어졌는데(안종철, “윌리엄 그리피스(Wiliam E. Grifis)의 일본과 한국인식(1876-1910)”, 446.) 이는 26년에 이뤄진 훈장 수여를 위한 일본 방문과 관련이 있다. 그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일본의 시선에 의한 한국 역사의 이해는 편향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의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고대ㆍ중세사, 제2부는 정치와 사회, 제3부는 근대ㆍ현대사이다. 이런 대목에서 목회자의 태도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자료가 일본이 내주는 자료에 편향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부산이 고대부터 대마도주의 영지라고 주장에서도 알 수 있고 그가 책에 삽입된 삽화들을 보면 일본이 제공하는 자료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피스가 그린 조선인의 모습
그리피스가 그린 16세기 조선의 식탁 
그리피스가 그린 16세기 조선의 무사

 

더 기가막힌 것은 그는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선이라는 글자를 곱다. 빛나다는 의미의 선(鮮)에서 고요할 선(禪)으로 바꾸어 지금도 쓰이고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이라고 묘사했는데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일본을 묘사하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The land of the rising sun)와 대비를 시킨 식민지 전략 중 하나다. 웃긴 건 대한민국의 국적기가 이 이미지를 여전히 차용해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때는 조선과 미국 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직후라 조선에 대한 관심이 미국 내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시기이기도 했는데(안종철, “윌리엄 그리피스(Wiliam E. Grifis)의 일본과 한국인식(1876-1910)”, 445.), 이 책은 상당한 정도의 편견을 부추겼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친일적 성향은 여미국의 대학들을 순회하면서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해 강연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1907년과 1926년에 훈장을 수여받는데서도 확인이 된다.

그의 이런 왜곡을 그대로 조선 통치에 적용한 조선 총독부는 당시 조선이 부모 공경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대로 된 윤리를 갖추지 못한 나라라는 식의 교육을 상당히 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9년 미와 타마키가 쓴 "전설의 조선"에 우리가 어려서 들었던 유명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늙은 제 아비를 산에 갔다 버리고 내려오던 아비가 지게가 필요 없으니 그것도 버리라고 하자 "나중에 아버지도 늙으면 필요할텐데요"라는 말에 뉘우치고 아비를 다시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동화집"에 '부모를 버린 사내'로 다시 등장하고 1926년 나카무라 료헤이가 정리한 "조선동화집"에도 거듭 실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원래 중국 "효자전"의 '원곡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의 전래 동화나 전설과 전혀 관련이 없다.

조선은 알다시피 유자들의 나라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도 천륜이라 하여 부모자식간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조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종묘사직은 지금도 광화문 좌우편에 그 유적이 남아 있어서 종묘는 조상신을 가리키고 사직은 토지신을 가리킨다. 조선은 사람을 유기적으로 이해했는데 영혼을 의미하는 혼백을 가리켜 사용하는 표현 중에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표현이 있는 혼은 나르고 백은 흩어진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21)는 표현이다. 하늘에 오른 조상의 혼과 땅에 흩어진 조상의 백을 신으로 믿었던 나라가 조선이다. 유교를 500년을 가르친 나라에서 부모를 내다버리는 것이 전설로 있었거나 혹은 그것이 풍습으로 존재했을리 만무하다. 오히려 그리피스가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유행하여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일본에 흔하게 있던 풍습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죽어서 효자"라는 말이 있다. 살아 생전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않다가 부모가 죽고 나자 "제사"를 모시며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을 두고 한 표현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유비하는 것이고 보이는 부모에게도 공경을 나타내지 않는 망령된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리 만무하기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일종의 보이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성경은 부부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유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1-33)" 그리고 이 말씀에 이어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상전을 잘 순종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6)라고 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고 이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은 연습이며 훈련이다. 그중 가장 중심에 놓인 훈련이며 윤리가 바로 부모공경이다. 그래서 이 계명을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하는 계명이며 십계명의 구조상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와 안식 안으로 들어가는 첫 계명이 이 부모 공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랑이 첫 번째로 놓인 사람은 살아계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참부모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