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노승수 목사
십계명의 제 오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라고 말한다. 사실 이 말씀은 동서고금의 진리로 불신자라 하더라도 쉬이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이 참으로 많이도 변해서 요즘 버스를 타보면, 부모 뻘 되시는 어르신이 타더라도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는 중고등학생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학교 교육에서도 충과 효의 교육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현대판 고려장이 등장해서 부모님과 해외나 제주 여행을 가서 거기서 버리고 오는 일도 심심치 않게 뉴스와 저자거리에 회자된다. 성경은 분명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장수하고 복을 누릴 것이라고 증언한다(신 5:16). 놀랍게도 현대 발달 심리학이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0-3세의 시기는 흔히 '동일시'의 과업을 가지고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서적 특징을 보인다. 이 때 형성되는 것이 '정체성'이다.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는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내 탓 같은 자책하는 사람'으로 느끼는지가 이 시기에 부모와의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이 된다.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분리를 경험한 아이는 아직 이성적이며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고 아이의 사고는 환상과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으며, 이런 아동은 자신의 환상을 이용해서 엄마와 자신이 하나라는 '동일시'의 감정을 발달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직 약하지만 자아가 발달하고 자아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느낌, 감정, 등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발달 심리학은 이 정체성 발달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이 분류와 이들이 향후 어떤 사람을 사는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첫째는 부모가 양육을 통해서 심어준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체감 유실형(identity forecloser)이다. 이 유형은 부모님의 말씀에 너무나도 잘 순종하여서 부모님의 가치관을 그대로 닮은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이 확고하고 고민이나 갈등을 적게 하고 주어진 길을 열심히 간다. 성실한 가장, 참한 주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부모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확실히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정체감 확산형(identity diffused)이다. 부모님의 기대대로 가기엔 뭔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제 길을 갈 용기도 없다. 이 아이들은 외형적으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도 하고 시험 준비도 하지만 내면에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꿈과 현실의 이율배반을 간진한 채로, 현실에 적응한다. 부모님 뜻대로만 따르기엔 생각이 복잡한 지식인들이 이 유형이다. 샛째는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길 거부하고 반항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에 어떤 결정하진 않겠다고 주장하는 정체감 유예형(identity moratorium) 이다. 이 아이들은 선택을 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탐색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학연수로, 부전공으로 이수로, 휴학을 하고 취직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탐색을 한다. 이것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는 선택을 그저 미루는 경우로 나타나기도 한다. 넷째는 부모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자신의 삶의 목표와 정체성을 찾아낸 아이들로 정체감 성취형(identity achieved)이다. 독자적이면서도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유형에 끌리는가? 어떤 유형이 매력적으로 보이는가?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네번째의 정체감 성취형의 아이들이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할 것이다. 그럼 질문을 조금 바꾸어보자 어떤 유형의 아이들이 행복할까? 연구에 의하면 정체감 성취형 중에는 크게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세상과 끊임없이 전투를 했기에 많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우울증이나 약물중독, 심지어 자살한 경우도 다수가 있었다. 가장 무난하게 잘 사는 유형은 정체감 유실이었고 그 다음이 정체감 확산이었다. 이는 부모님 말씀에 잘 순종하고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즉, 성경이 증거하는 부모를 공경하는 삶이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과학적 연구가 증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그럼 도대체 어떤 변인이 정체감의 4가지 유형이 생기도록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가 타고는 기질의 문제인가? 아니면 부모의 양육태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원인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기질에 관한 비교적 과학적 연구는 1977년 New York에서 시행한 Chess, Thomas와 Brich의 연구이다. 141명의 영아를 아동기까지 관찰하고 부모와 교사를 통해 면접을 하고 여러가지 객관적 검사의 지표들을 사용해서 9가지 기질의 구성요인을 규명했다. 활동성, 규칙성, 접근/회피성, 적응성, 반응강도, 반응역차, 기분, 주의산만성, 주의력의 요소를 가지고 다시 세가지 유형의 기질을 설명했다. 까다로운 아이, 쉬운 아이, 반응이 느린 아이가 그것이다. 아이의 이러한 각기 다른 기질은 부모의 양육태도와 맞물려서 아이의 성격과 장래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기질에 관한 연구와 이런 발달상에 보이는 정체성 발달의 유형에 관한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아직 없다.
그리고 나의 직관이 이끄는 곳은 이것이 기질의 문제라기 보다 부모의 양육태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위의 네가지 유형의 차이가 생기도록 하는 한 가지 중요한 내적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반발심' 곧 '적개심'의 정도이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권면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들에게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라고 권면한다. 성경은 왜 자녀들의 노여움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 최근까지의 심리학적 성과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원형적인 욕망과 감정은 의존해서 사랑을 받으려는 '의존심'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생기는 미움 즉, '적개심'이다. 적개심은 위에서 설명한 동일시와 상반이 되는 감정이다. 그러면 이것을 은폐할 목적으로 '수치심' 이나 '열등감' '자책감' 등을 발달시키게 된다. 이런 감정이 있어야만 적개심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감정들은 단순히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증상이며 동시에 인격의 일부가 된다. 위의 정체성의 유형들은 각기 이 적개심의 정도 혹은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의해서 구분이 된다. 영어에서 '동일시'와 '정체성'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 약한 자아가 별어려움 없이 정체성을 형성하고 동일시를 할 수 있으려면 부모의 양육태도가 공감적이며 정서적 필요를 적절히 채워주는 것이어야한다.
부모의 양육태도를 크게 3가지로 유형화 해볼 수 있다. 지나친 간섭, 사랑의 관심, 무관심한 방임, 지나친 간섭은 아이로 하여금 적개심을 내면화하게 하고 자책과 우울, 수치의 감정을 발달시킨다. 무관심과 방임은 아이는 적절하게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는 법을 어려서 배우지 못하게 함으로 자연적 형태의 공격성이 그대로 사회성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랑의 관심이 가장 원만한 양육태도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와 자신의 가치의 충돌을 거의 겪지 않는다. 위의 둘째 유형은 전형적 간섭 형태의 양육을 받은 것이며, 셋째는 간섭과 방임이 어느 정도 섞인 형태일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이 4가지 유형은 적개심의 정도로 구분지을 수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진리를 지키는 아이들은 건강한 부모의 건강한 양육으로부터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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