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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높임말과 주체성

손위 처남도 동서도 사실은 어법상 처남이나 동서라 부르는 게 맞습니다 . 손위라고 나보다 나이가 항상 많은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면대면해서 그렇게 부르면 조금 결례같은 느낌이 있죠. 나이 많은 손아래 동서가 손위 동서를 면대면해서 '형님'이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죠.

게다가 이게 존칭 인플레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시모께 말씀드리면서 손위 동서를 뭐라 칭해야 할까요? '형님'이 어쩌구저쩌구 하죠. 드라마에서도 흔히 보는 워딩입니다. 근데 여기서 바른 어법은 '동서가 어쩌구 저쩌구'가 맞습니다.

이런 현상은 편만하게 퍼지게 되었는데요. 매장에 가면 '커피 나오셨습니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젠 사물에까지 존칭이 확대된 것입니다. 이런 호칭에는 '사장님'도 있고 '선생님'도 있습니다. 원래 '선생님'은 조선에서는 퇴계나 남명 정도되어야 불리는 호칭입니다. 조선을 통털어 10명이 안 됩니다. 그에 비해 교수는 조선시대에서는 종6품 벼슬이었습니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주부 나으리'가 교수의 직급이죠. 요즘으로 치면 5급 사무관급이죠.

우리말 존칭 어법은 대개 어려운 편입니다. 면대면 어법,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법, 3자에게 지칭할 때 어법이 다 다르죠. 예컨대, 목사 자신이 자기 아내를 일컬어 "우리 사모가"라고 하는 것도 적절한 어법이 아닙니다. 사모는 3자가 높혀 부르는 말이고 목사는 자신의 아내를 일컬을 때, "아내가 어쩌구 저쩌구"라고 말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의 통상 어법이니 "내 아내가" "제 아내가"도 좋습니다만 우리말 어법을 따라 "우리 아내가"라고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 존칭 어법은 자기가 주체로서 확실한 자기 자리를 가지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운 화법입니다. 이 말은 뒤집으면 우리 민족은 매우 주체적 문화에서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씨족과 혈연이 공동체로 묶인 문화 속에서 관계로 서로 규정되기 때문이죠. 이게 주체적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어법입니다. 그래서 존칭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커피 나오셨어요" 같은 것 말이죠.

최근 어느 분 담벼락을 보다가 "씨"라는 존칭을 사용한 것으로 옥신각신하던데, "씨"는 원래 가문을 높혀 부르는 존칭입니다. 노회에서도 목사를 호명할 때, '목사님'이라고 호칭하지 않고 '아무개 씨'라고 호칭합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이 호명이 공식적 자리에서의 호명이기 때문에 개인적 관계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서 그럴 때 쓰는 적절한 '씨'라는 존칭을 사용한 것이지 노회가 목사를 낮잡아 부르는 것이 아니겠죠. 당연히, 그리고 이런 호칭의 사용은 목사 및 장로 회원의 평등성을 강조하는 장로교회의 법에도 맞습니다.

물론 씨를 면대면해서 자신보다 손위 사람을 호칭하는 일은 낯선 일이죠. 그러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 소통하는 공간에서는 얼마든 가능한 어법입니다. 손위 동서나 처남을 3자에게 말할 때 '우리 형님이'라고 말하기보다 '우리 동서가'가 적절한 어법이듯이 타인에게 3자를 일컬을 때 적합한 호칭이 '씨'입니다. 물론 상대를 높혀준다는 의미에서 그의 직책을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 직책을 부르는 일은 조선시대에도 잘 없던 일입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면 자주 등장하는 대감, 영감, 그리고 나으리가 직책 대신 부르던 존칭이죠 6급 이하는 '나으리' 5급 이상을 '영감'이라 불렀고 지금도 관가에 가면 5급 이상을 '영감님'이라고 부릅니다. 정2품 판서까지를 '대감'이라 불렀습니다. 오늘로 치면 장관 이상일텐데 그 분들이 이 호칭을 현재도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법이나 호칭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법입니다. 오늘날 씨는 보통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호칭할 때 쓰지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직접 호칭할 때는 쓰지 않습니다. 다만 3자에게 호칭할 때 보편적 존칭으로 여전히 씨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전에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이런 걸로 힘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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