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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마음에 무언가 남는다는 것...

마음에 무언가 남는다는 것...


노승수 목사


사람의 뇌의 기전을 보면, REM 수면을 통해서, 낮 동안 있었던 일들을 수면 중에, 꿈으로 처리를 한다. 그래서 사람에서 이 꿈을 꾸는 REM 수면을 박탈을 하게 되면, 환청과 환시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에서 처리를 못하니 그게 낮 동안 재현되는 것이다.<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는 사람들이 낮동안 자신의 과거의 경험이 재현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뇌의 기전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할 수 없을 만큼 크거나 혹은 적더라도 우리의 영혼이 이것을 감당할만큼 건강하지 못할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신적 영적 건강의 지표는 결국 우리 마음에 관계를 왜곡시킬만한 무엇인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남겨진 마음은 우리 안에서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무한반복된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반복된다. 이런 것이 많을수록 마음은 산란해지고 어떤 일을 의미있게 경험하기도 힘들어진다. 사람에 마음에 이런 것들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이런 일들이 줄어드는 것이 영적이며 정신적 건강의 핵심이다. 지금 이 순간과 이 장소의 숨과 결을 온전히 느끼고 그 안에서 온전히 소통하는 것, 그것이 영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재현이 꼭 우리 삶에 나쁜 것은 아니다. 앞서 이미 설명하였듯이 이 재현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 정신의 본능적 행동이다. 우리가 이런 재현의 의미만 온전히 이해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데려다 주는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게스탈트 치료의 창시자 Perls는 '결정할 힘은 언제나 현재에 있다'고 믿었다. 결정이란 인간 영혼의 고유한 기능이다. 인간의 지성과 의지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강력한 증거이다. 영혼은 끊임없이 현재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사실 현재와 머무름이란 표현은 그 자체가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현재란 늘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무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을 지향하지만 인간은 시간 내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영원이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라면, 인간에게서 영원이란 현재 속에 거하는 시간 속의 영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속에 머무름'이란 서로 모순되는 말이지만 인간의 지향점을 가장 잘 드러내어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마음은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지만 현재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이 진정 우리 영혼이 누릴 수 있는 복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을 그리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마치 광야를 살던 이스라엘이 매일의 삶을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에 의존하여 살듯이 하루 하루를 그렇게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날의 결정을 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요 자유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잘못된 해결책을 가지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문제가 부족과 빈곤의 문제라 여기고 그것을 채우려는 욕심과 소유에 기반한 선택을 한 것이 문제였을지 모른다. 
거기에는 가난한 마음이란 있을 자리가 없다. 가난함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것이다. 그 가난은 굶주림과 욕심이란 깊은 내적 동기를 품고 있는 가난이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서 웅크린 것처럼 가난의 내면에는 욕심이 기지개를 켜기 위해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가난했던 만큼 기회가 닿는대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그런 가난은 사실 가난의 옷을 입었을 뿐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난한 마음이 아니다. 마치 허기진 배는 음식을 끊임없이 갈망하듯이 이런 가난은 끊임없이 욕심을 갈망한다. 성경이 증거하는대로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게 되니 그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 
그래서 진정 가난한 마음은 현재를 사는 마음이다.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남겨두지 않는 마음이다. 만나를 이틀 혹은 삼일 분을 거두어 드리면 거기서 벌레가 생겨서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가난한 배를 채워 줄 양식에는 '내일'이란 없다. 그저 '오늘'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 한 분으로 그저 만족하고 자족하는 것이다. 마치 어미 젖을 충분히 빨고 젖을 땐 아이가 갖는 참된 만족과 평안처럼 그렇게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을 누리는 삶이다. 경험은 했으되 우리 마음에 무언가를 남겨두지 않는 것, 기억은 하지만 그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 지난 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날을 향해 시선을 맞추는 것 그것이 참된 가난의 마음이요. 영적이며 정신적인 건강이다. 
마음에 무언인가가 남아 불현듯 내 마음에 떠오르는가? 그것을 지워버리려 애쓰기보다 나를 찾아온 손님을 극진히 대접해서 온전히 돌아가도록 다시는 찾아오지 않도록 충분히 경험하고 마음에 무엇인가를 남기지 않는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것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하다.