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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정치와 성도의 태도

원래 선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이소라의 노래 가사 중에서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고 했듯이 내가 보는 견해나 식견은 내가 선 자리를 기초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견해를 절대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영적 상승의 힘이 크기 때문에 이런 개인적 자리들에 곧잘 도그마의 옷을 입히게 됩니다. 진보든지 보수든지 그 스탠스가 어떤 것이든지 세상에 사람은 많고 많은 사람은 십인십색을 가진 법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다" 이게 제가 핵심감정 공동체에서 말하는 주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공동체라고 선언하는 것은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한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진보나 보수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만큼 크겠습니까? 서로 다른 자리에 서서 다른 것이 보이더라도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서로 하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됨이 뭘로 깨지냐면 내가 선 자리와 내 시선을 절대적인 교리의 자리에 올려 놓기 때문이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 공부도 우리가 "귀납적 성경연구"를 하듯이 삶의 태도도 보편적 원리로부터 개별적 사안으로 내려가는데 익숙하다 보니 이 상승의 힘으로 개별적 사안들을 보면 제대로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가 우리 삶에서 매일 만나는 삶의 충돌들과 갈등들을 간직한 채로 이것을 서둘러 보편으로 덧입혀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의 도둑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자기 기준에 다 잘라내기를 시도하게 되니 현실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에포케(epoché, εποχη), 곧 판단중지를 하고 현실의 사안들의 개별적 데이타를 집적하고 그것으로부터 보편의 이해를 확보하고 그중 보편적이며 신학적 원리로 적용가능한 것들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어도 우리의 사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드높이며 믿음 안에서 하나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위치나 사회적 위치를 도그마화하게 되면 신앙은 거기에 갇히게 되고 그 순간부터 우상숭배로 전락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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