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승수의 성경해석과 주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3절의 해석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3절의 해석

노승수 목사

NKR  1 Thessalonians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SNK  1 Thessalonians 5:12 [마지막 권고와 인사] ○a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며,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a 그, '형제들') 13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YLT  1 Thessalonians 5:12 And we ask you, brethren, to know those labouring among you, and leading you in the  Lord, and admonishing you, 13 and to esteem them very abundantly in love, because of their work; be at peace among yourselves;

ESV  1 Thessalonians 5:12 We ask you, brothers, ato respect those who labor among you and bare over you in the Lord and admonish you, 13 and to esteem them very highly in love because of their work. Be at peace among yourselves.

NIV  1 Thessalonians 5:12 Now we ask you, brothers and sisters, to acknowledge those who work hard among you, who care for you in the Lord and who admonish you. 13 Hold them in the highest regard in love because of their work. Live in peace with each other.

KJV  1 Thessalonians 5:12 And we beseech you, brethren, to know them which labour among you, and are over you in the Lord, and admonish you; 13 And to esteem them very highly in love for their work's sake. And be at peace among yourselves.

NAS  1 Thessalonians 5:12 But we request of you, brethren, that you appreciate those who diligently labor among you, and chave charge over you in the Lord and give you instruction, 13 and that you esteem them very highly in love because of their work. Live in peace with one another.
해설 : 사역자들을 향한 성도들의 의무. 

사역자와 회중들 사이에는 상호의 의무가 있다. 만약 사역자들이 회중들 가운데서 마땅히 수고해야 한다면,

(1) 그들은 자기의 사역자들을 알아야만 한다. 목자가 자기 양떼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양떼들도 자기의 목자를 알아야만 한다. 그들은 그의 인품을 알고 그의 말을 청종하고 그를 그들의 존중하며 그의 가르침과 다스림과 권계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2) 그들은 그들의 사역자들을 사랑 안에서 높이 존경해야만 한다. 그들은 목사직을 귀중히 여기고 사역자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적절한 방법으로 그들의 존경과 애정을 표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수고에 대한 마땅한 일이다. 왜냐하면 목자들의 임무는 그리스도의 영광된 인간의 영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실한 사역자들을 경홀히 여기지 않아야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은 그들의 수고로 인하여 높이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일로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목회 때문에 모욕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의 타인들이 자기들을 영예롭게 여기라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신실하고 근면한 사역자들에게는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 

노승수 목사의 해석

그렇습니다. 잘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할 자로 여겨야 합니다(딤전 5:17) 이는 목회의 핵심이 성경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잘 풀어 가르치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성도는 선포된 말씀이 그러한가 잘 상고하고(행 17:11)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살전 2:13). 

교회의 참된 표지 곧 말씀과 성례의 바른 시행과 그 임무를 맡은 직원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지요. 만약 교역자가 바른 진리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 때도 존경해야 하는가? 그 때는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처럼 이런 자를 교회에서 분별하여서 내어 쫓아야 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 2:2) 

그러나 그게 진리에 관한 것이 아니고 앞서 다른 곳에서도 몇 차례 언급된 것처럼 잘 가르치고 성품도 훌륭한 경우 말할 것도 없이 존경할 것이로되 잘 가르치나 성품이 나쁜 경우도, 가르침이 미숙하되 성품이 훌륭한 경우도 교회의 덕을 위해서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은 그 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용서가 마치 타인을 위하지 않고 나를 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용서치 못한 마음은 상대가 죽기를 바라면서 내가 독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따라서 선뜻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가르침을 수납하는 것이 나의 영혼을 위해서 유익합니다. 

왜냐면 존경이란 심지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때, 우리를 존중히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삼상2:30). 더 직접적으로 번역하자면, 존경(honor)하겠다고 하십니다. 존중과 존경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 품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것을 받을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황금율처럼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고, 이는 성도가 가지는 마땅한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마 7:12). 물론 그 반대인 목회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렇게 존경하는 것은 그가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존경하는 사람의 품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베푸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고교시절을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선생님 과목은 열심히 하고 싫어하는 선생님 과목은 게을리 하지요. 고교 과정을 그럴 수 있다지만, 우리 영혼을 위해 깨어 경성하는 자들이 밉고 존경스럽게 보이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을 때, 학생에게 손해이 듯이 교역자와 안좋은 관계는 결국 성도가 영혼의 꼴을 먹는데 장애를 유발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도 할 수 있는대로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 

질문 : 원어에서도 가장이라고 되어 있나요? 극진이라는 말과가장이라는 말은 차이가 있어서요. 그리고 중대형교회에서는 교육전도사를 비롯 사역자가 엄청많은데 다 포함되는건가요? 그리고 일반성도도 가르치는사역을 하면 사역자에 포함되는건가요? 

노승수 목사의 해석

원어에 사용된<휴페렉페리쏘>는 신약에서 세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 엡 3:20에서<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에서 더 넘치도록 곧 풍성하게(abundantly) 라는 의미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2. 살전 3:10에서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에서 <심히>라는 의미 곧 진지하게(most earnestly) 라는 의미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3. 살전 5:13에서 개역개정역은 가장 귀히(very high) 로 표준새번역은 극진히(highest regard in love)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문맥의 의미상 '가장 귀히' 나 '극진히'로  번역 할 수 있습니다. 

12-13절은 교회의 일꾼에 대한 자세를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구문상으로 우선<우리가 구한다>에 사용된 두 동사가 모두 부정사형태입니다. 이는 교회에 일꾼에 대해 가져야 할 전반적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세 가지 요구 사항이 드러납니다. 

첫째 요구 사항은 교회에 일꾼에 대해 알아야 한다(12절)는 내용인데, 세 가지를 분사형태로 제시합니다. 수고하며, 다스리며, 훈계하는 자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정관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음으로 세가지 활동을 하는 한 그룹의 일꾼을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BGT  1 Thessalonians 5:12 Ἐρωτῶμεν 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εἰδέναι τοὺς κοπιῶντας ἐν ὑμῖν καὶ προϊσταμένους ὑμῶν ἐν κυρίῳ καὶ νουθετοῦντας ὑμᾶς (1Th 5:12 BGT)

둘째 요구사항은 13절 상반절의 <교회의 일꾼을 가장 귀히 여길 것>에 대한 권면입니다. 앞서도 이 단어의 세 가지 의미를 말씀드렸지만, 3:10에서 사용된 심히 라든지 엡 3:20에서 사용된 더 넘치도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단어의 구체적 뉘앙스는<도에 지나치도록>이라는 의미입니다.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들이 이렇게 귀히 여김을 받는 근거는 <그들의 사역>을 까닭으로 하는 것입니다. 
BGT  1 Thessalonians 5:13 καὶ ἡγεῖσθαι αὐτοὺς ὑπερεκπερισσοῦ ἐν ἀγάπῃ διὰ τὸ ἔργον αὐτῶν. εἰρηνεύετε ἐν ἑαυτοῖς. (1Th 5:13 BGT)


세번째, 요구는 13절 하반절에 나타난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것은 사본상 크게 두 가지 읽기가 있습니다.<서로>로 읽을 수도 있지만 본문 비평에 따라<그들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들은<교회의 일꾼>들을 가리킵니다. 교역자와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서로>라는 의미를 취하면 해석이 달라집니다. 즉, 교회의 일꾼을 존중이 여기는 것이 곧 성도들 사이의 화목과 직결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교회의 분쟁은 교역자회 곧 당회의 치리권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생기지요. 그런 의미에서 서로란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첫째, 가장이냐 극진이냐는 질문에 해답은 <극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역자를 어디까지 포함하느냐?는 안수하여 세운 교회의 공식적 말씀사역자 곧 오늘날로 말하자면 목사를 가리키는 것으로<적용>가능합니다. 아시는대로 전도사나 강도사는<준비하는 직원>이고 아직 교회의 직원은 아니지요. 이들은 당회의 치리 아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